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식 경제개혁 바라보는 트럼프·김정은의 다른 속셈…회담 장소의 ‘외교학’

김유진 기자

베트남은 식민지배, 분단, 전쟁, 개혁·개방, ‘적’(미국)과의 화해로 이어지는 질곡의 역사를 지나왔다. 2차 북·미 정상회담 무대인 베트남에서 미국과 북한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미가 베트남을 회담 장소로 낙점한 배경에는 ‘베트남식 모델’에 대한 관심이 자리하고 있다. 베트남은 1986년 경제개혁 정책인 ‘도이모이’(쇄신)를 통해 고도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도보다리를 거닐며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을 추진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북한이 비핵화를 실행하면 “대단한 경제강국, 경제적인 로켓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줄곧 보내왔다.

하지만 ‘베트남 모델’을 바라보는 미국과 북한의 속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미국은 베트남의 번영이 시작된 계기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7월 베트남을 찾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베트남의 놀라운 성공 스토리는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가 베트남 주민들의 근면함, 탄탄한 지도력과 결합된 결과”라고 말했다. 전쟁 당시 극한 대립을 했던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는 1990년대 초반 미군 유해 공동 발굴·송환을 시작으로 서서히 반전을 맞았다. 1995년 수교 이후 양국의 교역이 급증했고, 군사·안보 분야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미 언론 ‘애틀랜틱’은 트럼프 행정부가 베트남 사회에 깊숙이 스며든 미국 문화의 흔적을 북한에 보여주기를 희망한다고도 전망했다.

반면 북한은 베트남의 경제성과 못지않게 사회주의 이념과 일당지배를 근간으로 하는 정치체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호찌민 주석 때부터 집단지배체제를 운용해온 베트남은 1986년 이래 총서기가 5차례, 총리는 7차례 교체됐다. 그럼에도 공산당은 굳건한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이런 베트남의 지배구조는 북한에 매력적이다. 김 위원장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버리고 ‘경제건설 총력집중’을 선언했지만 앤드루 김 전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이 지난 22일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밝힌 것처럼 “‘김씨 가문’의 지배를 계속 보장하는 평화 메커니즘”이 최우선 목표이기 때문이다.

또 북한 입장에서는 베트남이 미국을 상대로 한 유일 승전국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려 할 수도 있다. 남부 호찌민(옛 사이공)과 달리 하노이는 함락되지 않았다. 북한도 비공식적 병력 파병이나 원조, 인적 교류를 통해 북베트남을 지원했다. ‘대미 항전’ 역사에서 베트남이 갖는 상징성은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 개최지를 미국이 선호하는 다낭이 아닌 하노이로 관철시킨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베트남 정부가 회담 유치에 적극적이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베트남 정부의 2차 북·미 정상회담 공식 홈페이지엔 “베트남은 전 세계의 항구적 평화와 협력, 번영을 만드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를 희망한다”고 적혀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베트남 고위 인사들이 한반도 통일과 평화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크다고 느꼈다. 전쟁과 통일 과정에서 겪은 후유증을 ‘반면교사’로 삼아달라는 기대로 이해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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