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고 싶다

선우현정 |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친구는 소심한 자신이 싫다고 했다. 자신에게 차갑게 대하는 직장 상사 때문에 늘 고민이 많았는데, 그가 미워 꼴도 보기 싫다가도 혹여 사람을 이렇게 미워해도 되는지 고민하게 되는 자신이 싫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미용실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억울한 마음에 한마디 했다가, 한 번 참으면 될 일을 괜히 크게 만든 거 같다고 고민하면서 스스로를 또 소심하다고 했다.

선우현정 |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선우현정 |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요즘에는 소신 있게 행동하는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어중간하고 모호한 태도를 취하기보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생각과 철학을 주장하며 원하는 것을 취하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하나의 진리만 주장하며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한다. 그들을 보며 나는 궁금해한다. 정말 저렇게 생각하는 걸까.

정신과에서는 자신의 증상에 대한 인사이트(insight)가 있는 환자의 예후를 좋게 본다.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사이트가 없는 환자는 치료 과정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 당연히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인사이트가 있는 환자들이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은 의미 있는 현상이다.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의심하고 더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다. 결국 그들은 보다 만족스럽고, 다른 사람들과도 원만하게 어울리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게 된다.

개인의 인사이트는 정신과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행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주변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그리고 그것은 과연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알아차리는 능력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의 건강과도 직결된다. 자신의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스스로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올바른 행위인지 숙고하려는 의지라도 가지고 있다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구성원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부끄러움도 괴로움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자신만이 올바르며 다른 사람의 압박에 못 이겨 반성하는 시늉을 하는 사람은 결코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없다. 그들은 그런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상상해보곤 치를 떨듯 몸서리를 친다.

자신의 행위를 끝없이 돌아보고 어긋난 것이 없는지 반성하는 것은 소심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성숙이라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언제나 거침없고 당당한 자보다 늘 번뇌하고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는 자를 존경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밤이면 밤마다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거울을 닦아도 부족했던 윤동주처럼, 지독하리만큼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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