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못할 SPC의 ESG 등급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이해 못할 SPC의 ESG 등급

노동자의 잇단 죽음으로
작년에 국회 환노위서
집중적 질타 받았던 SPC
ESG 평가는 3년 내리 B+
‘S’ 항목선 계속 A 받아

전 국민 불매운동 기업이
어떻게 최우수를 받을까
ESG 담론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쏟아지는
냉소를 한국서도 읽게 돼

내년에 SPC의 ESG 공시
특히 ‘S’ 항목의 등급을
난 반드시 찾아볼 것이다
이는 미사여구 횡행하는
한국 ESG 담론에 대한
평가가 될 터이니까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이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말이 되어가고 있다. 2005년 유엔에서 문서 ‘돌볼 줄 아는 이가 이긴다(Who Cares Wins)’를 출간한 때를 전후해 블랙록 등 지구적 규모의 굴지 투자기관들이 ‘지속 가능한 투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기업도 투자자도 또 그들이 만나는 장(場)인 자본시장도 모두 사회, 더 넓게는 지구적 생태계에 안겨 있는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예측 불능의 여러 차원에서의 위험을 미연에 방지해 더욱 안정적인 가치창출 경영을 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요컨대 기업만이 아니라 사회와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이 곧 투자와 경영의 ‘지속 가능성’이기도 하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이에 기업들은 기업 정보의 공시에 있어 기존 재무제표뿐만 아니라 환경(E) 문제에 대해, 사회적 책임(S)에 대해, 또 기업 지배구조(G)에 대해 어떻게 ‘지속 가능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의 정보도 함께 밝혀야 한다. ‘지속 가능한’ 투자를 지향하는 투자자들은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이러한 정보들을 중요하게 참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환경, 사회, 기업 지배구조 등에 있어서의 ‘공동선’을 자본시장 작동 논리에 내재화하자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제 ESG는 현실에서도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지구적 제도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미국, 유럽, 전 세계적 차원에서 회계 기준을 정하는 핵심 기관들이 ESG 평가의 기준과 지침을 계속해서 새롭게 발전시켜가고 있으며, 많은 나라에서 ESG 관련 정보의 공시는 자본시장의 당연한 요건으로 확립되고 있다. 따라서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은 ESG 부문들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열리게 됐다.

그러자 한국에서도 ‘ESG 담론’이 요란할 정도로 활짝 피어나게 되었다. 주요 기업들은 모두 ESG 평가서를 내놓기 시작했다. 컨설팅 업체, 로펌, 심지어 자본시장과 별로 관련이 없는 사회적 경제와 사회운동 진영의 일각에서까지도 저마다 ‘ESG의 바른길’을 인도하겠다고 나서는 데 줄을 잇고 있고, 서점에는 ESG 관련 서적들이 넘쳐난다. 바야흐로 ‘ESG 전성시대’가 만개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겉모습의 뒤편에서는 ESG에 대한 우려와 냉소가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실제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상에서 투자자, 기업, 평가기관, 관련 업계가 자기들끼리 자화자찬만 벌이는 ‘수영장 파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유엔의 연구기관인 사회발전연구소(UNRISD)에서는 자체적인 평가 기준을 마련해 ESG 이름 아래 벌어지고 있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활동’이란 것이 현실과 빗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선 ESG에 대한 적대감이 냉소를 넘어 폐지론까지 거세지고 있다. 문제는 특히 ‘S’, 즉 ‘사회’ 영역에 있다. 사회 성원들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쟁점들은 도외시하면서 되레 기업들이 큰돈은 들지 않으면서 자기들 마케팅에 이익이 되는 일들만 하면서 이를 ESG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반감이 많은 미국인들에게 확산되면서, ‘사회’ 영역에서의 ESG 평가를 의식해 일방적인 행태를 벌이던 기업들은 거센 불매운동을 맞아 기업의 수익 흐름 자체가 위기에 처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S’ 항목 오명 기업들 여론의 뭇매

