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당일 성추행 보고…두 달 넘게 가해자와 분리조치 안 해

박은경 기자

성추행 피해 후 국방부 보고까지 76일…그간 무슨 일이 있었나

빈소 마련된 병원 앞에 ‘군 성폭력 예방’ 현수막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뒤 숨진 채 발견된 해군 여중사의 빈소가 13일 마련된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 앞에 ‘전국 성폭력 예방 특별 강조 기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빈소 마련된 병원 앞에 ‘군 성폭력 예방’ 현수막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뒤 숨진 채 발견된 해군 여중사의 빈소가 13일 마련된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 앞에 ‘전국 성폭력 예방 특별 강조 기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부임 3일 만에 상관이 부적절한 신체접촉…당일 주임상사에 알려
해군 측 “피해자가 외부 유출 말라고 요청해 상부에 보고 안 했다”
이달 7일 부대장과 면담하기까지 회유·압박 있었는지 규명해야

부대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뒤 사망한 해군 여군 A중사는 사건이 일어난 부대 부임 사흘 만에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A중사는 당일 상관에게 이를 알렸지만 군 수뇌부가 이 사건을 인지하기까지는 76일이나 걸렸다. 피해자가 외부 유출을 원치 않았다는 것이 해군의 주장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사건 당일 상관에게 보고했지만 두 달 넘게 가해자와의 분리조치 같은 기초적인 피해자 보호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A중사가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업무 배제 같은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해군 관계자에 따르면 A중사는 지난 5월24일 해군 2함대 소속 한 도서지역 부대에 부임했다. 사흘 뒤인 27일 같은 부대 상관인 B상사의 요청에 따라 영외 민간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날은 전투휴무일이었다. B상사는 이 자리에서 부적절한 신체접촉 등 성추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중사는 사건 당일 피해 사실을 주임상사에게 알렸다.

사건 당일 성추행 보고…두 달 넘게 가해자와 분리조치 안 해

해군 측은 A중사가 주임상사에게 성추행 사실을 말하면서 일절 외부로 유출하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주임상사는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가해자인 B상사만 따로 불러 “행동을 조심하라”며 주의를 줬다는 것이 해군 측 설명이다.

A중사는 지난 7일 피해 사실을 부대 지휘부에 알렸다. 감시대장과 1차 면담을, 소속 부대장과 2차 면담을 각각 진행했다. 성추행 정식 신고는 면담 이틀 뒤인 지난 9일 이뤄졌다. 사건 발생 후 두 달 반 만이다. A중사는 부대장에게 피해 사실 정식 보고와 육상부대 전출을 요청했다. 부대장은 이날 함대 군사경찰, 해군작전사령부에 보고하고 해군본부 양성평등센터에도 알렸다. A중사는 같은 날 2함대 소속 모 육상부대로 전출됐다.

해군 수사기관은 지난 11일 B상사를 입건했다. 같은 날 A중사는 19일까지 청원휴가를 냈으며, 이튿날인 12일 부대 독신자 숙소 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중사는 정식 신고한 9일부터 숨진 12일까지 8차례에 걸쳐 군 성고충상담센터에 전화로 고충을 토로했다. 군 당국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해군본부 군사경찰은 11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이 사건을 보고했다. 조사본부는 당일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서면보고를 했다. 사건이 정식 신고된 9일을 기준으로 이틀 만이지만 성추행 피해 발생일 기준으로는 76일 만에 군 수뇌부가 해당 사건을 알게 된 셈이다. 부 총장은 12일 A중사가 숨진 채 발견된 후 서 장관에게 사망 사실을 보고했다.

해군 측 주장대로 피해자가 외부 공개를 원치 않았다고 해도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가해자와의 분리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점 등 후속조치가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군 관계자는 “법령상으로는 성추행 사고가 일어나면 (인지 즉시) 보고하게 돼 있고, 훈령상에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보고하지 않도록 돼 있어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A중사가 지난 7일 다시 부대장 면담을 요청하기까지 회유와 압박이 있었는지도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A중사 유족이 ‘5월27일 성추행 이후 부대 내 가해자의 지속적인 따돌림과 괴롭힘이 있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하 의원에 따르면 A중사는 지난 3일 “일해야 하는데 (B상사가) 자꾸 배제하고 그래서 오늘 그냥 부대에 신고하려고 전화했다. 내가 스트레스 받아서 안 될 것 같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자신의 부모에게 보냈다. 성추행 다음날 B상사는 사과하겠다며 A중사를 불러 술을 따르게 했는데, A중사가 이를 거부하자 “술을 따라주지 않으면 3년 동안 재수가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악담 등 2차 가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가 성추행 사실을 알렸지만 가해자와의 분리조치 없이 군내 방치된 점, 2차 가해가 이뤄진 점, 군 지휘부에 뒤늦게 보고된 점 등 이번 사건은 공군 이모 중사 사건과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는 조사본부와 해군 중앙수사대 전문인력으로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특별수사팀은 전날 B상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14일 오전 영장실질심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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