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학생다움은 머리 길이에서 나온다는 ‘편견의 학교’

이영일 한국청소년정책연대 공동대표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은 지난 5일 오전, 청계광장에서는 청소년 30여명이 모여 어린이·청소년인권 보장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 모인 청소년들은 두발·복장 규제가 만연한 학교를 비판했다.

이영일 한국청소년정책연대 공동대표

이영일 한국청소년정책연대 공동대표

지난 4월4일에는 진보당 청소년특별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발 규정을 포함해 경기도 전체 고등학교 학생생활인권규정에 인권침해 규정이 있다”고 주장했다. 4월15일에는 부산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사하구 모 공고 앞에서 학생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 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머리를 짧게 자르라고 강요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학생에게 욕설을 했다는 것이다. 대전의 중·고등학교 150곳 중 두발을 규제하는 학교가 87%가 넘는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금 전국에서 이 ‘두발 규제’로 청소년과 시민들의 항의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학교에서 이렇게 학생들에게 두발을 규제하는 이유는 허탈할 정도로 간단하다. ‘학생답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말하는 이 ‘학생다움’이란 무엇을 뜻할까. ‘머리를 잘라야 성적이 잘 나온다’는 근거는 또 무엇일까. ‘머리를 상고머리로 잘라야만 학교 밖에서 학생인지 아닌지가 구별되므로 생활지도를 잘할 수 있다’는 학교, 교사들의 시선은 마치 일제강점기 정보과 형사를 떠올리게 한다.

남학생은 그렇다치고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규정에 ‘하얀 팬티만을 입어야 한다’는 조항도 있는데 이런 학생생활규정은 어이가 없다. 학교장이나 교사들은 여학생이 하얀 팬티만을 입어야 학생처럼 보인다는 것일까.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11월, 학생의 용모에 관한 권리가 헌법상의 기본권이라며 두발 자유를 보장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분위기다. 국가인권위 권고도 무시하는 학교가 학생인권조례를 지킬 리 만무하다.

편견(prejudice)은 생각보다 훨씬 지독하고 폭력적이다. 특히 특정 집단이나 특정 상황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내포된 편견은 차별까지 양산한다. 차별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여론을 왜곡한다. 그리고 주관적 판단으로 삶의 행복 추구를 매도한다. 수십년 동안 이러한 편견과 차별의 메커니즘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바로 학생 두발 문제다.

‘머리가 길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거대한 편견은 입만 열면 ‘교육적’임을 외치는 일부 교사들로 인해서 차별로 이어져왔다. 기성세대들은 ‘교사들이 하는 말이 근거가 있겠지’라는 근거가 없는 왜곡된 여론을 전파하는 동조자로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왔다.

왜 우리 학교에서는 교육적 기준과 잣대를 자꾸 두발로 재단하려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선생님이 훨씬 더 공부를 잘 가르친다고들 하는데, 그럼 학교 교사들도 머리를 군인처럼 빡빡 깎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교사들은 얼마나 황당할까. 성인에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그렇다면 청소년들을 상대로 머리를 자르라고 하는 것, 두발 규제의 본질은 결국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소년이니까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인가. 그것이 곧 편견이 불러오는 폭력임을 왜 학교는 이해하지 못할까. 한 청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청소년들 머리카락보다 어른들 편견의 잣대부터 잘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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