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덩어리'에서 '안보위협'으로 변한 영변 핵시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기자메모]'고철덩어리'에서 '안보위협'으로 변한 영변 핵시설

북한이 2년반 동안 닫아놓았던 영변의 재처리시설과 실험용 원자로 등 핵물질 생산 시설을 올해 초부터 다시 가동한 것으로 보인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근 보고서 내용은 놀랍지 않다. 북한 스스로 핵능력 강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누누이 밝혀온데다 가동 중단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공개되자마자 야당은 영변 핵시설 재가동을 ‘재앙’, ‘대한민국의 존립을 좌우하는 북핵 활동’ ‘북핵 협상의 중요한 변수’ 등으로 표현하며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보수 언론도 이에 가세해 영변 핵시설 재가동의 심각성을 일제히 부각시키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을 재개한 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역행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야당과 보수 세력의 공세에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는 ‘일관성’의 문제 때문이다. 2019년 2월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영변 핵시설 해체와 제재 완화를 교환하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을 때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과 보수 언론은 영변 핵시설을 협상 가치가 없는 ‘고철 덩어리’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은 고철 덩어리 재가동을 두고 ‘국가운명이 걸린 심각한 재앙’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도대체 둘 중 어떤 주장이 국가안보를 위한 한조각 붉은 마음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영변 핵시설은 북한 핵개발의 심장부였다. 북핵 위기 초반 한·미의 대북정책은 영변 시설의 가동을 중단시켜 핵물질 생산을 멈추고 이미 생산한 핵물질을 반출해내는 것에 집중돼 있었다. 영변만 해결하면 북핵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 북한이 은닉된 우라늄농축시설에서 또 다른 핵무기 원료인 고농축우라늄(HEU)을 연간 100㎏ 이상 쏟아내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미 완성된 핵무기만도 50~60기에 이른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반도는 이같은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지 이미 오래다. 따라서 지금 북한이 원자로를 재가동해 연간 6~10㎏의 플루토늄을 추가로 만드는 것은 위기의 측면에서나 협상의 측면에서나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하노이 북·미 회담이 깨진 것도 이 때문이며, 미국이 IAEA 보고서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가 “영변을 폐쇄하면 비핵화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진입한다”고 주장했던 것은 사실과 다르다. 지금 북핵 문제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러나 영변 핵시설이 고철이라거나, 영변 핵시설 재가동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는 야당의 주장도 진실은 아니다. 지금 영변 핵시설이 재가동된 것이 사실이라면 우려할만한 요소가 추가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현재 처한 위기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영변 핵시설의 가치는 국제정세와 북한의 현재 핵능력 등을 근거로 평가하는 것이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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