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수준 아닌데 따라하려는 후배들, 배부르다고 자만하지 말라”

차준철 논설위원

KBO리그 40년 ‘국민 감독’ 김인식

김인식 전 프로야구 감독이 지난 5일 서울 잠실야구장 더그아웃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패배한 경기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김인식 전 프로야구 감독이 지난 5일 서울 잠실야구장 더그아웃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패배한 경기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1947년 서울 출생. 중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고교 졸업 후 크라운맥주·해병대·한일은행에서 뛰다 어깨 부상으로 26세에 은퇴했다. 배문고·동국대 감독을 거쳐 1986년 해태 타이거즈 수석코치로 프로야구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1991~1992), OB·두산 베어스(1995~2003), 한화 이글스(2005~2009)에서 감독을 지냈다. 2002·2006·2009·2015·2017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국제대회에 나가 4차례나 4강에 들고 2번 우승했다. 한국 야구를 세계 강국 대열에 올린 지도력을 인정받아 ‘국민 감독’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고문.

지금 선수들 예전보다 과분한 대접 받아
이 정도 받을 선수가 그 이상을 받으니까
그러다 보니 이기적인 면 있는 것 같아
스타인 척 말고 실력 쌓은 후 외모 가꿔라

태풍 힌남노가 장대비를 뿌려대던 지난 5일 서울 잠실야구장. 김인식 전 프로야구 감독(75)이 약속 시간에 앞서 나왔다. 걸음걸이는 다소 불편해 보였지만 야구 감독의 자리인 더그아웃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동안 말없이, 텅 빈 그라운드를 바라보던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60년 한평생을 야구와 함께 살아온 애환과 고락이 모두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김인식은 ‘국민 감독’으로 불린다. 야구 선진국 미국, 일본과의 대결에서 한국 야구의 저력을 보여주면서 얻은 영예로운 별칭이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고,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 4강에 올랐다. 2009년 WBC에서는 준우승했고, 2015년 프리미어12 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선수들을 굳게 믿고, 과감한 작전과 용병술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믿음의 야구’ ‘호쾌한 야구’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이자 한국 야구의 팀 컬러가 됐다. 국제대회에서 한국 야구의 성가를 높인 그는 ‘야구의날’인 지난달 23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지휘한 후배 김경문 전 감독과 함께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공로패를 받았다.

인터뷰 자리에 마주 앉은 노(老)감독은 지나간 시절의 영광만을 되뇌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야구계 후배들에게 쓴소리를 쏟아냈다. “(실력이) 미국 메이저리그 수준이 아닌데 따라하려고만 한다”고 질타했다. 부족한 실력을 인정하지 않고 자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야구를 향한 고언과 함께 그의 야구, 그리고 감독 이야기를 들었다.

김인식 전 프로야구 감독이 지난 5일 서울 잠실야구장 더그아웃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김인식 전 프로야구 감독이 지난 5일 서울 잠실야구장 더그아웃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 야구의날에 공로패를 받은 소감은.

“KBO가 프로야구 40주년을 맞아 초청해줘 고마웠다. 모처럼 운동장에 나가보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그날 마음은 진짜 뿌듯하고 좋았다.”

- 한국 프로야구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메이저리그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는데도 무작정 따라하려고만 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내가 감독 할 때까지만 해도 선수들이 풍족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 보면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이 정도를 받아야 되는 선수가 그 이상을 받으니까.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이기적인 면을 보이는 것 같다.”

- 자세히 말해달라.

“지금 KBO리그에는 메이저리그 엔트리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가 몇 명은 있다. 그런데 그 외의 선수들이 비슷한 처우를 받고 그런 척을 하는 게 잘못된 일이다. 이건 아니지 않나.”

- 한국 야구의 국제 경쟁력에 어떤 영향이 있나.

“미국과 일본은 실력이 엇비슷한 국가대표팀을 네 팀 정도 만들 수 있다. 한국은 두 팀을 바라보는데, 힘을 합쳐야 할 선수들이 이기적인 마음으로 대표팀 참가를 소홀히 하면 전력이 금세 확 처진다.”

- 그런 선수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팬들이 봐도 이 정도 가치는 없는 선수들인데 이렇게 많이 받는구나 하고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좋은 대우를 받을 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거창하게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우선 실력을 키우고 인성을 갖추기 바란다. 그다음에 소속팀이 있고 국가대표도 있다.”

