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집착증’에 대한 의문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감세 집착증’에 대한 의문

갈수록 자산계급은 부의 증대를 누리고, 산업 경제는 침체돼 부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순을 바로잡을 최후의 보루인 정부는 누적되는 정부 부채로 갈수록 손발이 묶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어째서 윤석열 정부는 ‘감세 정책’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정부에서는 정부 지출을 큰 폭으로 줄여 ‘균형 재정’으로 가고 있음을 강조했다. 어폐가 있다.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지출보다 훨씬 큰 폭으로 세수가 줄어 실제로는 ‘균형 재정’이 아닌 ‘적자 재정’으로 치닫고 있다. 법인세를 비롯해 크고 작은 부분에서의 전면적인 감세정책으로 인해 올해 7월까지도 세수 진도율은 53%에 머물고 있으며, 연말이 되면 50조원 이상의 세수 결손이 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올해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의 감세 기조가 본격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내년이 더 걱정이다. 이미 정부가 내놓은 내년 예산안의 세수 계획을 보게 되면 내국세만 10% 정도를 줄여 놓았다. 월 400만원으로 생활을 꾸려가는 가정에서 내년 수입이 40% 줄어든다고 생각해보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우리나라의 재정정책 기조는 폭발적인 감세정책으로 ‘균형 재정’이 아니라 ‘적자 재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부터 의문과 혼란이 이어진다. 어째서 불현듯 ‘적자 재정’인가? 그것도 국가가 적극적 역할을 떠맡으면서 지출이 확장돼 벌어지는 적자 재정도 아니고, 큰 폭의 감세를 통한 적자 재정이라니? 선례가 없지 않다. 1980년대 초 많은 경제학자들을 당혹하게 했던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이른바 ‘레이거노믹스’가 비슷한 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당시에도 레이건 대통령은 이른바 ‘래퍼 곡선’을 앞세워 민간 경제 활성화와 투자 촉진을 위해서는 정부의 감세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1930년대 뉴딜 이후 내려온 미국의 세금 제도를 파격적인 감세 기조로 손본 바 있으니까.

하지만 여기 또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당시 공산권과의 본격적인 군비경쟁을 꾀하고 이른바 ‘제2의 냉전’을 시작하면서 레이건 정권은 군사비를 중심으로 한 정부 지출은 또 파격적으로 늘린 바 있다. 그 결과 적자 재정이 나타난 것은 지금 우리와 비슷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감세 기조만이 아니라 오히려 큰 폭의 지출 증가가 나타난 바 있다. 이 점에서 레이거노믹스의 재판이라는 식으로 현재의 재정정책의 기조를 설명하기도 힘들다.

다른 점은 또 하나 있다. 거시경제에 미치는 재정정책의 효과를 음미하기 위해서는 항상 금융정책과의 조합을 살펴야 한다. 레이건 정부 시절 특히 임기 전반기의 금융정책은 철저한 긴축이었다. 1970년대까지의 고질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엄청난 고금리 정책과 긴축적인 금융정책 운용으로 실업률이 치솟고 경기가 죽는 상황이 벌어진 바 있다.

레이거노믹스와 닮은 듯 너무 다른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은 아무리 보아도 긴축적인 기조를 지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기준금리는 지난해부터 계속 올라갔지만, 이는 전 세계 인플레이션과 특히 미국의 금리 상승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수동적인 대응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 반면 정부는 경기 침체와 민간의 자금 수요를 명분으로 은행권 등에 대해 계속적인 금리 인하 압박을 가했고, 주택담보대출 금리 등은 세계적인 금리 인상의 시기 이전보다 크게 올랐다고 보기는 힘들며, 가계부채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

실제로 9월 들어 보름 사이에만 가계대출은 무려 8000억원이 폭증했다. 모두 다 알고 있다. 정부는 시한폭탄처럼 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문제가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규제와 금융 모두에서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이것 때문에 ‘집값이 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연루된 새마을금고의 건전성 문제가 나오자 한국은행이 40조원 규모의 지원을 약속하는 과정 또한 금융정책의 기조가 적어도 긴축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을 더 크게 만든다.

