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들 잇단 보궐선거 출마에 거대 양당 공천 논란으로 ‘대선 2차전’ 양상
‘효율적 이견 통제’ 목적으로 박정희 때 만든 정당법,지역정당 출현 막아
“생활밀착형 지역정당으로 중앙정치 영향력 벗어나야”…정당법 개정 목소리
6·1 지방선거가 표류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 축제이지만 거대 양당과 중앙정치 이슈가 선거전을 집어삼켰다. 어젠다도, 두드러진 후보도 대선 복사판이다. ‘대선 2차전’ ‘대선 연장전’ 등 별칭에서도 지역은 지워졌다.
초유의 ‘지방’ 없는 ‘지방’선거가 19일부터 31일까지 13일간의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간다. 13일 사이 정국 중심이 중앙에서 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선과 지방선거라는) 두 개의 선거가 간섭작용을 일으켜 양당이 생존을 위해 연장전을 치르고 있다”며 “이래서는 지방선거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계와 지역 정계 현장에서는 지역이 지워진 지방선거의 해묵은 문제를 풀려면 풀뿌리 정당 태동을 막는 정당법을 고치는 작업부터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당법 벽을 허무려는 지역정당 운동도 이어지고 있다.
■지역은 어떻게 ‘삭제’됐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역이 실종된 주요 요인으로 유례없이 치열했던 대선, 그리고 그와 꼭 붙어 있는 선거일자가 꼽힌다. 앞선 정부에서도 지방선거가 ‘풀뿌리’ 의제로 이뤄지지 못한 적이 많았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4년차, 이명박 정부는 임기 3년차, 박근혜·문재인 정부는 임기 2년차에 지방선거를 치렀다. 대체로 정부 중간평가 성격이 짙었다. 이번엔 윤석열 정부 출범 22일 만에 선거가 실시된다. 역대 최소 격차(0.73%포인트)로 승부가 갈린 대선의 여운, ‘비호감 네거티브’ 선거전으로 극대화한 갈등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다. 중앙정치가 잠식해온 지방선거에 ‘대선 후폭풍’이라는 요소가 더해졌다.
거대 양당의 지방선거 활용법은 대선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지방선거 승리=진정한 대선 승리’라며 초기 국정동력 확보에 이번 선거의 목적을 둔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견제론을 들어 설욕전을 벼른다. 중앙정치 중심의 틀은 지역 어젠다 실종으로 이어졌다. 양당이 승부처로 꼽는 경기지사 선거에선 지난 대선을 달군 대장동 개발 의혹 이슈가 여전히 활화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윤석열 정부의 인선 난맥상 등 중앙정치 이슈가 지방선거전을 달궜다. 중앙 이슈와 지역 이슈의 균형은 깨졌다.
대선 주자급 인사들의 이름이 선거 초반부터 개별 후보자 이름만큼 언급되기도 했다. 거대 양당 공천은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과 ‘이심’(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 의중) 논란 속에 치러졌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주자였던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대구시장 후보로 나섰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르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이 상임고문(인천 계양을), 안철수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경기 성남 분당갑) 등이 뛰어들면서 ‘지역 실종’ 현상에 불을 붙였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5년차인 2026년에도 지방선거를 치른다. 현재 구조대로라면 이 역시 다음 대선 전초전으로서 지역이 실종된 채 치러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박정희 위해’ 제정된 정당법
“탄압만 안 하면 되지 않나.”
