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구시대 잔재 ‘국정원 존안자료’, 조속한 폐기가 옳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주요 인사들의 인물정보인 ‘존안자료’가 국정원에 보관돼 있다고 폭로해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 10일 방송 인터뷰에서 박정희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정치인·기업인·언론인 등의 정보 ‘X파일’이 국정원의 메인 서버와 일부 기록에 남아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국정원은 “재직 시 알게 된 직무사항을 공표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반발했다. 국정원직원법 위반 시비가 일지만, 비밀로 치부돼 온 국정원 존안자료 실체를 전직 국정원 수장이 공증한 격이 됐다.

박 전 원장은 “정치인은 어떻게 돈을 받았다. 어떤 연예인하고 ‘섬싱’이 있다는 내용이 다 들어 있다”고 존안자료 내용을 예시했다. 대개 증권가 정보지 수준으로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는다면서 “시효도 넘은 특정인 자료를 공개하면 파장이 클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정원장 사전 결재 없이는 서버 열람을 못하도록 조치했지만 폐기가 맞다고 결론지었다. 국정원 존안자료의 양은 방대하다. 행정·입법·사법기관 사무관급 이상과 대기업 임원급·언론사 간부·대학교수·성직자·시민단체 인사들이 망라됐으며, 인적사항부터 시작해 접촉 인물·사생활·비위까지 자료를 쌓아갔다고 한다. 지난해 초 공개된 국정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 사찰 문건에는 사무실 임대료·가족행사까지 담겼고, 존안자료가 A4 용지 100장을 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긴 세월 국정원 정보관(IO)의 손으로 만들어진 흔적들이다.

여야는 지난해 국회에서 이명박 정부 사찰 문건 공개 후 ‘국정원 60년 흑역사 청산 특별법’ 제정을 추진했다. 구시대의 잔재를 뿌리 뽑자는 데 공감한 것이다. 그러나 합법·불법적으로 취득한 정보가 섞여 있어 다 없앨지 선별 폐기할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다 실제 입법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원장과 군경 정보 수장들의 독대보고를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하고 바람직한 결정이다. 문재인 정부 이전 정보기관의 존안자료 작성과 대통령 독대보고는 민간인 불법사찰과 정치 개입을 촉발했다. 존안자료는 그대로 두면 권력자로 하여금 활용하려는 욕망을 부추기고 정보기관의 불법 행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여야는 박 전 원장이 공론화한 국정원 존안자료를 조속히 폐기하기 바란다. 국정원의 진정한 반성도 존안자료의 작성과 활용, 보존의 실태를 규명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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