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

파텔 교수 “‘자본세’ 저물면 파시즘 대두할 수도…‘돌봄 혁명’ 위해 기본소득 고민해봐야”

오스틴 | 이창준 기자    오스틴 | 김경학 기자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5일 텍사스대 린든 B. 존슨 정책대학원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오스틴 | 김경학 기자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5일 텍사스대 린든 B. 존슨 정책대학원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오스틴 | 김경학 기자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51)는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20대에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일했는데, 그만두고 나서는 최전선에서 WTO를 비판하며 ‘반 WTO 활동가’로 불렸다. 세계은행과 유엔 등 다른 국제기구에서도 일한 경력이 있지만 역시 이들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 4개 대륙에서 최루탄을 맞은 적도 있다. 옥스퍼드대와 런던정경대, 코넬대 등 세계 유수 대학에서 공부하고 박사 학위까지 받은 ‘제도권 엘리트’임에도 정작 커리어의 많은 시간을 제도권과 싸우며 연구실 대신 시위 현장에서 보냈다.

파텔 교수는 자신의 투쟁이 단순히 특정 기구나 사안만을 향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는 수백년 간 이어져 온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물음표를 던진다. 자본주의는 자연과 노동력처럼 사회를 유지하는 필수 요소들을 너무 값싸게 착취해 왔고, 그 결과 사회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폐화시켰다는 것이다.

고갈돼가는 자원에 제값을 치르지 않으면 현재의 ‘자본세(Capitalocene·자본의 시대)’는 파시즘과 같은 극단의 시대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파텔 교수의 주장이다. 당장 돌봄에 충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파텔 교수는 기본소득 제도처럼 실험적인 정책 역시도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파텔 교수는 “저렴하게 취급된 요소 중 핵심은 돌봄”이라며 “돌봄을 진지하게 고려해야만 우리 스스로 미래를 어떻게 바꿔나갈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텔 교수는 오는 28일 열리는 <경향포럼>에 참석해 이 같은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로 했다. 지난달 5일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린든 B. 존슨 정책대학원 연구실에서 파텔 교수를 만났다.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5일 텍사스대 린든 B. 존슨 정책대학원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오스틴 | 김경학 기자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5일 텍사스대 린든 B. 존슨 정책대학원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오스틴 | 김경학 기자

-세계은행과 WTO,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들 국제기구를 나온 뒤에는 오히려 앞장서서 이들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 국제기구로부터 돌아선 결정적 계기는.

“세계은행에서는 연구원으로, WTO에서는 인턴으로 일했다. 세계은행과 WTO가 하는 일에 대해 이전부터 회의적이었는데 국제기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직접 몸담고 일해보니 회의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특히 세계은행은 유상원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원조를 받는 나라는 대가로 환경과 노동자 보호 정책을 철폐해야 했다. 1980~90년대 시행된 구조조정부터 최근 개발도상국 대상 빈곤 대응책(PRSP)까지 세계은행은 늘 저렴한 이율로 개도국에 자금을 제공하는 대신 그들의 주권의 일부를 침해했다. 다만 유엔은 평가하기 조금 복잡하다. 이들은 농민 인권 신장 등 일부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 분야는.

“생태학, 특히 정치 생태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환경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연구해 직면한 위기를 더 잘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려는 학문이다.”

-현재 인류가 처한 환경 위기의 원인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목하면서 자본세의 시작을 1400년대로 규정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탄소 배출이 급증한 건 1800년대가 아닌가.

“1800년대의 자본주의 역학은 결국 1400년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무성한 숲을 황폐화했나. 그 적절한 예시는 산업혁명이 아니다. 포르투갈어로 ‘숲이 무성한 섬’이라는 뜻인 마데이라 섬은 섬의 나무들이 1400년대에 사탕수수 제조 과정에서 연료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75년 만에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 됐다. 규모만 보면 이런 현상은 1700~1800년대에서 더욱 자주 나타나지만, 이익을 위해 숲에 불을 지른다는 논리는 1400년대에 시작된 것이 맞다.”

-600여 년의 자본세가 끝나면 어떤 ‘세’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하나.