레이건 정부의 경제정책 또한 기묘한 정책 조합이라고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으며 그 효과에 대해서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감세를 하면서 지출은 늘리고, 정부 재정은 적자 기조를 달리면서 금융정책은 긴축이라니.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은 ‘감세’라는 것 하나만 공통점이 보일 뿐,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은 아니면서 금융정책은 긴축이라고 보기 힘들다. 이러한 조합은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실 내가 아는 바로 정부에서 이렇다할 만한 이론적·체계적 경제정책의 기조를 포괄적으로 밝힌 바가 없으므로, ‘감세를 통해 투자를 유발한다’는 것 하나 말고는 별다른 계획 없이 상황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무원칙의 기조(그것도 기조라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2020년대의 한국 경제상황에서 이것이 적실성을 갖는 정책 ‘기조’인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첫째, 미국 바이든 정권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은 향후 10년간의 명확한 ‘증세’ 기조를 밝히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 단명했던 보수당의 트러스 총리 내각은 파격적인 ‘감세’ 기조를 내걸었다가 국제 금융시장의 공격과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의 비난까지 뒤집어쓰면서 결국 물러났고, 내각도 무너지고 말았다.

둘째, 지금은 기후위기와 산업 패러다임 전환이 겹친 대규모 전환기이며 이에 각국은 국내·국제적 경제구조와 체질을 바꾸기 위해 각종 보조금과 정부 프로젝트 등 대규모의 지출을 계획하고 있다. 방금 언급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에서도 이를 거의 그대로 모방해 반도체 등의 전략적 산업 등에 대한 대규모 정부 보조금과 연구 지출을 공언하고 있다. ‘국가 자본주의’인 중국의 대규모 정부 지출의 산업 정책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구조적 변환기에서 자원의 조달을 오로지 그 효과도 심히 의심스러운 ‘낙수 효과’ 하나에 맡겨 세금과 정부 지출을 모두 깎는다는 것은 무슨 현실성을 갖는 것일까?

효과 의문 ‘낙수효과’에 기댄 정부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언짢은 예후를 그려본다면 이렇다. 벌써 공공부문과의 관계가 깊은 여러 부문에서는 내년 예산안의 정부 지출 감축으로 인해 크나큰 고통과 비명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서의 구매력 감소를 금융 부문에서의 ‘대출’로 메꾸면 되지 않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정부 지출은 직접적으로 구매력을 자극하고 ‘유발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지만, 금융 부문에서의 대출에는 이자가 붙어 있다. 따라서 더 큰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산시장 투자자들이거나 이자를 감수하고라도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생활형 대출자들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전자는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울 것이며, 후자는 그나마 위축된 소비를 더욱 졸라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되면 자산시장은 갈수록 뜨거워지면서 실제 산업은 이자 부담과 정부 지출 축소가 겹쳐지며 생겨나는 소비 위축으로 인해 침체가 되는, ‘아랫목은 펄펄, 윗목은 냉골’이라는 경제 이분화 현상을 부추기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계급은 자산시장의 지속적인 가격 상승으로 명목적 부의 증대를 누리게 될 것이며, 다수의 사람들이 근로소득과 영업소득을 벌어들이는 산업경제는 침체를 면치 못하면서 부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순과 문제를 최종적으로 바로잡도록 기대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보루인 정부는 누적되는 정부 부채로 인해 갈수록 손발이 묶이게 될 것이다. 지금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가 ‘흑자 재정’으로 여력을 비축해두기는커녕 ‘적자 재정’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언한 ‘낙수효과’가 발동돼 감세 정책이 투자 확대와 경제 성장 및 세수 확충으로 이어질 그날이 오기 전에는, 정부의 세수는 졸아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때는 언제일까? 그때까지 누적될 정부의 부채는 얼마나 될까?

그래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어째서 ‘감세’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윤석열 정부의 감세에 대한 집착은 법인세 등 굵직한 사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결혼하는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증여세 면제 한도를 현재의 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까지 늘리겠다는 발표까지 나왔다. 결혼과 출산 장려라는 게 명분이다. 결혼하는 자녀에게 1억5000만원을 해줄 수 있는 이들이 인구의 몇 퍼센트나 될 것이며, 그들이 과연 이런 혜택이 없다고 할 결혼을 하지 않을 이들인가? 별 효과도 없고 사람들에게 박탈감만 안기는 이런 ‘깨알 같은’ 정책까지 남발하는 ‘감세정책에 대한 집착’은 대체 왜 나타난 것일까? 정책 엘리트들의 깊은 속을 알지도, 또 들어볼 수도 없는 백면서생과 서민들은 그저 답답할 뿐이다.

■홍기빈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감세 집착증’에 대한 의문

정치경제학자. 대안적 사회의 정치경제 질서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와 활동을 병행해 왔다.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국제칼폴라니 연구협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위기 이후의 경제학> <비그포르스, 잠정적 유토피아와 복지국가>가 있으며, 역서로는 <도넛 경제학> <21세기 기본소득> <균형재정은 틀렸다: 현대화폐이론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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