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청와대다, 바보야’

이승철 | 논설위원

아마 믿을 사람이 없을지 모르겠다. 지난 4월 한·미 쇠고기 협상이 벌어지고 있을 때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이 그 진행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다면 말이다. 그런데 사실이다. 청와대와 몇몇 관련부처를 찔러 보아도 경제수석실이 협상에 관여했다는 답만 들었을 뿐이다. 한·미 쇠고기 협상과 같은 중요한 대외 현안에 대해 외교안보수석실이 소외되어 있었다면 무엇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얘기지만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제1 야당인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회동이나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회동도 마찬가지다. 요란하게 만남이 이루어졌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어 결과적으로 강한 후폭풍을 맞았다. 우리와 같은 정치구조에서 야당 대표나 당내 비주류 대표와의 회동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 법이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별다른 준비없이 회동을 추진한 것을 보면 오만한 것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소박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민심 읽는 감각 뒤떨어져 심각

청와대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편들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한·미 쇠고기 협상 파문은 수습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일까. 우선 청와대가 당면한 문제로,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 각 수석실이 제각각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청와대에 종적 체제는 갖추어져 있지만 횡적 체제는 형식적일 뿐이다. 수석비서관회의가 매일 아침 열리지만 정보교환이나 의견교류는 활발하지 못하다. 수석실 간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쇠고기 협상이 좋은 예다.

감각 부족이 심각하다. 특히 민심을 읽는 감각이 한심할 정도로 부족하다. 이 대통령이 담화에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해온 행태로 볼 때 실제 청와대에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청와대는 국민과의 소통을 얘기하지만 청와대가 염두에 두고 있는 소통은 쌍방향이 아니라 일방적 ‘설득’일 뿐이다. 대통령이 쇠고기 협상 파문에 유감을 표시하고, 교육부 장관이 ‘모교 지원’ 파문에 사과를 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러나 지금 청와대는 겉으로 자신들이 문제라고 인정하면서도 ‘강부자’ 정권의 한계 탓인지 모르지만 진실을 외면하려 하고 있다.

청와대가 준비하고 있는 해법에서 이러한 점이 드러난다. 청와대는 문제 보완을 위해 정무와 홍보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정치권 및 대국민 소통을 위해 각각 정무 특보와 홍보수석 자리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어디 현재 상황이 청와대와 정치권의 소통 부족 탓인가. 촛불시위가 대국민 홍보 부족 탓인가. 아니다. 청와대의 헛손질과 잘못된 홍보가 오히려 민심을 분노케 해 지금의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청와대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재정비에 들어가야 한다. 여기에는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류우익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비서진 전반에 대한 심기일전의 분위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소통체계 정비를

그러한 바탕 위에서 민심을 파악하고 소통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한편 청와대 비서진간의 내부 의사소통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청와대에는 현재 민심을 추적하는 조직이 없다. 내부 소통 활성화를 위해 노무현 정권의 청와대를 참고할 수 있을 듯하다. 노무현 정권 때는 386 실세들의 전횡으로 효과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의사소통 체계가 가동했다.

1992년 미국 대선 때 남부의 가난한 아칸소주의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은 걸프전에서 승리한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허약한 후보였다. 하지만 그는 경제에 초점을 맞추어 부시 전 대통령을 집중 공략한 결과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때 그가 외친 말이 ‘문제는 경제다. 바보야’다. 청와대에 똑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그 한 마디에 길이 있다.

‘문제는 청와대다. 바보야.’

<이승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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