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질서 관점 “자유민주주의”…이번엔 정권 비판 수단으로 사용

이효상 기자

‘검사 윤석열’과 ‘정치인 윤석열’의 언어

검사 윤석열과 정치인 윤석열의 언어는 같은 듯 달랐다. 윤 전 총장은 검사 시절 강조하던 ‘자유민주주의’와 ‘공정한 경쟁’을 29일 대권 출마 선언문에서도 언급했지만 구체성과 강도는 한결 떨어졌다. 대신 ‘상식’과 ‘정권교체’를 앞세웠다.

윤 전 총장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서울중앙지검장에 오른 이래 이·취임식 등 공개 석상에서 수차례 국가관 등을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장 취임 후 인사말부터 검찰총장 이·취임사, 두 차례 신년사, 신임 검사들에 대한 당부의 말 등 1만1000여자에 달하는 발언에서 윤 전 총장은 ‘법치’와 ‘자유민주주의’, ‘공정한 경쟁질서의 확립’을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은 2019년 7월 검찰총장 취임사에서 “우선적으로 중시해야 하는 가치는 바로 공정한 경쟁질서의 확립”이라며 “권력기관의 정치·선거개입, 불법자금 수수, 시장 교란 반칙행위, 우월적 지위의 남용 등 정치·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의 정치적 선택이나 시장경제의 왜곡을 막기 위해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대검찰청은 설명자료를 통해 “검사 인생과 철학이 반영된 취임사”라며 “ ‘시장의 룰이 깨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진다, 룰을 위반하는 반칙행위는 묵과할 수 없다’는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한 경쟁질서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언급됐다. 대검은 “경제적 강자의 반칙과 농단에는 강력 대응하되, 중소기업의 사소한 불법까지 수사권을 발동할 것인지 여부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 자제’, ‘비례와 균형’ 관점에서 헌법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밝혀왔다”고 했다. ‘공정한 경쟁’이 조준하는 건 재벌 등 거대 경제권력의 반칙과 불법이라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은 고위 검사 시절 6차례 공개 발언에서 ‘공정한 경쟁’을 4차례 언급하는 등 ‘공정’을 11차례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출마선언문에서도 ‘공정’을 9차례 언급했다. 하지만 시장질서를 논하던 검사 시절과는 달리 정치권력의 반칙을 지적하는 데 강조점을 뒀다. “국민들이 뻔히 보고 있는 앞에서, 오만하게 법과 상식을 짓밟는 정권에 공정과 자유민주주의를 바라고 혁신을 기대한다는 것은 망상”이라는 것이다.

출마선언문에는 ‘공정한 경쟁’이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은 출마선언 후 질의응답에서 공정을 시장에서의 공정과 기회의 공정으로 구분했다. 그러면서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국민들이 생애 전 주기에 더 발전할 수 있는 균등한 기회 보장이 큰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공정담론을 앞세워 청년세대에 다가서고, ‘시장의 경쟁질서 확립’을 뒤로 미뤄 보수세력과의 갈등 요인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검찰총장 취임식 때 윤 전 총장은 “과거 우리나라의 법 집행 기관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를 두 축으로 하는 헌법체제의 수호를 적대세력에 대한 방어라는 관점에서만 주로 보았다”며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풍요와 희망을 선사해야 할 시장기구가 경제적 강자의 농단에 의해 건강과 활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헌법체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자유민주주의를 공정한 시장경제질서와 연결 지은 것이다. 그는 취임 직후 과거 공안 사건을 담당하던 서울중앙지검 2차장 산하에 특수검사들을 배치하는 등 정치·경제 권력 감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출마선언문에선 “(현 정부가)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며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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