타락한 진보는 깨끗한 보수조차 못 된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진보의 도덕성이 다시 화제다. 돈봉투 사건에 이어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투자 건이 도마에 오른 것이 계기다. 이태원 참사 관련 국회 상임위 회의 중에 김 의원이 코인을 거래하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논쟁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진보 인사들로부터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나’ ‘욕망 없는 자, 김남국에 돌을 던져라’ ‘진보는 돈 벌면 안 되나’ 등의 옹호론이 나온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진보와 도덕성이라는 두 개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 가치를 지키며 기성 질서를 유지하려는 입장이 보수라면, 약자를 위해 미래 지향적 가치를 추구하며 기성 질서를 혁신하려는 입장이 진보다. 그러므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은 현재의 가치와 질서에 대한 태도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오늘날, 독재 정치 시기의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그 가치와 질서는 정치 경제적으로 넓게 보면 자본주의이며 좁게 보면 신자유주의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양당 중심의 카르텔 정당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보수, 정의당이 진보라는 데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민주당에 대한 판단은 관점에 따라 다르다. 자본주의적 가치와 질서를 기준으로 한다면, 민주당은 보수다. 정치적으로도 양당 중심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시 보수다. 협의의 정치 경제적 시각에서 볼 때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신자유주의를 수정하려 한다는 점에서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민주당은 구체적 정책에서 진보적 성격을 띠지만 총체적으로는 보수적 성격을 띤다고 보는 게 논리적이다.

도덕성 문제는 또 다른 문제다. 민주당을 보수로 규정한다면, ‘진보는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논쟁은 불필요하다. 보수는 도덕적이 아니어도 된다거나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에도 흔히 ‘깨끗한 보수’로 불리는 도덕적 보수가 있듯이 진보에도 ‘타락한 진보’로 불리는 비도덕적 진보가 있다.

도덕성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인간의 동등한 기본적 존엄성과 관련된 추상적 도덕성과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서 나타나는 구체적 도덕성이 그것이다. 추상적 도덕성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보수는 모든 인간의 동등한 존엄성을 보장하는 적절한 방법을 전통적 가치와 질서에서 찾는 반면, 진보는 그 방법을 약자를 위한 새로운 가치와 질서에서 찾는다. 이 목표를 올바른 방법으로 추구해 나간다면 깨끗한 보수나 진보일 것이고, 올바르지 않은 방식으로 추구한다면 타락한 보수나 진보일 것이다.

보수가 당대의 구체적 도덕과 제도를 존중하는 것과 달리, 진보는 구체적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다. 구체적 도덕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도덕적이거나 타락했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보수가 진보를 폄훼하는 논리일 뿐이다. 진보는 외려 그런 공격에 의연히 맞서 당당히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보수가 도덕성을 더 중시하고 진보는 관습이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진보는 도덕적이어야 한다’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국민의힘 같은 보수의 다수가 타락한 보수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마음속에 ‘보수가 그렇지 뭐’라는 자조 섞인 체념이 자리 잡았고, 그 반사 효과로 진보에 강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최근 행태는 이 자조 섞인 기대조차 저버리게 한다. 특히 국회 상임위 중에 코인을 거래하는 모습은 도(道)보다 돈을 따지고 덕(德)보다 떡을 챙기는 행태로 보인다. 자조 이후에 오는 ‘너마저’라는 절망은 앞선 실망보다 훨씬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진보는 돈 벌면 안 되나’라는 얘기는 본질에서 벗어난 강변이다. 진보도 돈을 벌어야 하고 잘 벌면 더 좋다. 다만 각인이 모두 함께 잘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오직 자신의 부를 추구하면서 사회적 차원에서만 공동의 발전을 외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수박’이며 타락한 것이다. 청빈 진보를 주장하는 것은 보수가 진보의 성장을 막기 위해 씌운 프레임에 가깝다. 아니면 진보 스스로 당대의 윤리인 구체적 도덕에 맞추어 자기 포장이나 자기 최면으로 사용하는 수사에 불과하다.

게다가 동등한 존엄성이란 추상적 수준의 도덕성마저 저버리고 진보와 보수를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타락한 인간이나 타락한 정치인일 뿐. 이번 사건의 본질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과 타락의 문제다. 타락한 진보는 깨끗한 보수도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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