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탈원전, 아직 시작조차 못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최근 국내 주요 기업들의 상반기 실적발표가 있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관련 기업들의 실적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대한항공을 비롯한 몇몇 기업들은 시장의 기대를 넘어서는 깜짝 실적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전도 1분기에 이어 상반기 8204억원의 연속흑자를 기록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내수 경기 부진, 글로벌 경기 침체 등으로 전력판매가 감소하는 가운데 직전 2년간 적자였던 한전이 어떻게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던 것일까? 더구나 지금까지 탈원전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고 이번에 원전이용률이 오히려 하락한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증가한 것이다.

2017년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발표된 이후 국제연료가 상승과 제세부담금 증가 등으로 부진을 겪었던 한전의 실적이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 한전의 상반기 실적으로 이와 같은 주장이 옳지 않았음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한전의 실적은 원전이용률보다는 국제에너지가격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고 봄이 옳지 않겠는가.

최근 공개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보면 한국이 탈원전 정책을 현재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발표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비교해 볼 때 세계적인 온실가스 감축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석탄발전의 감축 속도는 가속화된 반면, 원자력발전의 설비계획에는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2019년 말 23GW인 원전 설비용량은 2024년까지 4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새롭게 준공되면서 27GW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이른바 ‘탈원전’정책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 한전 흑자가 연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코로나19가 지속되고 있고, 국제유가는 여전히 변동성을 보이고 있으며, 2012년부터 시행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15년부터 시행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및 미세먼지 저감대책 등으로 환경 관련 제세부담금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은 에너지전환이라는 시대적인 흐름을 인정하고, 전력소비 효율성 제고와 온실가스 감축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가이다. 이에 대한 논의 없이는 상장 공기업인 한전의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을 물려주지 못할 수도 있다.

에너지전환의 이행 주체인 한전이 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적정한 재무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전기요금 체계 개선에 대한 국민적인 이해와 지지가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한전은 국민과 전기요금 체계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소통하여 국민적 지지를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고 있는 나라다. 값싼 화석연료에 의지하여 마음껏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탈원전’이라는 틀에 갇힌 소모적인 논쟁을 그만두고 한전이 성공적으로 에너지전환 정책을 수행해 나가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전적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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