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미티지 보고서’와 한·일 위안부 문제

이해영 |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그 나무(텍스트)에 대한 얘기는 많으니, 여기서는 주되게 그 숲(콘텍스트)을 보고자 한다. 2012년 6월 처음으로 일본의 해상자위대가 포함된 한·미·일 3국이 제주 남단 해역에서 ‘수색구조훈련’(SAREX)을 실시했다. 하지만 ‘인도적 목적’의 훈련에 항공모함과 이지스함까지 동원되었다 해서 그 진의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시론] ‘미국 아미티지 보고서’와 한·일 위안부 문제

같은 해 8월 이른바 제3차 ‘아미티지-나이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2000년, 2007년에 이어 세 번째로 발표된 이 보고서에서 미 공화, 민주 양당의 안보전략통이라 할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과 하버드대 나이 교수 두 사람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 핵심으로서의 미·일동맹 강화에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각별한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일본과 인접국 특히 한·일관계와 관련된 여러 제안에 관한 것이다.

“2012년 6월 미·일·한 3국의 합동해상훈련 참가는 분열적인 역사문제를 제쳐놓고 보다 큰 현재의 위협에 대처하고자 하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한 걸음을 의미한다.” 이른바 ‘역사문제’보다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이 ‘올바른 방향’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역사문제’와 관련해선 이렇게 주문한다. “민감한 역사문제들에 미국 정부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미국은 양국간 긴장을 완화하고 동맹국들의 주의를 핵심적인 국가안보 이익과 미래로 집중시키기 위해 최대한의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그래서 “동맹이 그 잠재력을 최고조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역사문제에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특히나 보고서에 따르면 한·일 양국이 역사문제를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아울러 문제해결을 위해 각종 포럼 등 비공식 트랙2, 곧 비정부기구 간의 대화를 확장해서 합의문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촉구한다.

마침내 2015년 12월 ‘역사문제’ 특히나 그중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최종적’, ‘불가역적’ 졸속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고작 보고서 한 편과 이번의 합의를 이렇게 연결하는 것이 좀 무리스럽지 않을까. 그렇다면 사건의 인과관계를 그 서열에 따라 살펴보자.

첫째, 그 정점에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 혹은 ‘리밸런싱’ 전략이 있다. 이것 즉, 대중국 동아시아 패권경쟁에서 미국의 우위 추구가 바로 알파요 오메가다.

둘째, 하지만 이를 위해 미국이 동원가능한 각종 자원 특히 군사적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현지 조달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일본 자위대의 막강한 군사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엔 일본의 국내적 장애가 있다. 바로 헌법9조다. 하지만 해석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해, 유사시 한반도 진입도 가능하게 된다. 미국이 큰 짐을 덜었다.

셋째, 지난 수십년간 한·미·일 삼각 동맹에 ‘빠진 고리(missing link)’는 언제나 한·일 관계였다. 이게 없으므로 삼각의 한 변이 부실했다. 그 부실의 이유는 독도, 위안부, 교과서 등 주로 역사문제다. 독도문제에서 미국은 우리 편을 들지 않는다. 대개 중립을 가장해 일본편에 선다. 나머지 문제 특히 위안부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낡은’ 문제다. ‘아베 총리가 대충 사과하고 돈으로 때워라’, 나는 이게 미국 중재안의 대강일 거로 본다.

넷째, 결국 미국 외교는 승리했다. 리밸런싱은 좀 더 힘을 받게 되었고, 삼각동맹의 각 변은 더욱 여물어졌고, 미·일·한 군사안보적 서열은 더욱 고착화되었다. 한국은 이 동맹의 하위종속 파트너로 미국의 반중 패권전선의 최일선에 설 것을 요구받게 되었다.

다섯째, 그렇게 남방 3각이 완성으로 향하는 것과 정확히 비례해 북방 3각 중·러·조(북한) 삼각도 구축될 것이다. 식민지배의 미청산을 골자로 하는 1965년 한일협정 체제는 이로써 강제봉인되었다. 국익? 무슨 국익이 있을까. 대중관계는 훼손되고, 남북긴장은 영구화되고, 군비경쟁은 가속화되는데 말이다. 전략적 패착이다. 박근혜 정부, 내치는 물론 외교도 실패했고 피해는 국민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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