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지는 지구의 차가운 심장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뜨거워지는 지구의 차가운 심장

차가운 곳은 차갑게, 뜨거운 곳은 뜨겁게, 그것이 지구가 살아가는 길이고 우리가 갈 방향이다
지금처럼 차가운 북극이 더 뜨거워지면 인간의 심장이 망가진 것처럼 절대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올 것이다
북극 온난화를 북극곰의 서식지 문제로만 보지 말고, 우리 집 앞마당의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폭우와 폭염으로 다사다난했던 여름이 가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왔다. 가을향기 듬뿍 담은 차가운 공기에 지난여름 폭염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과는 달리 지난여름 뜨거운 폭염의 위력은 지구의 많은 지역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폭염으로 무기력해진 중위도 지역 나무들은 허수아비처럼 서 있기만 할 뿐 제대로 된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더운 날씨에 말라버린 호수는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뿜어내는 온실가스 배출원이 돼 버렸다. 적도 밀림에서 북반구 고위도 한대 산림까지 뜨거운 폭염과 메마른 공기로 매일같이 산불이 발생했다. 뜨거워진 북극의 바다는 해빙의 얼음두께를 얇게 만들어 이례적인 해빙 구멍을 만들었다.

이러한 자연 생태계의 피해는 여름 한순간의 상처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유산효과(legacy effect)로 다가와 올겨울 그리고 내년까지 더 큰 상처를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우려되는 것은 지구의 차가운 심장 북극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북극은 지구의 심장 같은 곳이기에 지구가 지속 가능한 행성으로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정상적 기능을 해야 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심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 번째 징후가 북극의 기온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1850년 산업화 이후 지구 전체의 평균기온은 1.1도가량 상승했다.

북극 온난화, 다른 지역에도 큰 피해

그런데 사실 지구 전체 기온이 1.1도 올라갔다면 어떤 지역은 더 많이 올라갔고 어떤 지역은 조금 덜 올라갔을 것이다. 평균보다 더 많이 올라간 지역이 바로 북극 지역이다. 여기서 북극 지역이란 보통 북위 50~60도 이상의 고위도 지역을 지칭한다. 실제로 북극의 많은 지역이 4도에서 5도 이상 온도가 올라갔다. 이렇게 북극 지역이 지구의 전체 평균기온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에 북극의 온난화를 ‘북극 증폭(arctic amplification)’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온도가 많이 올라갔으니 당연히 빙하가 녹고 얼음이 얇아지는 것이다. 사실 북극의 온난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풍경이 아니다. 꽤 오래전부터 기후변화 또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 등장시킨 동물이 바로 북극곰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도, 40대 중반인 지금까지도 지구온난화를 상징하는 동물은 북극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가 따뜻해져서 북극곰이 살기 힘들어 개체수가 줄어든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오히려 지구온난화를 북극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더 이상 북극곰 얘기를 안 했으면 한다. 어쨌든 이렇게 북극의 온난화를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지만 이 문제가 단순히 북극곰의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북극의 온난화는 북극이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지난해 가을 서민 경제를 압박하는 중대한 일이 있었다. 밀가루 가격 인상 때문에 라면·과자와 같은 밀가루 가공식품 가격이 오른 중대한 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칼국수나 짜장면은 가격이 오르지 않은 대신 양이 줄어드는 비극적인 일도 벌어졌다. 북극 얘기를 하다 갑자기 라면 얘기를 하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라면값 인상의 큰 요인은 북극의 온난화다. 2022년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이 발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쟁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인 일이지만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적으로 아주 중요한 곡창지대로 많은 국가에 밀을 제공하는 주요 공급원이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밀이 필요한 나라의 식탁물가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다행히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가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전 세계적인 식량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을 잠재우기 위해 더 많은 밀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해 어느 정도 우려가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희망의 메시지는 효력이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혹독한 폭염이 인도를 강타한 것이다. 3월부터 시작된 무시무시한 폭염은 50도에 달했고, 멀쩡히 날아가던 새가 떨어져 죽은 사건이 신문 1면을 도배했다.

