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커피와 마라탕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나는 한겨울에도 냉커피를 마시는 ‘얼죽아’다. 차가운 것을 마시면 이가 시린 내가 왜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찾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20년 넘게 한 기자 시절 거의 매일 커피를 5잔 이상 마셨다. 마감이 있는 날은 10잔까지 마셔본 것 같다. 둔필인 탓도 있지만 마감이라는 정신노동의 고단함을 떨쳐버릴 요량이었다. 심지어 커피를 사러 가기도 귀찮으면 사무실에 있는 믹스커피를 차가운 물에 타서 먹었다. 뜨거우면 마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이었다. 찌는 듯한 한여름을 제외하고 나에게 아이스커피는 사실 ‘카페인 링거’였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서 커피로도 씻어지지 않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피로감은 점차 무력감으로 변했고 이명 현상을 유발했다. 병원에 가보니 의사는 과한 커피 음용을 내 질병 원인의 하나로 지목했다. 커피를 끊거나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커피 없인 글뿐 아니라 단순한 일정 체크도 쉽지 않았다. 홍차나 녹차를 마셨지만 커피를 갈음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는 새 커피 없인 생활 자체가 어려운 카페인 중독이 됐던 것이다. 나의 어지러움증은 걷지 못할 정도로 악화됐다. 결국 나는 커피 대신 직장을 끊었다.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나는 지금도 늦은 밤엔 마감을 가급적 피한다. 밤 커피 아니 밤 카페인의 검은 유혹을 피하기 위해서다.

커피와 분투하는 이는 나뿐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커피공화국이다. 영국의 한 자료를 보면, 2020년 우리나라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은 367잔으로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다. 커피 수입량은 세계 3위다. 그러다보니 커피가 밥을 따돌리고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이 접하는 음식 2위에 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1위는 배추김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21 국민영양통계).

카페인으로 10년 넘게 고생했던 내가 요즘 갸웃하는 음식이 있다. 마라탕이다. 마라탕은 중국 쓰촨 지방에서 시작된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젊은층뿐 아니라 초등학생들도 마라탕을 즐긴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배민트렌드 2023 가을·겨울’ 편을 보면, 마라탕이 검색 순위 1위였다. 마라탕을 즐기는 핵심 고객층은 10~20대 여성이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점 자극이기 때문에 섭취하면 통증 완화를 위해 엔도르핀 같은 진정 호르몬이 나온다. 통증은 곧 사라지고 엔도르핀이 주는 쾌감이 남는다. 매운맛도 중독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를 겨냥해서일까? 편의점이나 슈퍼에 가보면 마라라면, 마라과자처럼 마라를 수식어로 쓰는 신제품이 계속 출시되고 있다. 커피공화국에 이어 마라공화국이 곧 세워질 기세다.

고백했듯 나는 젊을 때 스트레스 조절에 실패했다. 커피를 마셔도 풀리지 않던 스트레스는 나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카페인에 무지했다. 그 폐해를 알았다면 커피를 들이붓는 대신 운동이나 명상을 했을 것이고 지금 좀 더 건강할 것이다. 혀가 마비될 듯 맵다는 뜻의 마라 역시 MZ세대를 누르는 고단함을 얼마큼 풀어 주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커피에 마라까지 짊어진 그들의 어깨가 안쓰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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