“어려운 질문이다. 대혼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파시즘이 고개를 들고 있는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 점차 권위주의적 색채가 짙어지는 국가들이 많다. 이들은 인종이나 종교적 순혈주의 정서를 이용해 위기를 통제하려고 한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 정부가 그 예다. 그들은 특정한 민족주의를 자극해 자신들의 위기를 강압적으로 관리하려 한다. 미국에서는 에코파시즘(환경 보호 명목 전체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이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자본세가 끝나면 전 지구적 파시즘이 발현할 수도 있다. 물론 더 협력적이고 대담한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아래서 이뤄지지 못한 상호 돌봄이 가능한 사회가 열릴 수도 있다.”

자본세가 끝나면 전 지구적 파시즘이 발현할 수도 있다. 적어도 미국에서의 파시즘은 실재하는 위협이다.

-한국 정치에서도 파시즘적인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왜 이런 파시즘이 발현할까.

“많은 미국인들은 기존 사회민주주의 체제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파시스트들은 세계 곳곳에서 좌절과 빈곤을 집어내 이와 직결된 메시지를 던지면서 이들을 이용한다. 노동 계층을 조직해 온 진보 세력들은 무력해진 상태다. 전 지구적 좌절과 절망을 토대로 위세를 떨치는 파시스트들의 맞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자유주의에서 비롯된 일련의 현상들이 미래가 불투명한 사회를 만들고, 그 와중에 파시즘은 더 세를 불려가는 형국이 조성됐다. 당장 미국에서는 일부 무장 세력이 지난 1월 미 의회를 유혈 점거해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 이면에는 더 큰 파시즘적 움직임이 깔려있다. 한국 상황을 잘 알진 못하지만, 적어도 미국에서의 파시즘은 실재하는 위협이다.”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5일 텍사스대 린든 B. 존슨 정책대학원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오스틴 | 김경학 기자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5일 텍사스대 린든 B. 존슨 정책대학원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오스틴 | 김경학 기자

-자본주의가 저렴하게 착취한 요소들로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을 꼽았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돌봄이야말로 저렴하게 취급된 요소 중 핵심이다. 돌봄이라는 주제를 통해 사회적 재생산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아주 큰 고찰이 될 것이다. 최근 자본주의의 양상을 자세히 보면 자본가들은 주거, 수도, 에너지 등 생존에 사회 기반 시설을 민영화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런 요소는 우리가 서로를 돌보는 데 꼭 필요하다. 나머지는 모두 일종의 사치재다. 재생산과 돌봄의 민영화에는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돌봄을 둘러싼 아이디어는 우리가 미래를 위해 어떻게 스스로를 탈바꿈할 수 있을지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돌봄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착취가 가장 심한 요소도 돌봄으로 볼 수 있는가.

“가장 크게 착취된 요소는 자연이다. 저렴한 자연 없이 저렴한 돌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후 세계를 생각하면, 돌봄이야말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다. 자연은 일종의 진단 도구로서 의미가 있는 반면 돌봄은 처방적인 성격을 띤다. 돌봄은 미래를 구상할 때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요소다.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한 의사와 함께 인간의 만성 염증에 대한 책을 썼다. 그 과정에서 음식과 의약품, 그리고 돌봄 노동을 통해 어떻게 인간이 자신의 신체에 내재된 만성 염증을 이겨낼 수 있는지 연구했다. 코로나19라는 질병 위기는 우리가 초래한 재앙을 돌이켜보는 계기가 됐지만, 미래에 필요한 의료 방식에 대한 답은 결국 돌봄이었다. 스스로 돌보는 것, 서로 돌보는 것, 그리고 생명 전체를 돌보는 것이 그 핵심이다. 돌봄에 대한 아이디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진단하고, 과거와 다른 처방을 가능토록 하는 중요한 요소다.”

사람들은 자신을 돌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돌봄에 얼마를 쓸지 자유롭게 결정해야 한다. 기본소득 보장 제도야말로 돌봄에 얼마를 투자할지 결정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정책이다.

-돌봄에 제값을 지불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이다. 한국은 국가 재정의 가장 많은 부분을 복지에 쏟고 있지만, 복지 공백 문제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데.

