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에너지 준 친구 나라에 감사”…“그가 상처 딛고 꿈을 이뤄 기쁘다”

조홍민 선임기자

이란 출신 몽골 사에이드 몰라에이와 이스라엘 사기 무키 ‘유도로 맺은 우정’

이스라엘 유도 대표팀의 사기 무키(왼쪽)가 지난 1일 이란 출신으로 몽골 국적을 취득한 ‘친구’ 사에이드 몰라에이와 각자 딴 메달을 들고 도쿄 올림픽 선수촌 내 오륜마크 조형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기 무키 페이스북 캡처

이스라엘 유도 대표팀의 사기 무키(왼쪽)가 지난 1일 이란 출신으로 몽골 국적을 취득한 ‘친구’ 사에이드 몰라에이와 각자 딴 메달을 들고 도쿄 올림픽 선수촌 내 오륜마크 조형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기 무키 페이스북 캡처

이스라엘과 대결 피하기 압력에
이란 선수 난민 신청 국적 바꿔
사연 듣고 동갑내기 상처 감싸줘
도쿄서 만나 나란히 은·동메달

스포츠맨십 훼손 정치 업어치기
“올림픽 정신의 승리” 서로 격려

환한 표정의 두 청년이 맞댄 주먹. 그들이 든 반짝이는 두 개의 메달이 유난히 빛난다. 지난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에 감동과 함께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진 속 주인공은 도쿄 올림픽 남자 유도 81㎏급 이스라엘 대표로 출전한 사기 무키(29)와 같은 체급에 몽골 대표로 나온 이란 출신의 사에이드 몰라에이(29). 무키는 이번 대회 유도 남녀 혼성 단체전에서 이스라엘이 동메달을 따는 데 공헌했고, 몰라에이는 81㎏급 결승까지 올랐으나 일본의 나가세 다카노리에게 아깝게 져 은메달에 그쳤다. 스물아홉 동갑내기인 이들은 국가 간 정치적 대립을 뛰어넘는 우정과 스포츠맨십으로 소중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무키와 몰라에이의 사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선수는 2019년 8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81㎏에 나란히 출전했다. 당시 이란 대표로 나온 몰라에이는 전년도에 열린 세계선수권 우승자로 대회 2연패를 노리던 강자. 경쟁자들을 꺾고 4강전을 앞두고 몰라에이는 감독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지시를 들었다. “4강전에선 이길 생각 하지 말고 패하라.”

앞서 벌어진 다른 4강전에서 이스라엘 대표로 출전한 무키가 승리해 결승 진출을 확정하자, 이스라엘 선수와의 대결을 피하기 위해 이란 당국이 패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이다. 이란을 비롯해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는 아랍권 선수들은 국제대회에서 이스라엘 선수와 맞붙게 될 가능성이 있으면, 앞 경기에서 일부러 지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황당한 지시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길 경우, 이스라엘 선수와 나란히 시상대에 선다는 이유로 3·4위전은 아예 기권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당시 몰라에이는 대표팀 관계자와 이란 스포츠 장관으로부터 이를 어길 경우 가족의 신변에 좋지 않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위협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몰라에이는 3위 결정전에 출전은 했지만 경기에서 패했고, 대회가 끝난 뒤 귀국 비행기를 타는 대신 독일로 건너가 난민 자격을 인정받았다. 이어 그해 12월에는 몽골 국적을 취득했고, 이번 올림픽에 몽골 대표팀의 일원으로 도쿄를 찾았다.

당시 사건을 계기로 무키와 몰라에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절친’이 된 두 선수는 국제대회에서 만날 때마다 서로를 격려했다.

지난 2월에는 몰라에이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국제 유도 그랜드슬램 선수권에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몰라에이는 CNN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측에서 아주 잘 대해줬다. 이스라엘 유도팀 선수들은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매우 친절하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뒤에는 “좋은 에너지를 준 이스라엘에 감사한다”며 “메달을 이스라엘에 바치며, 이스라엘인들이 오늘의 성취를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무키 역시 몰라에이의 은메달 획득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그는 “너무 기쁘다. 몰라에이가 걸어온 길을 알고 있고 그가 메달을 얼마나 원했는지 안다”며 “그가 꿈을 이뤄 기쁘다.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무키는 올림픽 선수촌에서 몰라에이와 다시 만나 다정하게 한 컷을 담고, 자신의 SNS에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한 장의 사진이 1000개의 말과 같은 가치가 있다. 도쿄 올림픽에서 나의 소중한 친구 사에이드 몰라에이와 함께 있음이 자랑스럽다. 올림픽 정신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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