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자리는 안녕한가요

차준철 논설위원

지난 연말, 세계 저명 학술지 ‘네이처’가 2023년 과학계를 빛낸 인물로 과학자 10명과 더불어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를 뽑았다. 2011년부터 해마다 ‘올해의 인물’을 발표한 네이처가 인간이 아닌 존재를 명단에 포함한 것은 처음이다. 네이처는 챗GPT가 과학 발전과 진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도 챗GPT를 2023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고, 국내외 언론 다수가 챗GPT 열풍을 연말 10대 뉴스로 꼽았다.

2023년은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해였다. 2022년 11월에 나온 챗GPT는 1년 만에 대세가 됐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산업·금융·법률·의료 등 전 분야에 손쉽게 활용 가능한 수단으로 급속히 확산하며 인공지능 시대를 성큼 앞당겼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의 지난해 연간 매출이 16억달러(약 2조976억원)를 돌파하며 전년의 57배에 달했다고 하니 폭발적인 확산세를 짐작할 만하다. 흔히 산업혁명과 인터넷, 알파고 등장에 비견되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두고 헨리 키신저가 “인쇄술 이후 최대 지적 혁명”이라고 했을 정도다.

인공지능 열기가 한때 수그러들고,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이 나타날 미래를 놓고 기대와 우려가 극단적으로 표출됐던 분위기도 가라앉았지만, 2024년 인공지능 시대를 바라보는 전망은 같다. 기술이 더 빨리 발전하며 더 멀리 달려나가리라는 것이다. 2023년이 태동기라면 2024년은 급속한 성장기라는 얘기다. 사람 같은 로봇, 휴머노이드가 이미 도처에 들어서고 있고 더욱 정교한 차세대 모델 챗GPT-5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이 급속도로 개인과 사회에 닥쳐온다는 것은 인간이 생각하고 풀어야 할 문제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해서는 살아남기조차 어렵게 된다. 속도전으로 개발되는 기술이 선사하는 혜택과 번영이 확대되는 만큼 그에 따른 위험과 부작용도 함께 커지는데 그 간극이 전보다 훨씬 더 깊고 첨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양날의 검’과 같은 문제다.

세계적 석학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구글을 그만둔 제프리 힌턴은 “인공지능이 ‘킬러 로봇’처럼 인류를 파괴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제자 일리야 수츠케버는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기술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등 개발론자들은 인공지능은 사람이 제어할 수 있는 도구라며 공포가 과장됐다고 말한다. 디스토피아의 공포와 유토피아의 희망이 맞선다.

거창하게 인류 파멸이냐 번영이냐를 논하기보다 각자 ‘삶의 질’이 어떻게 바뀔지를 따지는 것으로 이 숙제를 풀어보는 게 좋겠다. 미국 대선 등 올해 세계 각지에 선거가 몰린 터라 인공지능을 이용한 가짜뉴스 선거 문제가 최근 핫이슈이고, 예술·법률·의료 분야 논란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 방면의 해묵은 난제이자 삶의 질에 직결되는 일자리 문제를 살펴보는 게 우선 와닿을 것이다.

지난해 5월 할리우드 작가와 배우들이 63년 만에 동반 파업에 나섰다. 작가들은 대본을 창작하는 일자리가 인공지능에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배우들은 딥페이크 영상이 무단 남용되는 상황을 문제 삼았다. 모두 인공지능의 보조로 전락할 우려를 표한 것이다. 최근 구글은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한 광고 판매 부문 직원들에게 ‘3만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인공지능 개발회사 직원들이 인공지능에 역습을 당한 셈이다. 사무·관리직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우려가 현실화했다. 세계경제포럼 보고서는 인공지능 등장으로 2027년까지 일자리 1400만개가 순감할 것으로 예측하며 사무행정, 경리 등을 주요 감소 분야로 지목했다.

그래도 혹자는 인공지능이 사람 일자리를 빼앗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인공지능은 감정지능이 부족하고, 인간과 경쟁하지 않고, 명령대로만 움직이며, 인간이 작동시키는 존재라는 게 근거다. 하지만 선뜻 납득이 안 된다. 인공지능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갈고닦으면 대체될 일 없다는 말인데 500년 걸린 변화가 5년 안에 이뤄질 만한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를 무시하는 얘기다.

얼마 전까지도 직원이 있었다가 없어진 식당·은행·마트·공장이 주위에 부쩍 늘어난 걸 보면 사람 일자리 대체가 눈앞에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보도자료 기사를 쓰게 하는 국내 언론사가 나온다는 소식이 마침 들렸다. 2024년 지금, 인공지능의 일자리 위협이 지진해일(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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