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예산 갈등, 대통령이 풀어라

정재훈 |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만 3~5세 아동 어린이집과 유치원 비용 지원을 하는 이른바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두고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간 대립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법적으로 누리과정 예산은 시도교육청이 편성해야 한다. 그런데 왜 시도교육청은 벼랑 끝 전술을 쓰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못하고 있는가? 앞으로 임기가 2년 이상 더 남은 대통령 탓이다. 그래서 앞으로 이러한 예산 갈등이 두 번은 더 벌어질 지도 모르겠다.
 
왜 대통령 탓으로 단정하는가? 대통령이 약속했기 때문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집 68쪽과 272쪽에 다음 내용이 나온다. “새누리의 약속, 0~5세 보육과 육아는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0~5세 보육료 국가 전액 지원, 3~5세 누리과정 지원비용 증액…”

[시론] 누리과정 예산 갈등, 대통령이 풀어라

지난 정권의 대통령처럼 “문제있는 공약은 안지켜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님 또 본인은 빠지고 주변 참모들의 실언으로 돌릴 것인가? 지금까지 대통령은 선거 전 ‘약속 지키는 사람’ 이미지를 벗어던지고도 특유의 정치적 감각과 정략적 대처, 무기력한 야당 덕에 확고한 지지율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국민의 60% 이상을 배제하는 정치공학으로 당장 레임덕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역사에 남는 지도자’는 아마 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정부 예산의 1% 수준도 안되는 예산 지원 약속을 어김으로써 그 꿈을 날릴 것인가?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정쟁같은 상황을 만들어 놓고 뒤로 빠져 지켜보는 대통령을 의식하면서 청와대 참모, 교육부 관료, ‘진박’의 새누리당은 지금 이렇게 외치고 있다. “법적으로 누리과정 예산 편성은 시도교육청 책임이다.” 이 정권 들어 특히 많이 듣는 이야기가 법이고 소송이다. 공인·정치지도자가 갖는 무게를 망각한 채 비판적 대중을 상대로 검찰에 고발장 접수하고 소송을 일삼아왔다. 그러나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대한민국같은 규모의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규범 뒤에 숨어서 국민이 바라는 정치의 묘수를 보여주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일방적으로 개정해 놓고 시도교육청에게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안하는 것은 법률 위반이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은 참 보기 민망하다. 게다가 국무조정실에서는 대법원 제소 이야기까지 나왔다. ‘영혼없는’ 공무원이야 그렇다고 하자. 함께 공약 만들고 선거에서 대통령 당선을 위해 뛰었던 참모와 정치인이 이제라도 나서라. 2012년 12월19일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첫 번째 발표한 메시지 ‘민생, 약속, 대통합’을 실천하도록 설득하라. 그게 ‘역사에 남은 지도자’를 만들고자 하는 진정한 ‘진박’의 모습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왜? 대통령에 대한 확고한 지지율은 대통령 자신이 주도한 분열과 갈등의 정치가 가져온 산물이기 때문이다. 2014년 현재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이 약 320만 명 정도이다. 만 3~5세 누리과정 연령대 어린이 수도 126만 명이 채 안된다. 그런데 콘크리트같은 지지층이라 불리우는 60대 이상은 거의 1천만이 다된다. 이들 중 손자녀 때문에 어린이집ㆍ유치원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리 많은 수는 아니다.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으로 떠넘기는 과정에서 그나마 교육청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유치원과 그렇지 못한 어린이집 간 차별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젊은 부모와 노인 세대 간, 유치원과 어린이집 간 분열과 갈등 유발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모양새다.
 
70세가 넘은 실질은퇴연령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히 오랜 기간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려야 하는 우리 실정에서 누리과정 예산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다음 총선·대선 전략상 그리 큰 손해는 입지 않을 것이라 계산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 기회에 ‘법과 원칙을 지키는’ 이미지를 굳히면 기존 지지층은 더 열광할 수 있다. 청년과 부모 세대를 일자리 문제로 갈라놓고, 국민과 공무원을 공무원연금 문제로 갈라놓은 대통령이다. 국민이 국회를 혐오하도록 앞장서는 대통령이다. 갈등과 분열의 권력정치가 임기 중에는 통할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지켜보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부터 대통령이 갈등과 분열을 종식시키고 대통합을 실천하는 사례로 삼아라. 이제 2년 정도 남았다.


Today`s HOT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