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외투’가 아득히 멀어져갔다

서의동 논설실장

소련은 한국전쟁의 지도와 지원을 담당했지만, 정작 전쟁기간 내내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전투병의 북한 파병은 물론 군사고문단의 전투 참가를 금지했고, 북한의 공군력 지원 요청도 외면했다. 북한의 남침 직후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소련이 출석하지 않은 것은 전쟁의 최대 미스터리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련의 불참으로, 유엔군 창설이 결의되면서 전쟁 판도가 바뀌었다. 후일 발굴된 서한에서 스탈린은 체코슬로바키아 고트발트 대통령에게 “중국의 참전으로 미국을 아시아에 묶어놓으면 유럽 사회주의를 강화시킬 시간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전쟁의 승패보다 유럽에서의 사회주의 강화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지만 사후 합리화에 가깝다. 스탈린의 본심이 한국전 개입을 국제사회에 드러내기를 꺼렸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본다.

소련이 북한에 지원한 무기는 공짜가 아니라 차관, 교역 등 대부분 유상거래였다. 최신 무기 대신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면서 북한의 금과 납, 쌀 등 현물을 챙겨갔다. 북한 지도부의 소련에 대한 불만은 전쟁을 거치며 극대화됐다. 김일성이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소련파들을 숙청하고, 중·소 분쟁이 벌어지자 소련 비판을 본격화하며 ‘쁠럭불가담’(비동맹) 운동에 적극 나선 데는 전쟁에서 쌓인 앙금도 작용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난 13일 정상회담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동아시아 질서에 격변을 몰고올 사건임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북·러관계의 전사(前史)에 비춰보면 최근의 밀착은 북한으로선 ‘달리 여지가 없었던 선택’이란 측면도 있어 보인다.

북한은 지난 30년간 다른 선택지를 찾는 데 몰두했다. 1990년 한·소 수교로 북·소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지자 북한은 한·미·일과 동시다발로 관계개선을 꾀했다. ‘조선은 하나’라는 원칙에서 후퇴해 한국과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한국과는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체결했고, 일본과는 협상 문턱을 낮추면서 국교정상화 의지를 보였다.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의 말을 빌리면 ‘역사의 외투가 스쳐 지나가던’ 때였다.

남북, 북·일 관계개선이 급류를 타자 미국은 제동을 걸었다.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지만 소련의 몰락 이후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유지할 명분을 북한에서 찾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머잖아 지역패권국으로 부상할 중국을 잠시 대신할 ‘악당’ 역할에 북한이 맞춤했던 것이다. 1992년 1월 미국으로 날아간 김용순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아널드 캔터 미 국무부 차관에게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용인하겠다”는 파격 제안을 했으나 캔터는 “핵사찰을 받든지 고립과 경제붕괴의 길로 가든지 양자택일하라”고 걷어찼다. 꼭 10년 뒤인 2002년 북·일 정상회담이 열리고, 남북이 철도·도로 연결공사 착공에 합의하자 미국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을 개발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일이 역사의 외투 소맷자락을 움켜쥐려 할 때마다 미국이 제동을 거는 패턴이 반복됐다. 2018~2019년 한반도 평화 국면이 ‘하노이 노딜’로 끝나고 미·중 경쟁이 격화되자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30년간의 노력을 마침내 포기’(미국의 북핵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교수)했다.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갈리지만, 핵보유가 현실이 되자 ‘북한은 한번도 핵개발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분석이 득세한다. 하지만 북한에 강경했던 조지 부시 행정부가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할 때만 해도 북핵은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오바마의 ‘냉담’, 트럼프의 ‘변덕’, 바이든의 ‘무시’가 이어지면서 북핵은 관리 범위를 뚫고 나갔다. 분명한 것은 북핵 문제가 이토록 거대해지지 않도록 손쓸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북핵을 지렛대로 ‘70년 숙원’인 한·미·일 군사동맹 체제의 틀을 완성했다. 그 거울상으로 북한은 중·러와의 결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려 한다.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한·미·일 결속의 격변 속에서 중·러는 북핵을 묵인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꿈은 산산이 부서져 허공에 흩어졌다. 냉전의 섬 한반도는 해빙도 되기 전에 새로운 빙벽에 갇혔다. 역사의 외투는 우리 곁에서 아득히 멀어져갔고, 다시 오길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서의동 논설실장

서의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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