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더위를 이기는 법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송혁기의 책상물림] 찌는 듯한 더위를 이기는 법

폭염경보 문자가 연일 울린다. 염(炎) 앞에 폭(暴)을 더한 말에서부터 더위가 전달된다. 서(暑)와 열(熱) 앞에 혹(酷), 극(極), 고(苦) 등을 붙인 어휘들을 떠올리면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이들이 견뎌내기 힘든 더위를 겪으며 살아왔는지 느껴진다. 거기에 증(蒸)을 더하면 펄펄 끓는 찜통 속에 들어앉아 있는 듯하다.

입추가 8일이었다. 말복보다 며칠 앞서 입추를 둔 것은 극한 상황에서 희망을 보라는 뜻일까? 조선시대 문인 장유는 입추가 지났는데 한여름보다 심한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하면서 200자 고시를 지었다.

“모시옷이 갑옷처럼, 높은 집도 불가마처럼” 느껴지는 더위에 “솥 위의 생선처럼 이리저리 뒹굴며 삶기기만 기다리는” 자신을 묘사하고, 사계절의 운행 법칙이 무너져서 온 누리가 재앙을 입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내용이다. 꺾일 줄 모르는 더위에 입추의 희망마저 무색해 보인다.

고 신영복 선생은 여름 징역을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이라고 했다. 좁은 잠자리 때문에 옆 사람을 증오하게 되기 때문이다. 깊은 체험에서 비롯한 선생의 차분한 어조는, 그저 섭씨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껴져 서로의 존재를 미워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인 불행인지 두고두고 생각하게 만든다. 좁아터진 감옥의 혹독한 더위에 대한 실감 나는 추체험과 함께.

여전히 냉방시설은커녕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 곳에서 턱턱 막히는 숨을 내쉬고 있는 분들이 있다. 국가와 사회, 이웃의 도움이 절실하다. 반면 한두 사람을 위해 과도하게 냉방시설을 돌리는 일도 적지 않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무더위 쉼터’ 프로그램으로 주말 저녁에 공동 공간을 활용해 애니메이션 상영, 오락시설 운영, 야간 독서 환경 조성 등을 진행했다. 각 가구의 냉방을 잠시나마 멈추고 “모여서 아끼자”는 취지다. 냉방시설의 공동 사용은 여름에도 옆 사람을 증오하지 않을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입추 뒤에도 한동안 이어질 무더위를 즐겁게 이겨내게 한다. 나아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기후위기를 함께 생각하는 작은 실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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