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사회 복지는 증세로 대응해야

이윤호 | 순천대 교수·경제학

2000년대 초반 일본 도쿄에 간 적이 있다. 일이 없는 시간에는 여행자의 느긋한 기분으로 도쿄 시내를 돌아다니며 일본과 일본인을 관찰했다. 낮에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 외국인으로서 내 눈길을 끄는 낯선 모습이 하나 있었다. 그건 승객의 대다수가 노인이라는 점이었다.

[시론]고령 사회 복지는 증세로 대응해야

일본 사람들을 만나면 뭔가 활력이 없고 사회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일본은 1980년대 말의 버블 폭락 이후 제로 성장을 10년 넘게 이어가던 때라 그런가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니 일본 사회가 전반적으로 고령화되어 있었던 것이 더 큰 이유였지 싶다.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10년에서 15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일본을 뒤따라가고 있다. 일본에서 본 그 낯설었던 풍경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꽤 익숙한 모습이 되었다. 서울에서 낮에 전철을 타보라. 서울과 근교를 오가는 수도권 전철 속에 노인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대학생 정도의 젊은 또래들을 보면 새삼 밝은 분위기와 활력 같은 것을 느낀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고령화는 일상적 삶의 풍경을 바꾸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1990년대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고령화로 인해 벌써 경제의 활력이 상당히 위축되고 있다.

우리나라 평균 성장률은 1990년대 6%대였던 것이 2010년대 들어 3%대로 반토막 났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일할 수 있는 노동가능인구가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전체 인구 중 15~64세 노동가능인구의 비중은 이미 2012년에 최고점을 지나 내리막길에 들어서 있다. 경제성장에 노동이 기여하는 몫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 0%에 근접해 있다. 절대 인구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2030년대가 되면 노동의 경제성장 기여는 마이너스가 되고, 그 영향으로 평균 성장률은 2%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도 제로 성장 시대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은 경제성장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복합적인 파급효과를 낳는다. 뭐니 뭐니 해도 눈앞의 불은 노년층에 대한 복지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다. 성장률 저하로 세수는 늘지 않아 국가 재정은 더 어려움에 빠져들게 된다. 정부가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개혁에 급하게 매달리고 있는 사정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거의 절반이 경제적으로 빈곤층이다. 노인 자살률은 2011년의 경우 10만명당 82명인데, 이는 미국이나 일본의 5배에 이르는 수치다.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노인들은 사회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복지 부담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필요한 복지 수요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하고 있고, 어려운 많은 이들이 사회적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은 연금 축소, 복지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나라는 적게 세금 내고 적게 지원 받는 전형적인 저부담-저복지 국가다. 2014년의 경우 우리나라의 GDP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은 10.4%에 불과하다. 이는 OECD 나라들의 평균인 21.6%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2011년 우리나라의 개인소득세 부담률은 GDP 대비 3.8%로 주요 선진국에 비해 반에도 못 미친다. 우리의 복지 현실을 감안할 때, 세금을 더 거두는 중부담, 필요한 복지 수요를 충족시키는 중복지의, 중부담-중복지 국가로 가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신기루다. 돈 없이 복지 확대가 가능할 수 없다. 담뱃세 인상 등의 편법으로는 조세 형평성만 나빠지고 서민층의 불만만 늘어날 뿐이다. 눈앞의 상황만 모면하고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임기응변의 공방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복지 문제에 대해 올바른 비전과 해법을 제시하는 일은 정치권의 책무다. 이 문제에 정면으로 승부를 걸고 해결하려는 정당이 미래의 한국 사회를 이끌 자격이 있다.

고령화라는 시한폭탄의 초침이 계속 째깍거리고 있다. 그러나 힘을 합쳐 대비해나가면 제거할 수 있고 폭발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폭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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