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건희 고문헌’ 국립중앙도서관으로 가는 게 맞다

송정숙 |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2021년 4월28일, 이건희 회장 유족들은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는 이 회장 소유 미술품 2만3000여점을 국내 여러 미술관·박물관에 나누어 기부하였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고미술품 2만1600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내외 거장들의 근대미술 작품 1400여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증받은 고미술품 가운데에는 전적 4176건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송정숙 |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송정숙 |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이건희 컬렉션의 전적(典籍), 즉 고문헌 4176건은 왜 국립중앙도서관(이하 국중)으로 가지 않고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으로 갔을까? 국중은 이들 전적이 우리에게 와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는 왜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가? 이를 보면서 10년 전,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대가 약탈해 갔던 조선시대 외규장각 의궤가 귀환하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간 일이 떠오른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중국도서로 분류되어 있다가 박사학위 취득 후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에 의해 1975년 발견되었다. 박 박사의 연구와 반환운동의 결과, 2011년 5월 외규장각 의궤 297책이 영구대여 형식으로 귀환하였다. 의궤는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에 큰 행사가 있을 때 후세에 참고할 수 있도록 일체의 관련 사실을 그림과 문자로 정리한 책이다. 책이면 응당 도서관으로 가야 하는데, 외규장각 의궤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갔다.

이번에도 이건희 컬렉션의 전적이 국중으로 가지 않고 고미술품의 일부로 분류되어 국박으로 갔다. 기증자의 의사일 수 있지만,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이건희 컬렉션은 모두 미술품이므로 고미술품인지, 근대미술품인지의 시대구분만 해서 고미술품은 국박으로, 근대미술품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보내면 된다고 생각한 듯하다.

도서관과 박물관은 기억기관이라고 하고, 문화유산기관이라고도 한다. 우리 인간의 기억은 완전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했는가의 기억들을 수집, 보존하는 도서관과 박물관은 정보자원을 나누어 관리한다. 도서관은 필사하거나 출판된 책자 자료를 주로 수집하며, 박물관은 3차원의 입체자료를 주로 수집한다.

이렇게 볼 때,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전적, 즉 고문헌은 국가대표도서관인 국중으로 가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 책이 도서관으로 오면 분류, 편목 후 서가에 꼽히면 누구나 언제나 이용가능하다. 귀중서의 경우에 대출은 제한되지만 해제작업을 통해 내용의 대략을 안내해 주고, 원문이미지를 통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고문헌이 박물관으로 가면 수장고로 들어가서 전시할 때만 볼 수 있다. 박물관 유물 수집의 목적은 전시여서 이용이라는 개념이 없다. 박물관에서는 고문헌의 경우에도 목록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행하였는지, 책의 편찬과 간행에 관여한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간행되었는지 등에 관한 사항들은 관심 밖이고, 책도 그림이나 도자기처럼 시대, 재질, 작가, 분류, 크기 등이 관심사일 뿐이다. 원문에 대한 접근은 일부를 제외하고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그림이나 도자기와 달리 책은 한장 한장 넘겨가면서 내용을 읽어보아야 한다. 박물관에서 하는 분류는 문헌인지 서화인지, 도자기인지 등의 유물의 유형 분류이지 도서관처럼 문학인지, 철학인지, 역사인지 등의 주제 분류가 아니다.

전적은 박물관에서 유리창 안의 모습만 보아서 될 일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상세한 목록과 해제, 원문 이미지를 통해 그 내용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 도서관으로 가면 전적에 담긴 내용이 연구자에 의해 학술논문이나 저서로, 작가에 의해 영화나 드라마·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로 다시 태어난다. 이런 이유로 전적류는 박물관이 아니라 도서관에 있을 때 그 가치가 더 빛난다. 따라서 이건희 컬렉션의 전적도, 외규장각 의궤도 국립중앙도서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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