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저금통·유시민 펀드·NFT…후원금은 돈이 아니라 전략이다

탁지영 기자

“정치부 기자들이 전하는 당최 모를 이상한 국회와 정치권 이야기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이 후보 후원회장을 맡은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4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자 이재명 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이 후보 후원회장을 맡은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4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자 이재명 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후원회가 4일 출범했습니다. 후원회장은 경선 경쟁자였던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맡았습니다. 정 전 총리는 출범식에서 “희망저금통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주셨듯 국민 여러분의 정성과 마음을 모아 이재명 대통령과 4기 민주정부를 만들어달라”고 말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도 이날 ‘불·기·차’(불평등 타파·기후위기 극복·차별 철폐)라는 이름의 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후원금은 선거 자금이지만 후보의 세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법정 후원금 한도액까지 얼마나 빨리 모으는지, 소액 후원금 비중은 얼마나 높은지를 보면 간접적으로 후보의 지지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치자금법에 따라 대통령 후보자 후원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하는 선거비용 제한액의 5%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모을 수 있는데요. 이번 대선에서는 25억6545만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습니다.
 
여의도앨리스는 지난 대선과 주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후원금의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희망돼지 저금통은 자발적 시민 후원금의 대표 사례로 꼽힙니다. 정 전 총리가 이날 출범식에서 언급한 그 ‘희망 저금통’입니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선거대책위원회 출범 이후에도 당 내부에서 ‘후단협’(대통령 후보 단일화추진협의회) 사태라 불리는 분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필두로 한 노무현 후보 지지층은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돼지 저금통 모금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저금통 20만개를 전국에 뿌렸습니다. 한 달가량 지난 뒤 열린 국민 후원금 전달식에서 노 후보에게 전달된 저금통은 1000여개에 달했습니다. 1인 1만원 모금 운동 등 노 후보에게 다수가 보낸 소액 후원금이 쏟아졌습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노 후보는 지지자들에게 받은 후원금을 선거 자금으로 활용해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노사모 회원들이 대선 기간 분양한 희망돼지저금통을 모아놓고 환호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노사모 회원들이 대선 기간 분양한 희망돼지저금통을 모아놓고 환호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0년 경기지사 선거에는 펀드가 처음 등장합니다. 지금은 정치평론가로 유명한 유시민씨가 당시 6·2 지방선거 때 경기지사에 출마하면서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유시민 펀드’를 만들었습니다. 유권자들에게 돈을 빌려 쓰고 선거 이후 원금에 이자를 붙여 전액 상환하는 방식입니다. 정치인 펀드는 당시 정치자금법의 제도적 한계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2010년 당시 정치자금법은 지자체장 선거의 경우 후보 등록 이후에만 후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현역 의원 신분이 아니었던 유씨는 후보 등록을 마치고 나서야 후원금을 모집할 수 있었는데, 짧은 기간 동안 수십억원에 달하는 선거 자금을 모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펀드라는 방식을 고안해낸 것이죠.
 
유시민 펀드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펀드 개설 이틀 만에 10억원이 넘는 돈을 모았습니다. 당시 경기지사 선거비용 제한액이었던 40억7300만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였습니다. 4일 만에 41억원까지 모여 마감해야 했습니다.
 
당시 선거 펀드가 유사수신행위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유사수신행위는 다른 법령에 따른 인가·허가를 받지 아니하거나 등록·신고 등을 하지 아니하고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당시 선관위는 “선거 펀드는 금융상품이 아닌 개인간의 거래이기 때문에 관련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을 내렸습니다.
 
이후 각종 지자체장 선거 등에 정치인 펀드가 유행했습니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박원순 무소속 후보도 ‘박원순 펀드’를 만들었습니다. 박 후보는 모금 시작 후 52시간 만에 법정 선거비용인 38억8500만원을 마련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뒤 ‘문재인 담쟁이 펀드’를 조성했습니다. 당시 문 후보는 56시간 만에 200억원을 모았습니다. ‘비(B)펀드’ 등 정치인 펀드를 만드는 온라인 플랫폼도 있습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며 “이름만 ‘펀드’인 것이지 정치자금이라서 정치자금법에 따라 정치자금 수입·지출내역에 관한 회계보고를 하게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후보자가 정치자금을 통상적인 이자율에 따라 공개 차입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금융기관의 대출금리 또는 법정이자율 등 통상적인 이자율과 비교하여 현저히 낮은 이자율로 차입하는 것은 해당 법에 위반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4일 경기 광명시 기아 오토랜드 광명(옛 기아차 소하리공장)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대전환과 국민 대도약을 위한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4일 경기 광명시 기아 오토랜드 광명(옛 기아차 소하리공장)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대전환과 국민 대도약을 위한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최근 민주당 선대위는 선거자금 펀딩 방식에 NFT(대체불가토큰)를 도입하는 방식을 고안 중입니다. 지난 3일 이재명 후보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후원이나 선거자금 펀딩도 NFT를 이용해 해볼까 계획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NFT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가상자산입니다. 그림이나 글 등 디지털 데이터에 고유한 ID를 부여해 사본이 없는 희소성, 즉 대체 불가능한 디지털 자산을 만드는 것입니다. 선대위는 선거자금 펀딩 참여자들에게 전달하는 채권 약정서를 NFT로 발행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이날 “후원금 모집에는 NFT를 활용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후원금 또는 선거자금을 어떤 방식으로 모으느냐도 화제거리이지만, 소액 후원 비중이 정치인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지지층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각 후보 캠프에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10만원 이하 소액 후원 비중을 강조했습니다.
 
정 전 총리도 이날 후원회 출범식에서 “소수의 고액 후원자보다 많은 국민이 적극 참여해서 소액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후원회를 지향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후보도 “고액 후원보다는 많은 국민들이 소액을 후원해 더 유능한 정부를 만드는 데 함께해주시길 소망한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선대위는 ‘2030원 후원 캠페인’을 벌일 예정입니다. 장경태 의원은 후원회 출범식에서 “2030원 후원 캠페인은 대한민국 청년의 염원을 담아 2030원을 이 후보에게 후원하는 캠페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