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들여다본다는 것

김해자 시인
바이칼호수 푸른 눈가에서 태어났다 태극 무늬 두르고
먼 하늘 날아왔다 시베리아 몽고 지나 만리 길
날갯짓 소리 들으며 서로의 울음소리 들으며
날면서 합류하고 날수록 무리가 커졌다
맨몸으로 왔다 공중에 매달려 왔다
작아서 모였다 추울수록 날았다
떼 지어 춤추고
떼로 울면서,
가창오리는 야간조
노을빛 이고 밥 벌러 간다
어두워야 난다 배고파서 오른다
원이 춤춘다 공이 날아가고 물폭탄이 쏟아진다
날개 파닥이는 자리마다 탱크 소리, 서로 상하지 않는다
부딪치지 않는다 춤꾼이자 소리꾼 가창오리는 노래가 춤이고
울음이 노래,

어두울 무렵 기지개를 켠다 외따로들 앉아 있던
가창오리들이 물 박차고 치솟는다 동시에 날아오른다
곤두박질치고 흩어졌다 다시 대열을 이룬다
시시각각 하늘에 새겨지는 검붉은 띠
펼쳤다 접고 갔다 돌아온다
산이 울렁거린다
강이 흔들린다,
기나긴 밤샘 작업이 끝나고
먼동이 트면 다시 솟구칠 게다
낱낱이 엎드려 낟알 주워 먹던 풀숲 사이
밤새 웅크렸던 날갯죽지 털며 한꺼번에 비상할
한바탕 살풀이춤, 저마다 하늘에 점 하나 찍을 게다
아침노을 물고 밥그릇에 수저 부딪치는 오리들의 창가唱歌
허공을 두드려대는 북소리

- 시 ‘가창(歌唱)오리-서천의 허정균 형께’, 김해자 시집 <니들의 시간>


엊그제는 충남 서천에 특강을 갔다, 20년 가까이 그곳에 터잡고 사는 허정균을 만났다. 18년 전 정부가 새만금과 서천 장항 갯벌을 매립할 때 갯벌 살리기 투쟁을 하다 그곳에 눌러앉은 선배다. 허정균은 신문사에 근무한 경험을 살려 지역 주간신문 ‘뉴스서천’에서16년째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내가 ‘새님’이라 부르는 허정균은 장항제련소 환경문제를 특종 보도하여 전국적 이슈로 부각시켰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옛 장항제련소를 철수하고 이전하는 데 목소리를 보탠 것이다. 한 집 걸러 암투병하는 인근 주민들을 오래 들여다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겠다. 1989년 폐쇄되었지만 장항제련소에서 50여년 동안 대기와 토양으로 흘러나온 분진과 중금속으로 인한 것이었음이 2009년 건강영향조사로 밝혀졌다.

허정균은 금강호로 매일 출근한다. 가창오리가 남하하는 찬 서리 내릴 무렵부터 북녘으로 되돌아가는 매화가 필 때까지. 오래 바라본다. 얘들이 이렇게 살고 있구나, 넋 놓고 쳐다보다 새들의 파닥거림을 인간의 말로 알아듣는다. 30만마리 거대한 무리 중 한 모퉁이에서 한 무리 가창오리들이 수면을 박차고 일어서며, “가자. 빈 들판으로” 외친다. 이에 주변의 다른 무리들도 연이어 따라 일어선다. “그러자. 그러자.” 어떤 무리는 수면에 돌멩이처럼 앉아만 있다. 먼저 날아간 가창오리들이 되돌아온다. 모두가 수면에서 떠, 비로소 하나가 되어 이동할 때 군무는 완성된다. 허정균의 눈에 군무는 살기 위한 방편이자 ‘하나 되기 위한 몸부림’이겠다.

총선과 가창오리가 떠나고 난 봄이다. 이제 허정균은 서천 갯벌에서 먹이를 먹고 휴식하는 도요물떼새를 만나러 갯벌로 출근하겠다. 물길을 막아 썩어가는 금강 하굿둑에서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한다는 큰뒷부리도요를 보며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강은 바다로 흘러야지 막으면 되나. 수천년 갯벌에서 조개 캐고 주꾸미 잡아 자식들 다 키우고 살았는디…. 주꾸미 1㎏에 5만2000원이 말이 되나. 할 게 없으니 도시로 다 떠나고 농어촌은 텅텅 비고….”

김해자 시인

김해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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