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 대 예금 토큰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국제적으로 디지털화폐를 둘러싼 논의와 실험이 점점 구체화·가속화하고 있다.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 예금 토큰(deposit token)의 도입과 적용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 활발하다. 가치 변동성 또는 신뢰성 문제로 비트코인과 여러 알트코인 등은 사실상 제외되고, 지급결제수단으로서의 적용 가능성이 초점이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핵심적인 관건은 토큰화(tokenisation) 기술에 기반한 거래의 효율성 등 잠재적 이점과 금융거래 시스템의 안정성 간 최적 조합을 찾는 것이다. 토큰화란 프로그램 가능한 플랫폼(결국 스마트 계약이 가능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전통적인 자산의 디지털 표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칭한다. 디지털화폐는 이런 토큰화 과정을 통해 작동한다. 토큰화를 통한 거래는 실시간 즉시 결제와 당사자 간 직접 이체가 가능하고, 고객들이 거래의 전 과정을 파악할 수 있도록 거래 투명성을 높이며, 중개수수료 등 거래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나아가 현재에는 가능하지 않은, 다양한 자산들을 이전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척하고 잠재적으로는 계약 가능한 자산의 범위를 대폭 확장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들은 우선 기업들의 국경 간 거래에서 발현될 수 있다. 예컨대, 수출입 등 무역금융에 수반되는 외환결제, 송금이나 가치사슬 내에 결합돼 있는 기업들의 공급망 금융 등이다. JP모건이 싱가포르 통화청과 협력해 싱가포르달러로 예금 토큰을 발행하고, 이를 일본 SBI와 국경 간 FX거래에 성공적으로 실험한 사례도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스마트계약에 기반한 디지털 무역토큰(DTT) 발행을 통해 중소기업의 공급망 금융에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유가증권시장에도 활용될 수 있다. 일반적인 채권 거래에도 적용될 수 있지만, 새로운 계약 형태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특히 탄소배출권 내지 ESG 채권의 발행과 거래에 적용한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골드만삭스는 BIS의 제네시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홍콩금융청과 협력해 홍콩 정부가 발행한 8억홍콩달러의 그린본드를 토큰화해 탄소 크레디트 시장에 유통시키는 데 성공한 바 있다. 호주은행인 ANZ도 자체적으로 발행한 스테이블 코인 A$DC를 이용해 탄소 크레디트를 구매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거래의 효율성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동시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디지털화폐가 적절한 것일까? 주지하듯이, 현대 화폐시스템은 ‘2층 시스템(two-tier system)’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현금과 상업은행이 발행한 예금통화가 존재하고, 예금통화의 신뢰성은 부분 지준제도와 금융안전망을 통해 중앙은행이 보장한다. BIS의 신현송 박사가 지적하듯이, 이러한 2층 시스템의 토대는 ‘화폐의 단일성’에 있다. 화폐적 교환은 다양한 화폐(또는 지불수단) 간 교환비율의 변동이 없어야 한다. 화폐의 단일성 덕분에 한 사회에서 모든 경제적 거래의 기초가 되는 보편적인 계산단위가 존재한다. 그러나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는 현금 상환을 약속한 발행자의 신뢰성에 의존한다. 미국 가상자산거래소 FTX와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에서 보듯이 액면가로부터의 이탈은 스테이블 코인 세계에서 흔한 일이다. 반면 예금 토큰과 현금의 단일성은 현재 2층 시스템 아래에서의 상업은행 예금과 동일하게 보장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다양한 발행자들의 채무증서 간 액면가 교환을 뒷받침하기 위해 청산소가 나타났으나, 고질적이고 빈번한 금융불안으로 인해 중앙은행이 설립되고, 현재의 2층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된 논의는 그 이전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과 같다. 이제 예금 토큰의 도입을 검토할 시점이고, 그 전에 CBDC와 예금 토큰의 2층 시스템이 다양한 환경 아래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해봐야 한다. 또한 은행들이 발행할 예금 토큰의 업계 표준을 만들어 도입함으로써 불필요한 표준 경쟁이나 자원 낭비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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