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올해도 설을 앞두고 민생 행보를 앞세운 정계 인사들이 전통시장을 방문해 활성화 방안을 찾겠다,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힘주어 말하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날짜만 바꿔도 될 만큼 매년 반복되는 모양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상인과 시민들이 그 모습을 마냥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제는 대목 특수도 없다고 한숨짓는 상인들은 웃으며 악수를 건네는 저편의 손이 야속하고, 시장을 오가는 시민들은 명절과 선거철에 한정된 보여주기식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정부는 전통시장을 유지·발전시키고자 2004년 약칭 ‘전통시장법(현재 기준 정확한 명칭은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다)’을 제정해 지원의 토대를 마련했다. 정책적으로 전통시장 살리기를 본격화한 지 20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 전통시장은 좀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여전할까?

사실 전통시장이 침체된 것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시장뿐만 아니라 전통의 범주에서 이야기되는 상당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변화하기 마련이다. 전통시장 침체는 안타깝지만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왜 전통시장을 살리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는가?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지만 2022년 기준 전국에 1388개의 시장이 있고, 그 속에서 31만6315명의 상인이 일하고 있다. 전체 전통시장 연 매출 규모는 25조원에 달한다. 전통시장은 여전히 서민경제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고, 예전만 못하다 해도 하루아침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 만한 몸집은 아니다.

한편 전통시장에는 경제 논리 못지않은 강력한 기제가 작동한다. 전통시장은 ‘자연발생적으로 또는 사회적·경제적 필요에 의하여 조성되고, 상품이나 용역의 거래가 상호신뢰에 기초하여 주로 전통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장소’라고 정의된다. 이는 전통시장이 경제활동이 일어나는 공간인 동시에 하나의 생활권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적 공간임을 명시한다. 오랜 세월 각 지역 특징이 전통시장에 반영되고,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지역민들의 정서가 형성되어 왔다. 지역공동체의 삶이 녹아든 장소이자 지역민의 목소리가 한데 모이는 광장으로 전통시장의 기능이 경제 논리에 뒤지지 않는 이유이자 우리 사회가 도시화, 디지털화되어 갈수록 더욱 가치를 발할 전통시장의 역할이다.

뻔하디뻔한 소리로 전통시장의 현황과 의미를 되짚은 것은 근래 내로라하는 전통시장이 아케이드형 먹자골목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현실에 닿아 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시설 현대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문화관광형 시장이라는 표준화된 모델을 중심으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이 진행된 영향이 크다는 판단이다. MZ 세대들이 즐겨 찾고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도 줄을 잇는 성공적인 문화관광형 시장 사례는 그것대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 방향성이 전체적인 전통시장 활성화를 이끌지는 못했다.

전통시장은 대부분 지역 원도심, 지역민의 생활권에 형성되어 있다. 규모 면에선 1388개 전통시장 가운데 절반이 넘는 746개가 골목길형의 근린상권이다. 전통시장에 지역성이 응집될 수밖에 없고, 그 수만큼 다양한 표정과 성격의 전통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지역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에 너무도 빠르게 하향식의 전통시장 활성화가 추진된 것은 아닐까?

나는 감히 지난 20년의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전통시장 활성화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상인과 주민이 중심이 되어 우리 지역은 어떤 곳이고, 시장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리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되물어 확신을 가지는 것이 먼저라고. 그리고 정부 역할은 지역 주체들이 확신하여 필요로 하는 방식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정책 테두리 안에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갖추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라고.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말이다.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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