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과해야 할 ‘대파 소동’, 여권 해명이 국민 분통 더 키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 파문이 열흘째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서울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아 “저도 시장을 많이 가봐서, 그래도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 대통령의 시장 물가에 대한 안이한 인식, 보여주기식 ‘물가 점검쇼’에 대한 혹평과 비판이 이어졌다. 생필품 고물가로 힘겨운 서민들의 분노가 커졌음은 물론이다.

파문이 가라앉기는커녕 대파가 선거 유세·집회 현장에서 소품으로 쓰이고, 인터넷 밈으로 돌고 있다. ‘대파 현상’이라 해도 좋을 이번 소동은 대통령실과 여당 인사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과 태도가 기름을 확 부었다. 대통령실은 지난 26일 보도자료에서 당시 매장의 대파값이 그렇게 낮을 수 있었던 것은 “정부 물가안정 정책”이 반영된 덕분이라고 했고, “문재인 정부 시기” 대파값이 6981원까지 올랐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수정 국민의힘 수원정 지역구 후보는 방송에 출연해 “875원은 한 뿌리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두둔해 헛웃음을 자아냈다. 통상 마트에서 한 뿌리만 팔지 않고, 당시 상황도 한 뿌리가 아니었단 손가락질이 이어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한술 더 떠 윤 대통령의 대파 발언을 전한 MBC 보도를 선거방송심의규정의 ‘객관성’을 위반했다는 민원을 접수하고 제재 심의 대상에 올릴지 검토 중이다.

여권의 대응은 시민들의 분통을 더 키울 뿐이다. 사람들이 875원이라는 극단적으로 낮은 할인·이벤트 가격의 도출 과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혹은 지난 정권 때 대파값이 더 높은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 이런다고 생각하는가. 그 875원이 합리적이란 대통령 발언을 듣고, 눈앞에서 접하는 3000~4000원의 대파 한 단 가격이 화나는 것이다. 벌써 집권 3년차이다. 정부가 고물가 관리와 민생 정책 실패를 인정·사과하지 않고 변명만 하려니 외려 ‘대파 총선’으로 커진 셈이다.

윤 대통령이 연초부터 ‘관권선거’ 성격이 짙은 민생 토론회를 24차례 열면서 토건 개발 공약을 부풀려서 띄운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서민들이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하고 문제의 핵심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면 그런 정부를 믿고 의지할 국민은 없다. 여권은 시민의 생활고와 울분이 대파로 터진 것임을 직시하고, 겸허한 자세로 물가부터 잡기 바란다.

시민들이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 주최로 열린 수입농산물 철폐 전국농민대표자대회에서 대파를 손에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들이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 주최로 열린 수입농산물 철폐 전국농민대표자대회에서 대파를 손에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값 875원’ 발언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독자 제공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값 875원’ 발언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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