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남자 100m 9초80으로 ‘깜짝 금메달’ 이탈리아 제이컵스
경기 전날도 높이뛰기 우승한 탐베리와 비디오게임…꿈도 안 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는 데 4~5년은 걸릴 것” 감격
우사인 볼트(자메이카) 은퇴 이후 무주공산이었던 육상 남자 100m 왕좌를 무명의 이탈리아인 마르셀 제이컵스(27·사진)가 차지하면서 세계 육상계에 놀라움을 선사했다. AP통신은 2일 “옆 레인에서 뛰었던 선수들도 제이컵스가 누군지 몰랐다”며 깜짝스타가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제이컵스는 지난 1일 일본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선에서 9초80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이탈리아가 올림픽에서 이 종목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제이컵스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는 데 4~5년은 걸릴 것 같다. 내가 볼트의 뒤를 이어 올림픽에서 우승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고 소감을 밝혔다.
미국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이컵스는 멀리뛰기로 육상에 입문했다. 지난해까지 100m 10초 벽을 깨본 적이 없을 정도로 단거리 메달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그의 최고기록은 지난 5월 작성한 9초95였다.
이랬던 제이컵스가 대회가 시작되자 무섭게 기록을 단축하기 시작했다. 전날 열린 100m 예선에서 개인 최고 및 이탈리아 신기록인 9초94 기록을 수립했고, 이날 준결선에서 9초84까지 페이스를 끌어올리더니 결선에서 기어이 ‘사고’를 쳤다.
이번 도쿄 대회는 2012년 런던 대회부터 올림픽 단거리 황제로 군림했던 볼트의 은퇴 이후 열린 첫 올림픽이다. 누가 볼트의 후계자가 될 것인지에 큰 관심이 쏠려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2019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 크리스티안 콜먼(미국)은 금지약물 복용검사를 회피해 올림픽 출전이 금지됐고, 샛별 트레이본 브로멜(미국)은 대회 준결선에서 탈락했다. 그나마 이 두 사람을 제외하면 2015년 이후 남자 100m 상위 35위권에 드는 기록을 올린 선수가 없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상위 35위권은 볼트와 요한 블레이크, 아사파 파월(이상 자메이카), 타이슨 게이, 저스틴 개틀린(이상 미국) 등 단거리를 쥐락펴락했던 스타선수들만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제이컵스가 나타났다. 은메달을 차지한 프레드 컬리(미국)는 “제이컵스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며 “그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동메달을 딴 앙드레 드그라스(캐나다)는 “이탈리아인이 9초80을 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 경쟁자는 미국인일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AP는 “아무래도 100m의 진정한 챔피언을 알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높이뛰기의 지안마르코 탐베리(이탈리아)였던 것 같다”고 전했다. 탐베리는 높이뛰기에서 무타즈 에사 바르심(가타르)과 공동 금메달을 수확하고 기뻐하다가 제이컵스가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자 그에게 달려들어 끌어안고 환호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메달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선수촌에서 같이 비디오게임을 하던 사이였다. 제이컵스는 “우리는 ‘우리가 우승할 수 있을까?’ ‘아니야 불가능해,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라는 대화를 나눴다”며 웃었다.
이탈리아는 육상에서 하룻밤 사이 2개의 금메달이 나온 것에 열광하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두 선수가 이탈리아에 영광을 안겼다. 두 선수가 귀국하는 대로 집무실로 초청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