“미국의 보건 관련 지출은 연간 4조 달러에 육박한다. 미국 국내총생산의 20%에 달하는 수치다. 엄청난 규모의 낭비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한다면, 그들은 각자 돌봄 활동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스스로 부모나 자녀들을 돌보고 환경 활동에 나서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생존 가능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보장한다면 노동량은 줄고 돌봄 활동이 대신 증가하게 될 것이다. 이는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제가 한국의 국가 예산을 두고 특정 비율이나 수치를 권장할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바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돌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돌봄에 얼마를 쓸지 자유롭게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그들의 소득을 늘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기본소득 보장 제도야말로 돌봄에 얼마를 투자할지 결정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정책이다. 잘 운영되는 국가 단위의 건강 보험 제도, 건실한 국가 차원의 연금 제도, 그리고 기본소득 제도라면 질문에 답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는 일종의 실험과도 같은데, 우리 모두 이 실험에 동참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본소득이 돌봄에 제값을 매기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는 건가.

“그렇다.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 중인 사회들을 면밀히 관찰해 보라. 사회 구성원들은 늘어난 소득으로 돌봄 활동에 나선다. 단순히 그들의 가족이나 이웃을 돌보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시간을 봉사활동에 할애한다. 사람들은 의미 있는 일을 갈망하고 있다. 누구도 딜로이트와 같은 기업을 위해 평생을 바쳐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사람들의 근로 욕구가 저하된다거나 늘어난 소득을 단순히 쾌락을 위해 소비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받고) 노동시장을 이탈한다고 치자. 그들은 무엇을 할까.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벗어나 인생을 예술가처럼 산다고 해도 전혀 나쁘지 않다. 사람들이 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 원하고, 그러면서 그들이 행복해진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에 큰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다. 또 기본소득 실험의 취지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롤스로이스 같은 사치품을 향유하도록 하는 게 아니다. 기본소득은 그저 기초 생활을 영위하고 약간의 저축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수입일 뿐이다.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은 늘 그들이 꿈꿔왔던 의미 있는 일에 나서지, 마약을 흡입하거나 비디오 게임에 심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5일 텍사스대 린든 B. 존슨 정책대학원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오스틴 | 김경학 기자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5일 텍사스대 린든 B. 존슨 정책대학원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오스틴 | 김경학 기자

-잠시 ‘난센스’ 질문을 하겠다. 저렴한 요소에 제대로 값을 매기면 인플레이션이 아주 크게 발생하지 않을까.

“우리는 왜 지금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나. 부분적으로는 코로나19 기간 발생한 공급망 문제, 그리고 그게 점차 정상화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과거와 비교해보면 에너지나 식량의 총량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현재 인플레이션은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그 진정한 가치를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사모펀드들이 더 높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기회일 뿐이다. 우리 주변의 것들과 사회적 관계의 가치를 제대로 책정하는 세상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보다 더 풍요로울 것이다. 우리는 꼭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길 필요는 없다. 무언가를 보호함으로써 그 가치를 책정할 수도 있다. 당신의 자녀에게 물질적 가치를 매길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그 가치를 적절하게 책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편으론 과도하게 값이 매겨진 것들도 있지 않나. 가령 CEO의 연봉이라든가.

“세계 곳곳의 억만장자들의 부를 정당화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들은 일종의 사회 환원 개념을 강조한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갖고 있고 제프 베이조스 역시 ‘베이조스 지구 기금(Bezos Earth Fund)’를 운영 중이다. 블룸버그는 곧 역대 최대 규모의 자선 단체를 출범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는 바로 이 자선 단체가 세금을 통해 민주적으로 통제돼야 하는 것들을 민영화한다는 것이다. 이 억만장자들의 존재야말로 일부 사람만을 지나치게 배불리는 잘못된 금융 구조 탓에 나타나는 일종의 증상이다. 억만장자들은 자선단체를 통해 많은 현금을 나눠주면서 대중의 애환을 잠시나마 달래줄 수는 있다. 그러나 소수의 ‘잘나가는 사람들’ 몇 명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자선활동을 펼치는 것보다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해 민주적으로 부를 재분배 하는 게 더 낫다.”

