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존중’이 아니라 ‘노동 해방’이다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지난해 12월25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은 보수언론과 일부 경제지엔 큰 충격이었나 보다. 그들은 전체 노동조합원 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특히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수가 한국노총을 추월했다는 사실을 마치 ‘나라가 망할’ 것처럼 다뤘다. 노조에 대한 낡은 공포를 조장하고 상투적 반민주노총 선동에 열을 올렸다.

[정동칼럼]‘노동 존중’이 아니라 ‘노동 해방’이다

그러나 노조 가입(률)이 한 사회의 노동자·시민이 얼마나 정당한 임금과 자유로운 사회권을 누리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척도라면, 그래서 실질적 민주주의의 수준을 평가하는 하나의 지표라면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이나 민주노총이 제1노총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은 실속은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여전히 ‘노조 할 권리’가 모든 일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공공부문과 대기업 노동자의 것일 뿐임이 다시 드러났기 때문이다. 노동부에 의하면 공공부문 노동자는 약 70%나 노조에 가입돼 있으나, 민간 부문 노동자 중 노조 가입자는 10%도 안된다. 또 300명 이상 기업의 노조 조합원 비율은 전체 가입자의 87.5%나 되지만 30명 미만의 작은 사업장 노조 조직률은 0.1%에 불과했다. 작은 민간기업에 다니는 이 사회의 무수한 사람들은 노조와 인연 자체가 없고, 노동권과 ‘근로기준’을 보장받지 못한 채 불이익을 감당하며, 중소 사업주와 ‘을 대 병’의 갈등을 겪으며 직장생활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전체 노조 조직률은 11.8%로 2017년에 비해 단 1%만 늘어났다. 오히려 노동조합 수 자체는 줄었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해 우리가 묻고 생각해야 할 것은 여전히 왜 노조 가입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은 11.8%에 불과한지, 그리고 자랑스러운 ‘촛불혁명’을 하고 ‘노동 존중’ 정부 치하에 사는데도 왜 노조 가입률이 단 1%밖에 늘어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세 가지를 떠올려본다.

첫째, 제도적·법적인 문제가 시민과 노동자들을 옥죄고 노동조합을 꺼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독소조항이 가득한 노동법이 노조를 약화시켜왔다고 진단한다. 예컨대 노조 활동 시간의 일정 부분만 임금을 주는 타임오프제는 노조를 위축시킨다. 특히 규모가 작은 노조는 이 때문에 존재 자체가 위태롭다. 또한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사용자가 조합원 수가 많은 노동조합만 제1노조로 선택해 교섭을 독점하게 했다. 이는 노조 탄압과 노동자 간 분열을 조장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

둘째,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가진 한계나 부실함 때문일 것이다. ‘촛불혁명’과 ‘민주주의 국뽕’에도 노동권에 관한 한 한국은 ‘선진국 수준’과 큰 거리가 있다. 이번 1월 초에 정부는 유엔으로부터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에 진전이 없다고 또 지적받았다.

그리고 정부는 민간 기업의 노동 탄압에 대한 ‘방치’를 기본 정책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법’과 ‘노사 자율’이란 명목이겠지만, 법과 기업의 힘 앞에 절대 다수의 노동자는 힘없는 개인이며 노조 또한 ‘구조적’ 약자다. 바뀌지 않은 이 ‘구조’를 고려하면 정부는 게으르고 무디다. 그래서 한국 노동자들은 오늘도 스스로 목숨을 던지거나 밥을 굶으며, 고공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최대의 인간적 비참을 감당하는 싸움을 벌이고 보여주어야 한다. 노동관계법을 고치고 부당 노동행위를 근절하지 않으면서 ‘공정사회’를 입에 올려도 될까?

마지막으로, 조직 노조운동과 민주노총에 대한 일부 대중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겠다. 고용불안이 삶의 조건 자체가 된 청년, 광범위하게 비정규직화된 여성, 무권리 상태에 있는 특수고용직 및 플랫폼 노동자의 문제가 확고히 운동의 중심의제여야 하지 않을까? 민주노총이 조금씩 젊어지고 있고 ‘사회연대’에도 노력하겠다는 소식을 가끔 접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보다 깊은 차원에 있다. 민주노총 또한 대기업 공공부문 노동자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청년, 여성 그리고 비정규직과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스스로 나서야 하지만, 그들에겐 이중·삼중의 굴레가 있으니 큰 딜레마다. 민주노조운동과 민주노총은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시민의 조직을 위한 매개나 마중물이 되는 역할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시혜적이고 일관성 없는 ‘노동 존중’을 기다리고 기대할 수 없다. 우리 노동자·시민은 함께 ‘노동 해방’의 새로운 길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겠다. 그 길은 20세기의 그것과는 다른 내용을 가지리라. 노동과 돌봄·가사·서비스 노동에 대한 다른 개념이 필요하고, 불안정 고용 상황에서도 누구나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일하며 하루하루 사는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재분배하는 일 자체가 ‘노동 해방’의 한 방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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