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타파, 권역별·병립형도 정치개혁이다

[최병천의 21세기 진보] 지역주의 타파, 권역별·병립형도 정치개혁이다

전두환의 쿠데타로 좌절된 ‘서울의 봄’은 1987년에 찾아왔다. 그런데 민주화는 지역주의와 함께 왔다. 한국정치사에서 정치개혁 담론은 두 가지 흐름을 갖게 됐다. 하나는 지역주의 타파다. 김대중, 노무현의 꿈이었다. 이후 김부겸, 김영춘, 김두관 등으로 계승되었다. 현재는 민주당 대구·경북 활동가들의 최대 관심사다. 방법론으로 석패율제, 이중등록, 중대선거구제 등이 제시됐다. 다른 하나는 비례성 강화와 다당제 촉진이다. 진보정당의 꿈이었다. 방법론으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비례대표 확대가 제시됐다.

최근의 논의와 연결하면, 후자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발전했다. 전자는 ‘권역별·병립형’으로 연결된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정치개혁 흐름을 계승하듯, 권역별·병립형 역시 정치개혁의 흐름을 계승한다.

정치개혁의 두 가지 흐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형식적으로는 ‘독일식’ 제도를 모방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제도가 됐다. 현행 연동형의 실제 작동방식은 ‘지역구 당선자가 약 90석이 넘는 경우, 비례대표 당선이 금지되는’ 제도다. ‘지역구 당선자’가 많을수록 손해보도록 설계되어 있기에 (지역구 당선자와 분리되는) ‘위성정당’을 촉진하게 됐다. 독일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지역구 당선자가 90석 이상인 정당은 국민의힘과 민주당 두 개밖에 없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비례대표 당선 금지법’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대중적 설득력이 없기에, 변형에 변형 혹은 꼼수에 꼼수를 썼다. 결국, 괴상망측한 제도가 됐다. 취지는 좋았지만, 방법론이 너무 엉성했기에 실패한 제도다.

정치개혁의 다른 흐름은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선거제 도입이다. 권역별·병립형의 개념, 유의사항, 효과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권역별·병립형의 개념이다. 전국을 수도권, 중부권, 남부권의 3개 권역으로 나눈다. 수도권은 서울-경기-인천, 중부권은 충청-대구·경북-강원, 남부권은 호남-부산·울산·경남(부울경)-제주가 포함된다. 현재 비례대표는 47석이다. 단순 인구비례로 나눌 경우 수도권 24석, 중부권 11석, 남부권 12석이 된다.

둘째,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지역균형 가중치’를 도입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선거구 획정’ 기준으로 인구의 최대 규모와 최소 규모가 2 : 1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쉽게 말해, 인구가 ‘가장 많은’ 선거구 유권자가 40만명인 경우, ‘가장 적은’ 지역은 최소 20만명을 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2 : 1 원칙을 역으로 해석하면, 1.999999배까지는 허용이 가능하다.

지역균형 가중치는, 비수도권 지역인 중부권과 남부권에 약 2배(미만)의 가중치를 주는 것이다. 이 경우, 47석의 비례대표는 16석(수도권), 15석(중부권), 16석(남부권)으로 배분된다. 지역균형 가중치의 장점은 비수도권 의석 규모가 더 많아져서, 지역주의 타파 취지를 더욱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소수정당의 비례대표 진입장벽을 높이지 않기 위해 봉쇄조항을 현행 ‘전국 단위 3%’와 연동해야 한다. 최근 전국 18개 단체로 구성된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권역별·병립형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다. 반대 논거 중 하나는 소수정당의 비례대표 진입장벽이 현행 3%에서 약 7%로 높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다.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정당이 반대하는 핵심 논거도 동일하다.

현재 비례대표 의석은 ‘전국 3% 이상’인 정당에만 부여된다. 예컨대, 정당득표율을 전국 합계 2.9% 얻은 정당이 있다면 의석 배분은 0석이 된다. 비례대표 47석을 고려하면, 전국 합계 2.9%인 경우 1.36석을 배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를 ‘봉쇄조항’이라고 한다. 독일의 경우 봉쇄조항은 5%다. 지나친 정당 난립을 막는다는 취지다.

권역별·병립형이 개혁에 부합

소수정당들은 왜 권역별·병립형이 되면 봉쇄조항이 높아진다고 우려하는 것일까? 지역균형 가중치가 도입되어, 수도권 16석, 중부권 15석, 남부권 16석이 배분되었다고 가정해보자. 2020년 총선에서 원내 진출에 성공한 정당 중 최소 득표율을 얻은 곳은 5.4%인 열린민주당이었다. 권역별 실제 득표율을 적용해보면, 수도권은 5.6%로 1.0석, 중부권은 3.9%로 0.7석, 남부권은 5.6%로 1.1석이 배분된다. 이 중에서 ‘중부권’에 주목해보자. 열린민주당은 중부권에서 3.9%를 득표했다. 그런데 중부권 의석수는 0.7석이 된다. 1석이 안 된다. 비례대표가 15석인 경우, 1석을 배출하려면 정당득표율이 6.6666%를 넘어야 한다. 소수정당들이 권역별·병립형을 도입할 경우, 봉쇄조항이 ‘현재 3%’에서 ‘약 7%’로 상향된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이런 우려를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두 가지 조치를 취하면 된다. 하나, 봉쇄조항을 ‘권역 단위’가 아닌, ‘전국 단위’로 적용하면 된다. 둘, 권역에서 의석을 배분할 때, 소수정당에 대해 우선적으로 ‘소수점 반올림’을 해주면 된다. 다시 열린민주당 사례로 돌아와 보자. 열린민주당은 전국적으로 5.42%를 득표했다. ‘전국 3% 이상’을 일단 인정한다. 수도권 5.6%(1.0석), 중부권 3.9%(0.7석), 남부권 5.6%(1.1석)였는데, ‘중부권 0.7석’에 대해 소수점 반올림을 우선적으로 인정해주면 된다. 전국 합계 3석으로 2020년 실제로 받았던 의석수와 같아진다. 이 경우, 진보정당을 포함한 소수정당은 현재보다 추가 혜택은 없으나, 그렇다고 불이익도 없다.

넷째, 권역별·병립형이 도입될 경우, 민주당은 대구·경북과 부울경에서, 국민의힘은 호남에서 4~8명의 ‘권역별’ 당선자를 배출하게 된다. 당선은 비례로 되지만 당선 직후부터 ‘권역·지역’을 대표해서 활동하게 된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국민의힘은 대구·경북에서, 민주당은 호남에서 1당 독점 체제다. 지역의 1당 독점은 지역의 부패와 타락, 그리고 퇴보를 촉진한다. 각 정당의 권역별 당선자들은 상대방 강세 지역에서 ‘메기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가 2~3회 누적되면, 지역 시민사회도 분화되며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 지역 1당 독점을 타파하는 권역별·병립형은 정치개혁의 방향에 부합한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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