-과거 인터뷰에서 제프 베이조스를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 비유했다. 인류가 달에 진출하려는 시도를 과거 유럽의 식민지 건설과 같다고 보는듯한데, 지나친 비약이라는 비판도 있다.

“일론 머스크는 이곳 텍사스의 가장 유명한 주민이다. 머스크는 ‘화성을 점령하라(Occupy Mars·일론 머스크의 우주 탐사 기업 ‘Space X’가 판매하는 티셔츠에 쓰인 문구)’라고 쓰인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그는 식민지 건설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테슬라가 수년 전 쿠데타가 발생한 볼리비아로부터 리튬을 수입한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이때마다 머스크는 ‘우리는 원한다면 어디에서든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런 그의 언행이야말로 천연자원을 대하는 식민주의자의 태도다. 또 머스크는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의 복지에 별 관심이 없다. 이들을 특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이는 게 아니다. 이들의 입에서 나온 날 것 그대로의 멘트에 주목해 보라. 제프 베이조스 역시 우주 식민지 건설에 아주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류를 우주로 이주시키려는 그는 지구를 그저 야생 사파리 정도로만 치부하는 것 같다. 역시 베이조스 본인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어떤 비판도 꾸며내지 않았다. 그저 사실을 근거로 그들을 조롱했을 뿐이다.”

자유주의와 파시즘은 서로 연장선상에 있고, 자유주의는 쉽게 파시즘으로 변질된다

-노예처럼 착취 상태에 있는 노동자가 4000만명에 이르고, 굶주리는 사람은 10억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이들의 고통은 이미 극에 다다른 것 같은데, 왜 세상은 그대로일까.

“매우 좋은 질문이다. 누군가는 ‘굶주리는 사람이 20억명, 30억명, 40억명에 이르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얼마나 더 혹독한 고통을 겪어야 하나. 그래서 파시즘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 위기를 아주 파괴적인 방식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세계 곳곳에서 파시즘의 물결에 맞서 싸우는 움직임도 있다. 한국의 노동 운동이나 농민 운동 등이 예시가 될 수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문제는 바로 자유주의에 기반한 사회 민주적 제도와 장치들이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 테니 파시즘은 걱정하지 마’, ‘파시스트들을 감옥에 보내면 되니 아무 문제 없어’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유주의와 파시즘은 서로 연장선상에 있고, 자유주의는 쉽게 파시즘으로 변질된다. 자유주의는 기존 시장 경제 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 없이 성취할 수 없는 공약을 남발하고 있어 매우 걱정된다.”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5일 텍사스대 린든 B. 존슨 정책대학원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오스틴 | 김경학 기자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5일 텍사스대 린든 B. 존슨 정책대학원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하고 있다. 오스틴 | 김경학 기자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상의 종말이 먼저 올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유명한 주장이다. 자본주의 종말보다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기 더 쉽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애초에 대안적 미래들은 숨겨지고 금기시돼왔기 때문에 우리는 상호 협력적이고 배려하는 사회를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종말에 대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건 <매드맥스>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황폐화된 지구의 모습뿐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는 새로운 사회를 선뜻 상상하는 건 정말 어렵다.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는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황무지 같은 미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자본주의 너머를 함께 꿈꿀 수 있을 때 찾을 수 있다.”

