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보고서’에 대한 기대와 우려

신동호 논설위원

최근 흥행작 <설국열차>나 9년 전에 나온 <투모로우> 같은 영화는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환경이 극단적으로 변화한 상황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런 설정은 영화일 뿐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설국열차>는 미래의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있을 법한 일의 하나일 수 있다. 그런 설정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대중적 경각심을 더하는 데는 보탬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될지는 의문이다. <설국열차>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미래에 설국열차를 타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되레 우리가 이미 ‘폭염열차’에 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올여름 폭염과 열대야를 겪으며 우리는 기후변화를 ‘피부로’ 절감했다. 가뭄과 홍수 등 갖가지 기상현상에 ‘기록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그것을 기후변화 탓이라고 굳게 믿는다. 기후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고, 인간의 힘으로 되돌릴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을지 모르며, 21세기는 인간의 마지막 세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도 곧잘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이 확인되면 확인될수록 오히려 그것이 중심 의제에서 멀어지는 현상이다.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딱히 그 이상의 중요한 문제가 새롭게 대두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경향의 눈]‘기후변화 보고서’에 대한 기대와 우려

그만큼 당장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문제가 절박해서일까. 너무 많이 들어서 ‘관심 피로’ 현상을 보이는 것일까. 사람들이 미래의 피해를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듯 이른바 ‘기든스의 역설’에 빠져서일까. 확실한 것은 우리는 가열되는 냄비 속의 개구리 신세라는 점이다. 그것도 모른 채 질주하는 폭염열차 안에서 <설국열차>를 보면서 혀를 차고 있는지도 모른다. “쯧쯧쯧, 인간의 욕심이란! 우매함이란!”

기후변화 논의 열기가 식은 가운데 최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9일 뉴욕타임스는 로이터 기사를 받아 배포나 인용·보도가 금지된 IPCC 5차 보고서 초안을 기사화했다. 핵심 내용은 기후변화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4차 보고서의 ‘가능성 높은’(90~100%)에서 ‘극히 가능성 높은’(95~100%)으로 상향 조정하는 등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에 대한 신뢰성과 가능성 평가치를 더욱 높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추세로 온실가스가 계속 방출되면 2100년 해수면이 최소 21인치(53.3㎝)에서 최대 3피트(91.4㎝)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내용도 있다. 이는 4차 보고서가 전망한 26~59㎝보다 훨씬 높은 상승치다.

IPCC는 기후변화 과학에 가장 권위 있는 비정부기구로 2007년 4차 보고서를 낸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바 있다. 지구는 온난화되고 있고, 그 원인은 인간의 활동이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인류 문명이 지속될 수 없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 때문이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기후변화 과학을 보편적 사실로 받아들인 것은 IPCC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IPCC 5차 보고서는 7년 만에 나오게 되는 기후변화 과학의 업그레이드판으로, 지지부진한 기후변화 국제협상이나 대중의 관심을 새롭게 환기시킬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9월 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제12차 제1실무그룹 회의 및 제36차 IPCC 총회에서 채택될 것으로 보이는 ‘정책 결정자를 위한 요약 보고서(SPM)’에는 새롭거나 기존의 주장을 뒤집을 만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울 게 없다는 얘기는 그만큼 기후변화 과학이 현실과 부합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IPCC 5차 보고서는 내년 3월 기후변화 영향과 적응 부분을 다루는 제2실무그룹 보고서와 10월 종합보고서 채택을 끝으로 완료된다. 이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데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솔직히 낙관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기후변화라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행동에 선뜻 나설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논의와 논란을 통해 종교적 콘셉트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착하게 살면 저 세상에서 보답을 받는다’는 약속으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미래 가치를 생각하기에는 현실의 고통이나 현재 가치의 유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폭염열차는 달릴 것이다. 이미 우리 스스로 그것을 멈추는 것이 불가능한 속도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절망할 것인가. 제3의 길은 없는가. ‘피부암’과 연관지어 오존층 문제 해결에 불을 댕겼듯이 기후변화 전선의 충격요법이라도 나올 것인가. <설국열차>처럼 지구공학적 해결 시도가 구체화될 것인가. IPCC 5차 보고서를 기대하면서 기후변화 논의가 어떤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지 궁금증을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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