1962년 11월20일 길재호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제사법위원은 정당법 제정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야당 육성 방안을 정당법에 규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같은 해 12월31일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재한 최고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정당법이 통과됐다. 길 위원은 “건전한 복수정당제를 보장하며 군소정당의 난립을 방지하고자 본 법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2~3개의 정당 체제가 확립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정당법은 이렇게 탄생했다. 민의에 따라 자유롭게 결성된 정당의 목소리를 보장하는 대신 이견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데 목적을 뒀다. 박 전 대통령은 이듬해 민정 이양 약속을 어기고 공화당을 창당했다. 현대사 질곡에도 정당법 뼈대는 남았다. 60년 동안 이어진 정당법 체제는 다원화되고 역동적인 사회상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지역 의제를 다루는 생활밀착형 정치 결사체, 일명 ‘지역정당’의 출현을 가로막는 것은 대표적인 문제로 꼽힌다. 현행 정당법은 각 정당의 중앙당을 수도에 두고(3조), 5개 이상의 시·도당을 두도록(17조) 한다. 지역 주민들로만 구성된 정당의 창당은 시작부터 불가능하다.
지역정당 부재는 지역 의제가 거대 양당이라는 중앙정치의 필터를 거치도록 했다.
박원호 교수는 “아무리 중요한 지역 의제도 양당을 통과하지 않으면 유의미한 문제 제기가 되지 않는다”며 “결국 서울로 와서 양당의 필터링을 거친다. ‘화이트 워싱’(유색인 역할을 백인 배우로 대체하는 것)처럼 이른바 ‘양당 워싱’이 돼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 지방선거도 지역 의제 실종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전국이 동시에 선거를 치르면 전국적 현안 중심으로 지방선거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8년 발간한 ‘지역정당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 논문을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정당 설립 요건을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과 독일 정도다. 독일의 정당법은 지역정당 창당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독일의 지역정당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지방선거에서 점차 그 영향력을 확대해 30% 정도의 득표율을 보이고 있다. 박 교수는 “왜 모든 지방이 똑같은 형태의 정치 체제를 가져야 하나”라며 “정치개혁을 논하려면 양당제적 대립 자체를 만들어내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정당법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역정당 운동에 뛰어든 사람들
이용희 직접행동영등포당(영등포당) 대표는 지난 17일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허경영의 국가혁명당 등도 정당법에서 인정하는데 지역정당을 제한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지방선거에 출마할 자격조차 얻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 묻어났다. 영등포당은 서부간선지하도로의 매연 피해 방지, 성매매 집결지 폐쇄 등 지역의 숙원과제 해결을 목표로 활동해왔다. 이 대표는 지난 13일 구의원 선거에 입후보 신청했지만 구선관위에서 반려됐다. 등록된 정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등포당은 별도 시·도당이 없어 정당법상 등록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 대표는 지역정치 활동이 양당 정치에 휩쓸리는 것을 목격하고 지역정당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진보신당에서 잠시 활동했지만 2011년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는 “마을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비영리 법인을 시작했는데 (지자체에서) 특정 정당에 가입된 적이 있느냐고 자꾸 물었다”며 “결국은 (지자체 사업을) 수탁받지 못했다. 과거 당적 때문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주민들의 모임이 거대 양당을 통하지 않으면 시기, 질투를 받고 배제당한다”고 했다.
나영 은평민들레당 대표는 지난 1월 은평민들레당을 창당했다. 그는 “저희도 여기 주민이고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대 양당처럼 ‘우리가 뭘 해줄게’가 아니고 ‘우리 같이 뭘 해요’라고 할 수 있다”며 “시민사회와 달리 정당은 목소리를 직접 실현할 수 있다”고 창당 이유를 말했다.
정당법상 등록 요건을 갖추지 못한 지역정당으로서의 설움이 적지 않다. 사무실 등록도 할 수 없다. 그는 “있지만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며 “새로운 분들을 모집하려 해도 ‘얘네 가짜 아니야’라고 반응하니 어려운 때가 많다”고 말했다.
과천시민정치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후보를 냈다. 정당법의 벽을 넘으려는 고육지책이다. 다만 이는 정치개혁 과도기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지역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상천 과천시민정치당 정책위원은 “지역 시민들에게 중요한 이슈를 중점적으로 연구·논의하고 역량을 축적해가기 위해서는 정당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지역정당 운동은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걸까. 이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억울하거나 정의롭지 않은 일이 있다면 ‘뭔가 한번 해볼까’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주민자치센터 주민자치회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