정치는 누구에게 투표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를 총망라하는 개념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저항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나 ‘350 캠페인(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350ppm으로 낮추자고 촉구하는 국제적 기후변화 방지 운동)’ 등의 투쟁이 있었다.하지만 저항과 투쟁을 확산시키고 더 발전시켜야 할 지배구조 역시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결국 정치가 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모든 것은 정치적인 함의를 갖는다. 여기서 정치는 단지 누구에게 투표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를 총망라하는 개념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는 정치적인 질문이다. 어느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 역시 정치적인 문제다. 미디어 역시 정치적이다. 모든 것이 정치적이고, 정치가 바로 유일한 해결 방안이다. 그러나 투표가 정치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정치는 투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파시즘이 대두하려는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선거를 통해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대답에 앞서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모두가 각자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체제다. 현실의 민주주의는 마치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과 같다.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인가. 선택권이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에서 사람들은 선택지마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매운맛’ 파시즘과 ‘순한 맛’ 파시즘 사이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아마 순한 맛 파시즘을 고를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으면 곧바로 매운맛 파시즘으로 돌아설 것이다. 최근 인도나 터키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권위주의적 정권과 나약한 야권 세력이 특징인 다른 국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는 것을 보고 싶다. 그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5일 텍사스대 린든 B. 존슨 정책대학원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스틴 | 김경학 기자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5일 텍사스대 린든 B. 존슨 정책대학원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대담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스틴 | 김경학 기자

-저항과 투쟁 현장에 청년들이 많이 나서고 있다. 단순히 구호를 외치는 단계에서 벗어나 대안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해야 하지 않을까. 청년들을 조직하고 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방안이 있나.

“동의한다. 나도 조금 젊었으면 싶다. (웃음) 그렇지만 지금도 많은 기관과 단체들이 나서 사람들을 조직하고 있다. 공동체를 조직하고, 토지를 기반으로 사람들 간의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마을을 설립한다. 또 정부가 나서 지역 단위로 주권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 정부나 영국의 스코틀랜드 정부가 좋은 예다. 이는 준 국가 차원의 조직인데,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고 있다. 모순적일 수도 있지만 (저항과 투쟁 현장에는) 사회 운동도 있지만 시 또는 지역 단위의 정부 조직들도 있다. 모두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조직들이다. 그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탈 자본주의적 정치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으로 안다. 자본주의 체제는 유지하되, 문제 요소를 수정하는 식으로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을까.

“자본주의는 지불해야 할 청구서를 늘리기만 하는 지속 불가능한 체제일 뿐이다. 요금 청구서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도) 우리는 청구서의 개수와 액수를 줄이려고 하겠지만 그 기저에 존재하는 착취라는 본질은 그대로일 것이다. 바로 이 착취라는 개념은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착취가 사라지면 자본주의도 사라진다. 이 착취라는 요소를 제거하지 않고 어떻게 자본주의 이후 사회를 논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기후 위기는 곧 자본주의의 위기다.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기후 위기 또한 없었을 것이다

-당장 인류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하나만 꼽으면.

“단연코 기후 위기다. 그리고 기후 위기는 곧 자본주의의 위기다.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기후 위기 또한 없었을 것이다. 기후 위기는 또한 파시즘과 긴밀히 연관돼있다. 이는 정치적인 문제기도 하면서, 식량 위기기도 하고, 그리고 돌봄에 관한 문제기도 하다. 기후 위기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통합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단순한 이상 기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 텍사스는 올 초 날씨가 지독하게 나빴다. 주기적으로 텍사스를 덮치는 초대형 폭풍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텍사스 주내 전기 공급망과 연관된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기후 위기는) 이상 기후 자체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 기저에 존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날씨와 결합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다.”

-사람들은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재활용품을 사용하는 등 나름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양적 성장을 지향하는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근본적으로 기후 위기 극복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우리는 모두 ‘가능한 금속 빨대를 사용하고 분리수거를 통해 재활용을 늘리라’는 압박을 받는다. 마치 우리가 금속 빨대를 더 자주 쓰고 재활용을 더 많이 하면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으로 대응하려는 전형적인 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좌절한다. 우리는 금속 빨대와 재활용만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분명 더 큰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계속 ‘걱정하지 마. 아무 생각 말고 재활용만 하면 돼’라는 메시지를 접한다. 이처럼 사회적 문제에 지극히 개인적인 해결 방안만을 반복하며 걱정 말라는 분위기가 매우 우려스럽다. 기후변화에 대한 체계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만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더 강조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돌봄에 대해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타인에 대한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이는 6월 열리는 <경향포럼>에 참석해 중점적으로 얘기할 생각이다. 돌봄이야말로 환경과 경제,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 미래를 통합하는 요소기 때문이다.”

대담 오스틴 |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정리 이창준·김경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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