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의 ‘리얼리티 쇼’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외교가 리얼리티 쇼처럼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6·30 판문점 회동은 반전과 감동이 있는 최고의 한 편이었다. 방한 직전 비무장지대를 방문할 것이며 김 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싶다는 트윗을 올렸을 때만 해도 설마 진짜 만날까 생각했다. 하지만 31시간여 만에 즉흥 제안은 현실이 됐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6년 만에 상호 적대국인 북·미의 정상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웃으며 손을 마주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땅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고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대통령이 됐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역사적 만남이 이뤄졌다.

[특파원칼럼]북·미 정상의 ‘리얼리티 쇼’

시간을 조금만 확장하고 주인공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쇼는 더욱 흥미롭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북·미관계는 최악이었다. 북한은 연일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했고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핵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를 경고했고 일부 미국 언론은 대북 군사적 대응 가능성의 확률을 계산했다. 그랬던 북·미관계가 드라마처럼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북·미 정상은 이미 두 번의 정상회담을 했고, 이제는 손을 맞잡고 북한 땅까지 밟았다.

반전 드라마의 연출자이자 주인공은 워싱턴의 아웃사이더 트럼프 대통령이다. 집권 초기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그의 변덕이 전쟁을 불러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6월12일 역사상 첫번째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노벨 평화상이란 연관 검색어까지 등장했다. 또 다른 주인공은 핵개발을 완료했다며 미국에 맞대응할 수 있다고 위협하던 김 위원장이다. 그는 미국이 지정한 대표적 인권침해국가 북한을 삼대에 이어 통치하고 있는 30대 젊은 독재자다. 그가 인민의 삶을 개선하겠다며 미국과 운명을 건 외교에 나섰다.

물론 역사상 처음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에 비해 실속이 없다는 비판은 가능하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이란 목적지는 제시됐지만 그곳으로 가기 위한 구체적 방법은 합의된 게 아직 없다. 친서와 악수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맞다. 하지만 전에 없던 북·미 정상의 관여 행보를 사진촬영용, TV용이라고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한국전쟁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상징하는 판문점을 북·미 정상이 함께 밟은 것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다. 70년 적대를 이어온 북·미가 한 번에 불신을 씻어낼 수는 없다.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해 두 나라는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키워야 한다. 북·미 정상의 계속되는 만남은 그 동력이 될 것이다. 전략적 인내로는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북한 정상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자신은 행동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평은 정당하다. 안타깝게도 “사진 촬영 기회에 미국의 영향력을 낭비하지 말고 독재자와 러브레터를 주고받지 말라”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주장은 틀렸다.

아직까지 북·미 정상 주연 리얼리티 쇼의 결말을 맞히기는 어렵지만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는 결정적 시점은 예측 가능하다. 2020년 11월 미국 대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대통령으로 남을지, 재선 성공 후 어떤 대북 정책을 펼지 불확실하다. 북·미관계는 그전에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달려가야 한다. 아직 계절이 여섯 번 바뀔 시간이 남았다. 곧 실무협상이 시작될 것이고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의 길도 열렸다. 남·북·미·중 정상의 종전선언도 가능하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의 휴전선 회동까지 이뤄졌으니 트럼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나 김 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이 성사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리얼리티 쇼 속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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