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현금 없는 버스 승차

차준철 논설위원
지난 11일 퇴근길에 오른 시민들이 버스를 타고 서울 종로를 지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지난 11일 퇴근길에 오른 시민들이 버스를 타고 서울 종로를 지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카드를 한 장만 대주세요.” 버스를 탈 때 누구나 들어봤을 음성 안내 목소리다. “승차입니다” “환승입니다”도 있다. 요즘 버스 요금은, 이렇듯 대다수가 교통카드로 낸다. 간혹 요금이 얼마냐고 물어보며 현금 승차하는 승객이 눈에 띄면 괜스레 어색해 보인다. 아하, 1300원이구나. 지금 서울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새삼 기억나게 해준다.

1999년 교통카드 도입 이전에는 작은 엽전 모양의 ‘토큰’과 종이로 된 ‘회수권’이 현금과 더불어 버스 요금 지불 수단이었다. 토큰이 생긴 1977년 12월 전까지는 돈 내고 버스를 탔다. 그 시절 ‘버스안내양’들이 차 안에서 요금을 받았다. 날쌔게 요금과 거스름돈을 주고받고 동전으로 불룩한 전대나 웃옷 두 주머니를 찰랑거리며 만원버스에 매달려 “오라이~”를 외치던 그들이다. 개발시대를 상징하는 ‘안내양’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버스 안내방송과 하차벨, 자동문에 밀려 사라졌다. 토큰과 함께 쓰인 회수권은 위·변조 우려 때문에 교통카드 도입 직후 폐지됐다. 영화 <친구>의 중호,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선우가 회수권 10장을 절묘하게 11등분하는, 그때 그 시절 학생들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줬다.

서울시가 10월부터 일부 시내버스에서 시범적으로 현금 승차를 폐지한다. 2010년 5%였던 현금 승객 비율이 지난해 0.8%로 급감했다는 게 주요한 근거다. 위생·안전 면에서 현금 승차 폐지가 낫다는 판단에도 일리가 있다. 현금을 통해 코로나19가 전파될 수도 있고, 버스기사가 잔돈을 내주려고 단말기를 조작할 때 안전사고가 일어날 우려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정류장에 모바일 교통카드 발급기기를 설치해 현금 대체가 가능하게 한다는데 ‘디지털’에 익숙지 않은 시민에겐 장벽이 될 수 있다. 시범사업이라지만 사실상 버스에서 현금이 없어지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누군가에게 버스는 이미 추억이다. 박노해 시인은 “할머니가 난생처음 버스를 타고 벌교장에 가던 날/ 정류장 바닥에 흰 고무신을 단정히 벗어두고/ 버선발로 승차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꽃이 터졌고”(‘그녀가 떠나간 자리에는’ 중)라고 떠올렸다. 버스에 얽힌 추억도 이렇게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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