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일 만에 청와대 나와…현충원·독립유공자 묘역 참배 뒤 퇴임 연설
오후 6시 마지막 퇴근, 시민과 일일이 악수…“무거운 짐 내려놔 홀가분”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날인 9일 저녁 1만명 넘는 시민들 환호 속에 청와대를 나왔다. 2017년 5월10일 취임 후 1826일 만의 ‘퇴근’이다.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임기 말 지지율을 기록한 문 대통령은 공과에 대한 평가를 역사에 맡긴 채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 문 대통령은 10일 취임하는 윤석열 20대 대통령을 향해 역대 정부의 성과를 계승하고 국민 통합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전날 역대 대통령 중 마지막일 가능성이 큰 청와대 관저에서 밤을 보낸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부인 김정숙 여사 등과 함께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을 잇따라 참배했다. 문 대통령은 두 곳에서 방명록에 각각 “더 당당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청와대로 돌아온 문 대통령은 오전 10시부터 12분간 본관 1층 로비에서 준비한 퇴임 연설문 ‘위대한 국민께 바치는 헌사’를 담담하게 읽어내려갔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며 “이제 평범한 시민의 삶으로 돌아가 성공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년은 국민과 함께 격동하는 세계사의 한복판에서 연속되는 국가적 위기를 헤쳐온 시기였다”며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며, 선도국가가 됐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전쟁 위기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킨 평창 동계올림픽, 일본 수출규제 극복, 코로나19 방역,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 돌파, 한류 확산, 한국판 뉴딜 등을 임기 중 성과로 내세웠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은 어느덧 민주주의, 경제, 수출, 디지털, 혁신, 방역, 보건의료, 문화, 군사력, 방산, 기후위기 대응, 외교와 국제협력 등 많은 분야에서 선도국가가 돼 있었다”며 “2차 세계대전 후 지난 70년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 2차 세계대전 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가 됐다”고 밝혔다.
환송 나온 시민들에 “성공한 전임 대통령 되도록 도와달라”
걸어서 퇴임한 첫 대통령
만여명의 ‘파란 물결’ 향해
밝은 표정으로 손 흔들며
“다시 출마할까요?” 농담도
10일 취임식 참석 후 양산행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위기에 강한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도약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윤 신임 대통령에게 “이전 정부들의 축적된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를 기원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선거 과정에서 더욱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우며 통합의 길로 나아갈 때 진정한 성공의 길로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퇴임사 대부분은 성과를 강조하는 데 할애됐지만, 아쉬움을 내비친 대목도 있었다. 다만 부동산 가격 폭등이나 인사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문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헌정질서가 무너졌을 때 우리 국민은 가장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통해 정부를 교체하고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며 “촛불광장 열망에 우리 정부가 얼마나 부응했는지 숙연한 마음이 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우리의 의지만으로 넘기 힘든 장벽이 있었다”고 말했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이후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현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뒤 참모회의를 주재했다. 오후에도 문 대통령은 윤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할리마 야콥 싱가포르 대통령 면담과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 접견 등 외교 일정을 소화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오기 40분 전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 국무위원 3명의 사표를 수리하며 모든 업무를 마쳤다. 오후 6시쯤 문 대통령은 700여명의 청와대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정문 밖엔 1만명 넘는 시민들이 운집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윤건영·홍영표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강경화·박영선 전 장관 등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들도 있었다. 시민들은 풍선과 손팻말을 흔들며 “사랑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외쳤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문 대통령 내외는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약 30분 만에 청와대 앞 분수대 근처에 마련된 무대에 오른 문 대통령은 다소 흥분한 표정으로 “다시 출마할까요?”라는 우스갯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 퇴근을 하고 나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서 정말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아내와 ‘정말 보기 좋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잘 살아보겠다”고 말했다. “여러분, 성공한 대통령이었습니까?”라는 말에 시민들이 “네”라고 대답하자, 문 대통령은 “감사하다. (이제) 성공한 전임 대통령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 내외는 차량에 탑승해 숙소로 이동하면서도 손을 흔들었다. 문 대통령은 숙소에서 이날 자정까지 핫라인을 유지하며 군 통수권자로서 소임을 다했다.
문 대통령은 10일 국회에서 열리는 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울산(통도사)역으로 이동한다.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3시 무렵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