미국의 대표 맥주라 할 ‘버드와이저’는 올 들어 시장 점유율 1위를 빼앗겼고, 블루칩 중의 블루칩이라 불리던 ‘디즈니’도 지난 3년간 수익과 주가 모두 하락세를 맞고 있다. 공화당이 집권한 주정부에선 ESG를 표방하는 투자기관들이 자기들 연기금을 빼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대선의 주요 주자로 떠오른 비벡 라마스와미 같은 이는 ESG에 대한 공격을 중심 구호로 내걸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로 돌아와보자. 한국의 ESG 평가 현실은 과연 얼마나 적실성을 갖고 있을까? 최근 식품기업 SPC에서 또다시 50대 여성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참혹한 죽음을 맞는 비극이 있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SPC의 산업재해로 노동자들이 끔찍한 죽음을 맞는 사고는 이미 누차 반복됐다. 산재 사고 횟수 자체가 2022년까지 ‘5년간 759건’이라는 충격적인 숫자를 보여 지난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집중적인 질타의 대상이 되었으며, 여기에 더해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악명을 날린 바 있다. 한마디로 ESG의 ‘S’로 보면 최악의 성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법하다.

그렇다면 SPC가 내놓은 ESG 공시의 평가는 어떨까?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행한 ESG 평가에서 SPC는 3년 내리 ‘B+’를 받았고, 특히 ‘S’ 항목에선 계속 ‘A’를 받았다. KCGS의 ESG 평가 등급이 A+에서 D까지 나누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거의 최고 평가를 받아온 셈이다. 2022년 들어 반복되는 사건과 사고로 인해 SPC의 사회적 평판, 특히 ‘호감도’는 0과 1 사이를 기준으로 0.7에서 0.2로 대폭락했지만(트리플라잇 이슈엔임팩트데이터 연구소), ESG 평가에서 ‘S’ 항목 등급은 B+를 지켜냈다.

SPC가 공시한 ‘S’ 평가 항목에는 분명히 ‘임직원에 대한 보상 및 평가’와 ‘안전과 보건’이 포함돼 있다. 나 같은 보통의 사회 성원들은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SPC는 ‘S’의 다른 항목들에서 무슨 신묘한 재주를 피웠길래 A를 받은 것일까? 그러면 A 등급을 받은 다른 기업들도 알고 보면 노동조건이나 산업안전이 SPC 수준이라는 걸까? 아닌 게 아니라 지난 17일 SPC가 국회 환노위에 제출한 변명을 보자면, 자신들의 산업재해율은 0.98%로 식품제조업계의 평균 수준이라고 한다. 분명히 그 등급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것이며, 나름대로 모종의 절차와 혹은 계산식을 거쳐 나온 것일 터이니. 무슨 논리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SPC, 이중 중대성 의미 새겨들어야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 성원들의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나라 식품제조업계 전체에 철퇴를 내리는 조치를 하든가 아예 문을 닫든가 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아는 바의 사회적 상식이다. 이러한 엄청난 인식의 괴리가 바로 ESG 담론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쏟아지는 냉소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국회 환노위에서 문제로 불거지며 전 국민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기업이 어떻게 ESG 세계에서는 ‘최우량 사회적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만약 한우 등급 평가가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질긴 고기에 최우량 등급을 찍어주는 식이라면 그 등급 체계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ESG 담론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쏟아지는 냉소의 증후를 우리나라에서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ESG의 중요성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지구적 산업문명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가장 강력한 주체의 하나가 기업과 투자자들이다. 어떻게든 이들이 ESG로 불리는 ‘공동선’을 자신들의 행동 원리로 내재화시키려는 노력은 소중할 뿐만 아니라 필수불가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방향에 맞도록 평가 기준과 지침을 현실화하고 구체화하려는 소중한 노력이 모아지면서 지금도 계속 진화해나가고 있기도 하다.

한 예로 유럽연합(EU)에서 ESG 기업 공시의 기준으로 의무화한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을 들 수 있다. 기업의 활동과 그 결과를 평가함에 있어 기업과 투자자 입장에서의 ‘중대성’만이 아니라 사회와 자연의 입장에서 본 ‘중대성’도 함께 고려해야 하며, 나아가 양자 간의 연결 관계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SPC 같은 기업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이다. 연매출 3조원의 대기업이 고작 180억원의 산업안전 예산 집행을 뭉갰다는 혐의를 받다가 어떤 사회적 충격을 가져왔는지, 거기서 비롯된 반동이 기업 이미지와 실제 매출에 얼마나 큰 손해로 연결돼 돌아올 것인지를 스스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내년에 나올 SPC의 ESG 공시, 특히 ‘S’에서의 등급 평가를 반드시 찾아볼 것이다. 이는 SPC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온갖 미사여구와 뜬구름 잡는 소리가 횡행하고 있는 한국 ESG 담론 전체에 대한 평가가 될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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