폭염으로 인해 밀 생산에 차질이 생길 것을 인지한 인도 정부는 자국의 다가올 식량위기 문제를 직감하고 즉각 밀 수출 금지령을 내렸다. 이런 인도 정부의 발표와 동시에 유럽 거래시장에서 밀 가격은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전 세계 경제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겨울 우리 동네 칼국수 가게의 면발 수가 줄어든 결정적 이유다.

올겨울 한파 피해 우리가 짊어져야

전 세계를 구할 수 있었던 인도의 호탕한 선의를 한 번에 무너뜨린 폭염은 왜 발생한 것인가. 바로 북극의 온난화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지구의 북극 지역은 기온이 낮고, 적도 지역은 기온이 높기 때문에 이 둘을 나누는 공기의 장벽 같은 것이 존재한다. 이 공기의 장벽은 두 지역의 온도 차이가 클수록 훨씬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온도차가 크면 클수록 아주 팽팽하게 서에서 동으로 바람이 불면서 두 지역의 공기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지금 북극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두 지역의 온도 차이가 상대적으로 줄었다. 차가운 지역의 기온이 올라가 점점 온도차가 줄어들고 공기 장벽의 힘이 약해진 것이다. 지구의 동서 방향 일자로 쭉 뻗어 있던 고속도로 같던 바람길이 점차 휘어져 굽어지는 산길처럼 바뀌어 버린 형국이다. 그러자 위로 휘어진 지역은 적도의 뜨거운 바람이 더 북쪽으로 몰아치고 남쪽으로 휘어진 지역은 북극의 차가운 바람이 아래로 내려오게 됐다. 그때 인도가 정확히 적도의 바람이 북으로 몰아치는 지역에 위치했다. 한마디로 운이 없었던 것이다. 그 어떤 인도 사람도 북극발 폭염이 자기 동네를 덮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이렇게 북극발 폭염이 특정 지역에 피해를 줬지만, 반대로 겨울에는 북극발 한파가 모든 것을 얼려버릴 수 있다. 겨울철 바람길이 휘어져 공기의 흐름이 아래쪽으로 휘어진 지역에 위치하면 북극에서 출발한 혹독한 찬 바람이 쏟아져 내려와 영하 수십도까지 기온을 낮춰 버리기 때문이다. 우매한 기후변화 반대론자들은 가끔 이러한 한파를 역이용해 지구온난화를 부정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혹한은 북극이 뜨거워져서 발생한 것이기에 정확히 지구온난화 때문이 맞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2021년 엄청난 한파가 미국 텍사스 지역을 덮친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뉴스 장면이 있는데 바로 70대 노인이 나와 “내 평생 이런 추위는 처음이라 너무 무섭다”고 말하는 장면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뜨거운 태양과 사막의 땅으로 알려진 텍사스에서 누가 혹한을 기대했겠는가. 실제 그때 수십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고 많은 공장들은 물건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그곳에 있는 한국의 유명한 대기업 반도체 공장도 가동을 멈춰 그 이후 몇년간 반도체 공급망에 문제가 생긴 것도 유명한 일화다.

이제 막 9월로 들어선 시점에 북극 바다의 온도가 높아 해빙 한가운데 구멍이 생겼다는 기사를 보니 두렵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걸 생각해보면 분명 올겨울 혹독한 한파가 몰아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짊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곳은 차갑게, 뜨거운 곳은 뜨겁게 그것이 지구가 살아가는 길이고 우리가 적응해 나갈 수 있는 방향이다.

지금처럼 차가운 북극이 더 뜨거워지면 인간의 심장이 망가진 것처럼 절대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올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북극의 온난화를 북극곰의 서식지 문제로만 보지 말고, 우리 집 앞마당의 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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