- 지금 한국 야구 실력을 어느 정도인가.

“투수 쪽은 빠른 공을 던지는 대형 선수들이 네댓 명 나와 희망적이다. 반면 타자 쪽은 조금 더딘 편이다. 노장·선배들을 실력으로 능가할 후배가 계속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올해 은퇴한다는 이대호가 지금 가장 잘 치고 있지 않나.”

- 국제 경쟁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건가.

“단기전으로 치러지는 국제대회는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국가대표팀에 다 같이 합심해 나오면 승부를 겨룰 수 있다. 우리 수준이 떨어졌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 없다. 경기는 해봐야 안다.”

2006년 WBC 4강 확정 직후 서재응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세리머니를 하는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6년 WBC 4강 확정 직후 서재응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세리머니를 하는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6년 WBC서 미국 최강 대표팀 잡은 게
라이벌 일본을 몇 번 이긴 것보다 기뻤고
2009 결승 땐 이치로에 결승타 맞고 패배
한동안 그의 등번호가 맴돌 정도로 충격

- 국제대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06년 첫 WBC 대회 때 본선 2라운드 미국전이다. 데릭 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 켄 그리피 주니어, 치퍼 존스 등 당대 최고의 메이저리거들이 미국 대표로 나선 경기를 한국이 7-3으로 이겼다. 3-1로 앞선 6회 대타로 세운 최희섭이 3점 홈런을 터뜨린 순간, ‘이건 잡았다’ 싶었다. 이긴다는 생각을 못했던, 미국 메이저리그 최강 대표팀을 누른 것이라 라이벌 일본을 몇 번 이긴 것보다 기뻤다.”

-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2009년 WBC, 일본과의 결승전이다. 연장전에서 스즈키 이치로에게 2타점 결승타를 맞고 3-5로 패한 경기다. 한동안 이치로의 등번호 ‘51’번이 머리 위에 왔다갔다 할 정도로 충격이 크고 오래갔다. 대회 결과는 준우승으로 1회 대회 때보다 올라갔지만,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경기다. 물론 패배는 감독 책임이다.”

프로 감독 통산 2056경기 출전, 978승45무1033패. 역대 최다 경기와 최다승에서 모두 3위, 김 전 감독이 프로 사령탑으로 거둔 성적이다. 승리보다 패배가 많다. 그는 이긴 경기보다 진 경기에서 더 많이 배웠다고 했다. 전력이 약한 팀을 주로 맡다보니 패배가 더 많이 쌓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는 이길 때 무심코 지나쳤을 작전과 용병술을 패한 경기를 통해 공부했다고 한다. 실패한 원인을 깨닫는 것으로 생각의 폭을 크게 넓힐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 지도자 경력이 꽤 오래다.

“26세에 모교인 배문고 감독을 맡았다. 이후 상문고·동국대 감독을 했고 44세에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으로 부임해 프로 감독이 됐다.”

- 쌍방울 감독 시절에 많이 공부했다고 말했다.

“쌍방울은 신생 팀이라 패하는 날이 많았다. 전력이 약한 팀은 7회까지 근근이 따라갔다가 뒤집히는 일이 허다하다. 경기 후반에 부슬부슬 비라도 내리면 참 처량하다. 그 시절 경기에 지고 나서 혼자 지내는 감독 숙소에 밤 11시쯤 도착하면 불도 안 켜고 소파에 앉아 경기를 복기했다. 그때 이 선수를 내보냈으면 됐을까,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그러다 어스름 새벽에 밤새 생각했던 걸 적어놓았다. 그 메모가 공부가 됐다.”

전력 약한 팀서 패배를 승리만큼 쌓아야
실패의 아픔 느끼며 원인 냉철하게 분석
400승과 400패 같이 겪어봐야 야구 보여
나이 들수록 어렵고, 알면 알수록 어렵다

- 나중에, 프로 감독은 400번은 져봐야 안다는 말도 남겼는데.

“많이 이기면 못 느끼는 게 있다. 감독이 잘해서 이기는 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전력이 약한 팀에 가서 패배를 승리만큼 쌓아봐야 실패의 아픔을 느끼며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다. 최소 400승과 400패를 같이 겪어봐야 야구가 어렴풋이 보인다는 게 내 생각이다.”

