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과학’ 대신 ‘정치’로 변질된 과학벨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결국 우려한 대로 대전과 영·호남에 걸친 ‘분산배치’로 결론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오늘 과학벨트위원회를 열어 핵심 시설인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 본원은 대전 대덕특구에 두고, 기초과학연구원 분원은 영·호남에 분산배치하는 내용의 입지 선정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된다면 정치논리가 개입돼서는 결코 안되는 과학벨트가 사실상 ‘나눠먹기’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핵심기능은 분산하지 않았다’는 모양새만 갖췄을 뿐이다.

과학벨트의 분산배치는 동남권 신공항 사업 백지화 이후 급속히 떠오른 아이디어다. 신공항 유치가 수포로 돌아간 데 따른 지역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분산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지난달 초 이명박 대통령과 대구시장·경북지사와의 청와대 오찬 때 지자체장들의 분산배치 건의가 있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이 즈음 박형준 대통령 사회특보도 분산배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후 분산배치에 대한 과학계의 우려와 반대 여론이 거셌지만 결국 정부는 정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벨트가 정략적 흥정거리가 된 계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 뒤집기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세종시와 대덕연구단지, 오송·오창 산업단지를 하나의 과학벨트로 발전시킨다’는 공약을 파기하고 과학벨트 입지를 원점으로 돌리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이를 둘러싼 갈등과 국론분열, 유치 경쟁이 본격화했다. 여기에 동남권 신공항·한국토지주택공사 이전 문제까지 겹쳐 분산배치를 요구하는 정치권과 지역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하지만 과학벨트는 낙후지역을 위한 국책사업도 아니고 공공기관 이전처럼 국가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사업도 아니다. 기초과학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과학 선진화의 비전을 담은 사업인 만큼 모든 정책 결정은 ‘연구효율의 극대화’ 원칙 아래 이뤄져야 마땅하다. 세종시·대덕·오송·오창을 연결하는 애초의 계획도 연구 시설과 기능의 집중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고려한 것이었다. 따라서 과학벨트의 분산배치는 정략을 위해 연구효율을 일정 부분 희생시킨 결정이다.

정부는 과학자·전문가들로 과학벨트위원회를 꾸리고 공정한 입지 선정을 다짐했지만 결과를 보면 정략적으로 나눠주겠다는 정부의 속셈에 위원회를 들러리로 세운 셈이다. 동남권 신공항 결정에서 보듯 정부는 갈등 조정자로서의 역할은커녕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킨 뒤 정략적으로 봉합하는 식의 행태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정부 결정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지역의 불만은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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