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안보, 총칼보다 강한 위협에 대처하라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기후안보, 총칼보다 강한 위협에 대처하라

기후변화 물리적 피해는
한 국가의 문제를
넘어설 것이다
앞으로 기후변화 대응은
거시적으로 봐야 한다
또 기후적응 체계를
강화함에 있어서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

마야문명의 진짜 유산은
기후변화의 교훈이다
그것을 슬기롭게 대처할
능력을 키우는 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최고 능력이라는 보물을
우리에게 남긴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 보물을
찾아 나설 때이다

아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았건만 세계의 화약고 중동 가자지구가 뜨겁다. TV 너머 보이는 참혹한 세상은 내가 체감할 수 없기에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것은 영화가 아니고 현실이며 총칼과 같은 무기에 무수한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국가가 이러한 피해를 방지하고 주변국 또는 내부의 분쟁으로부터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기후안보, 즉 기후변화가 국가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실존적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쟁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사실 두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요인은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문제가 터질 것이라고 긴장하며 주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안보 위협은 예측도 대응도 매우 어렵다.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것은 분명하다.

잠깐 여기서 샛길로 빠져 역사를 논하기에 앞서 영화 이야기를 잠깐 하려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좋아한다. 물론 제일 좋아하는 배우도 해리슨 포드이다. 어릴 적 영화에 등장한 해리슨 포드는 정글을 누비며 악당을 물리치고 놀라운 신공으로 보물을 찾아내는 나의 영웅이었다. 몇번이고 DVD(요즘 어린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영화나 음악을 저장할 수 있는 디스크)를 돌려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어린 시절에 늘 한 가지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보물의 주인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임자 없는 보물을 찾는 해리슨 포드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지만 사라진 보물의 진짜 주인에 대한 이야기는 늘 내게 궁금증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 지녔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2013년 한 학술지(Nature Geoscience)에 실린 논문을 통해 찾을 수 있었다. 2008년 개봉한 시리즈 4편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털 해골의 왕국>에 나온 마야문명 이야기에 대한 해답이다. 영화는 인디아나 존스가 세계를 지배할 힘을 지닌 크리스털 해골을 차지하기 위해 마야문명이 번성했던 전설의 도시를 찾는 이야기다. 바로 이 크리스털 해골의 주인이 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는지 그 원인이 밝혀진 것이다.

사실 많은 이들이 마야문명이 사라진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고고학 기록을 보면 마야문명은 굉장히 우수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어 도시에는 우물을 만들고 농사를 짓기 위해 관개를 하는 등 시대를 앞서가는 문명이라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전체 아메리카 대륙에서 그 당시 가장 앞선 언어를 가지고 있었으며 상형문자를 완성하여 책을 만들어 역사의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뛰어난 문명이 왜 사라진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전 인류의 역사적 숙제로 남아 있었던 상황이다.

기후변화, 지금의 문명 앗아갈 수도

전 세계 24개국 78명의 과학자로 이루어진 연구팀은 문헌정보, 역사사료, 나이테 분석, 빙하시추 등 다양한 분석기법을 통합하여 마야문명의 붕괴 시기가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발생한 심각한 가뭄의 도래 시기와 일치함을 밝혀냈다. 이뿐만 아니라 2018년 영국과 미국의 지질학자-기후학자-고고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마야문명이 번성했던 지역의 호수 속 침전물 분석을 통해 기온 상승과 강수량이 줄어드는 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급격한 기온의 상승과 강수량 감소에 따라 수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심각한 가뭄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마야문명은 식량위기를 맞이했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물론 아직 이러한 가뭄이 마야문명을 붕괴시킨 절대적 원인이라고 100%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발표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후속 연구결과들 대부분이 기후변화를 마야문명 붕괴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여기서 기후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드는 한 가지 의문점은 정말 가뭄이 그렇게 심각했던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피해가 심각했기에 문명이 사라진 것인가. 사실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기준으로 봤기에 그럴 것이다. 어쩌면 가뭄의 정도가 같더라도 가뭄의 피해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피해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보통 이러한 능력을 기후적응 능력이라고 한다. 여기서 기후적응이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완화시킬 수 있는 역량이다. 다가올 미래의 기후변화 피해를 정확히 예측하거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확한 모니터링 및 사회적 인프라 구성, 그리고 발생한 기후변화 피해를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체계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보면 문명의 멸망을 초래한 가뭄은 마야의 기후적응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당시 수준에 비해 높은 과학기술을 갖고 있었기에 나름의 기후적응 능력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적응 능력을 넘어선 피해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 또한 적응능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결국 기후변화는 화려한 마야문명을 현실 세계가 아닌 세계사 책 속으로 가두어 버렸다. 인류가 겪은 무시무시한 전쟁 세계 1차 대전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인간이 발명한 가장 무서운 무기라 불리는 원자폭탄의 투하에도 문명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기후변화는 달랐다. 물론 총칼을 앞세운 전쟁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문명을 송두리째 앗아가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할 가장 큰 위협 요인은 기후변화의 피해가 유발할 수 있는 또 다른 리스크, 기후안보일지 모른다.

한국에 기후위기는 실존적 위협

기후안보에 있어서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점은 한국이 겪는 기후변화 피해만이 내가 사는 한국의 안보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이다. 한국의 사회, 경제, 문화는 단순히 한국의 국내정세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전 세계에서 7번째로 많은 양의 식량을 수입하여 식량자급률이 OECD 38개 국가 중 최하위에 있다. 식량안보가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다른 국가에서 발생한 기후변화 피해로 인한 농작물 생산량 감소는 한국의 밥상물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경제안보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에너지도 마친가지이다. 한국은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해외에서 사들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나타난 에너지 수급 문제를 살펴봤을 때 에너지 공급 국가의 기후변화 피해로 인한 정책 변화는 한국의 에너지안보를 흔들어버릴 수 있다.

사실 여러 가지 더 많은 안보 위협 요인이 도사리고 있지만 가장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점은 국방문제다. 한국은 분단국가이기에 국경을 맞댄 다른 국가의 기후변화 피해는 그곳의 사회, 경제, 정치 문제를 야기하여 한국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국방안보의 위협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미국 바이든 정부 초창기 발표된 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기후변화 적응 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발생하는 기후변화 피해는 기존의 정치, 사회, 경제적 약점을 강화하여 그 국가의 체제안정에 위협을 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협은 반드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다.

기후변화의 물리적 피해는 한 국가의 문제를 넘어설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의 기후변화 대응은 반드시 거시적(macro)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식량, 에너지, 국방 등 여러 가지 사례에서 보았듯이 기후적응 체계를 강화함에 있어서 한국의 현황에 대한 대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인디아나 존스는 마야문명이 남긴 크리스털 해골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이것은 바로 크리스털 해골이 세상을 지배해줄 힘을 가진 엄청난 보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야문명이 남긴 진짜 유산은 기후변화에 대한 교훈이다. 기후변화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큰 능력이란 값진 보물을 우리에게 남긴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 보물을 찾아 나설 때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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