- ‘최악의 경기’에서도 배운다고 했다.

“이치로에게 결승타를 맞은 그 경기 얘기다. 타자를 볼넷으로 걸러야 할 때 확실하게 고의볼넷을 내줘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 감독,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10년 전 김성근 감독과 함께 낸 <감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다. 거기서 김성근 감독은 ‘야구는 감독이 한다’고 했고, 나는 ‘야구는 선수가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 야구는 감독이 한다는 것으로?

“아니다. 야구는 감독도 하고, 선수도 하는 것이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 선수 역할이 반반이다. 김성근 감독도, 나도 틀렸다. 감독이 전체를 좌우할 때도 있고, 감독이 전혀 필요 없을 때도 있다는 얘기다. 실력 있는 선수들이 알아서 열심히 하면 감독은 거들 뿐인데, 실력 부족한 선수가 믿고 맡겨달라고 하면 더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 후 헹가래를 받는 김인식 감독.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 후 헹가래를 받는 김인식 감독. 경향신문 자료사진

믿음의 야구. ‘김인식 리더십’의 대명사다. 선수들의 역량을 굳게 믿고 최대한 실력을 발휘하도록 격려하며 선수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핵심이다. 근래에 실력 없이 잘난 체하는 선수들에게는 믿음이 통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의 리더십의 요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선수 편에 서서 맡겨주고 밀어주며 참아주는 리더십이다. 그는 선수들에게 싫은 소리 안 하고, 충분히 기회를 주는 ‘덕장’으로 정평이 나 있다.

- 감독의 역할이 참 많다. 경기 전체를 운영하고 선수 기용과 작전을 결정하며, 선수 각각의 컨디션을 살피고 선수단 분위기도 파악해야 한다.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야구를 잘 알아야 하고 중요한 결정과 판단을 내려야 하니 머리 회전이 빨라야 할 것이다. 선수를 보는 눈도 좋아야 한다. 때로는 넉넉한 마음으로 감싸안아야 하고, 때로는 정말 정열적으로 나서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로만 하지 않고 기본부터 실천하는 일이다.”

- 질책보다 칭찬을 더 하는 편인가.

“이 선수는 이렇게 하는 편이 낫겠다고 말한 적이 많다. 칭찬받은 선수는 그럴 만한 선수였을 것이다. 혼낼 때는 화도 낸다.”

- 감독 생활을 하면서 꼭 지켰던 원칙이 있다면.

“언젠가 지방 원정경기 때 1군에 갓 올라온 선수를 2군으로 내려보내는 지시를 코치에게 대신 시킨 일이 있었다. 바로 후회가 됐다. 1군에 투수 자리가 필요해 잠시 2군에 내려보내니 조만간 다시 부를 것이라는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혹시나 코치가 ‘감독이 너 내려가라네’라고 마음 상하게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퉁명스러운 한마디가 사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다음부터는 선수들에게 직접 통보했다. 선수에게 무언가 지적할 일이 있을 때도 따로 불러 얘기했다.”

- 김 감독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우리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흔한 말로 인생의 축소판이다. 그런데 내 결론은 ‘어렵다’다. 야구는 인생 같은데, 너무 어렵다. 언제는 이렇게 되는 게 맞는데, 어쩌다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데로 흘러가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렵고,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게 야구다. 감독들을 자꾸 연구 대상으로 보게 된다.”

- ‘다시 태어나도 야구하겠다’고 누차 말했다.

“그래도 야구가 좋단 말이야, 허허~”

2004년 뇌경색을 극복한 그는 지난해 척추협착증 수술을 받은 이후 일주일에 세 차례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포기하지 않고 재활운동을 계속하면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팔꿈치 수술을 받고 올 시즌을 접은 메이저리거 제자 류현진에게도 “조급하게 생각 말고 답답해도 당분간은 꾹 참고 쉬라”고 전했다. 어렵고 심란한 상황일수록 각자 위치에서 최선의 마음으로 고난을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는 게 ‘백전노장’ 김인식의 목소리다.

요즘 야구 볼 시간이 많아져 기분 좋다는 그는 다시 후배 선수들에게 “옛날식이지만, 대선배의 당부로 들어달라”고 마지막 한마디를 보탰다. “스타가 아닌데 스타인 척하지 말고, 실력 쌓고 나서 외모에 신경 쓰라.”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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