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을 키우는 나라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얼마 전 트위터에 이런 글이 돌았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그 반대의 특징. 그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시험을 ‘지식 쌓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문제 풀기 트레이닝에 집중한다. 반대는 지식을 쌓기 위해 공부한다. 마치 논문을 쓰는 것처럼. 사람들은 후자를 비웃었다. 그걸 보고 생각했다. ‘이거 난데…?’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생활스포츠 지도사 현장실습을 다녀왔다. 꼬박 1년 과정의 마무리 단계. 연수 말미 소논문을 쓸 때 나는 본격적으로 불탔다. 연령별 트레이닝 방법론과 운동 발달 단계 이론을 보며 무릎을 탁 쳤기 때문이다. 이건 선형적 시간 개념 문제구나! 운동을 시작할 때 나는 ‘초기 성인기’였다. 모든 움직임 기술이 최상으로, 이를 활용해 운동을 가르치는 시기다. 나는 난생처음 간 취미 발레반에서 영문 모르고 허우적거렸는데, 나중에 가장 초보적인 운동 기술인 제대로 앉기, 서기, 걷기부터 배웠다.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다. 사회구조적 위치에 따라 다르게 흘러간다. 그래서 성인기 생활체육 입문자를 대상으로 자폐 아동 대상 움직임 기술 티칭 방식을 적용한 프로그램을 짜 제출했다(물론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썼다). 몸 다양성이 관심 주제라 실습 기관을 고를 때도 ‘노인’이라는 명칭이 붙은 곳을 선택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강의 제목이 이상했다. 펀(FUN) 리더십으로 신바람 나는 세상! 난데없이 크게 웃으며 나타난 강사는 말했다. 남원에 무엇이 유명한가요? 춘향이! 여자는 좋아도 튕~겨야지. 이후 큰 소리로 따라 하게 했다. 무릎 치고 손뼉 치고 ‘춘향아 춘향아’, 무릎 치고 손뼉 치고 ‘어데요 어데요’. 나는 ‘어데요’를 하며 양 어깨를 비비 꼬아야 했는데,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둘째 날에도 나타나 강의는 내용이 중요하지 않으며 그저 웃기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화가 나 강사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는 전국을 돌며 온갖 다른 이름의 과정에서 똑같은 자료로 ‘강의’하고 있었다. 순 사기꾼 아니야? 문득 강사가 처음 입을 떼며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저는 자격증이 200개가 넘습니다.” 그가 홍보하는 자격증 프로그램 전단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었다. ‘웃음 치료사/레크리에이션 지도사/펀 리더십 지도사/노인운동 지도사 1급/4종 동시 취득 과정/2급 없이 1급 지원 가능.’

그 후 생각은 더욱 복잡해졌다. 한국은 사기범죄 비율이 1위로, 2022년 4분기 기준 전체의 약 19%다(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사기를 예방하는 법은 사람들에게 문해력을 높이고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사기꾼은 ‘무자격자’다. 자격증으로 집 전체를 도배해도 모자란 사람은 사기꾼인가? 이런 현상에 대해 언론은 대개 민간 자격증 난립을 우려하고 있었다. 내가 간 것은 국가공인자격 실습이다.

문제는 더 본질적인 것 같다. 자격 시험은 누군가의 전문성을 개별 검증 없이 믿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공부’는 어떤가? 최단기간 합격 보장. 어떤 학원에서도, 전문직 자격증 학원에서도 볼 수 있다. 합격만을 위해 공부하는 것을 똑똑하게, 탐구하는 사람을 한심하게 취급하는 사회는 그 자체로 ‘사기꾼 양성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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