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진정한 의료 선진화를 원한다면

김진영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마저 집단 사직 국면에 접어들면서 중증환자와 응급환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환자들의 생명을 볼모로 의사와 정부 간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 싸움에서 정부가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3개월 면허정지 카드로 의사들을 굴복시킬 수 없다. 게다가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를 비롯한 현 정부의 대책으로는 지방의 필수의료 붕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결국 의미 없는 힘겨루기로 환자들만 희생시키는 꼴이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고, 지역인재전형으로 그 지역 학생을 선발해도, 졸업 후 이들의 상당수가 수도권 병원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으로나 삶의 질 측면에서 지방병원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려봐야 장기적으로 수도권 의사 수만 더 증가할 뿐 지방 의사 부족 현상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것이 졸업 후 그 지역에 머물도록 의무화하는 지역의사제가 필요한 이유다. 예컨대 졸업 후 10년간 해당 지역에 머무는 조건으로 의대생을 따로 선발하고, 재학 시 전액 장학금을 국가가 제공하며, 의무복무 미이행 시 면허를 제한하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필수의사 계약제는 자발적인 지원에 의해 인력을 마련한다는 것인데 실효성이 없다. 이미 유사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나 자원하는 의대생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다음으로, 현재 지방엔 필수의료 전문의를 위한 일자리가 부족하고, 있는 일자리는 당직 등 노동시간이 과도한 곳이 많다. 지방의료원 등에서 필수의료 전문의 구인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는 이유는 노동조건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부과, 성형외과 등 인기과를 전공한 전문의가 필수의료과를 전공한 전문의보다 몇배 많은 소득을 올리는 상황에서 획기적이지 않은 수가 인상 정도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필수의료과를 지원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획기적인 수가 인상은 과잉진료를 유도해 의료비 급증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초래할 수 있어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은 행위별 수가제와 실손보험으로 인한 과잉진료의 추세가 점점 강해지면서 2023년 의료비 가계부담률이 OECD 국가 중 7위였다. 그렇기에 대안은 과도한 금전적 유인책보다는 양호한 노동조건과 적정 수준의 임금을 제공하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구체적 방안 중 하나는 의대 정원의 상당 비율을 공공의사 트랙으로 뽑는 것이다. 새로 공공의대를 설립하기보다, 기존 의대에서 정원을 따로 배정해 선발한 후 필수의료 전문의로 육성하는 방안이다. 이들은 일종의 공무원으로서 필수의료가 필요한 곳에 배치돼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고, 공공의사 학위로는 사직 후 비필수의료과에 취직할 수 없도록 하고, 은퇴 후에는 공무원연금의 혜택을 주는 것이다. 보건소나 공공 클리닉센터에 이들 공공의사를 충분히 보급해 적정 노동시간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한다면 기꺼이 공공의사로서 필수의료를 위해 복무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의료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영역에만 맡겨둘 수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의료는 공공부문이 70%, 민간부문이 30%를 점한다. 반면 한국은 공공의료기관 비율이 5.5%에 불과하다. 이제라도 공공의사 제도를 통해 공공부문 비율을 확대하여 의료의 선진화를 이뤄야 한다.

정부는 의사집단과 보건정책 전문가들을 망라한 협의체를 구성해 지방 필수의료 붕괴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의사제와 공공의사제 도입에 의사집단이 합의한다면,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축소하거나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으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총선을 의식하여 2000명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진영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김진영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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