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물은 어떡하고…원전이 민생이라는 정부

송진식 기자

‘폭탄 돌리기’ 고준위 핵폐기물처리장 선정 번번이 무산…특별법도 난망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2일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2일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주간 경향] “원전(원자력발전)이 곧 민생이다.”

지난 2월 22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꺼낸 말이다. 원전이 에너지 안보와 유관산업,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니 민생과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5년간 원자력 연구개발(R&D)에 4조원 이상 투입, 소형모듈 원자로(SMR) 등의 개발을 위한 ‘원전 지원 특별법’ 추진,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의 연내 마련 등 지원책을 대거 공개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는 등 전임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전면 폐기했다. 반면 2023년 7월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원전과 재생에너지 발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를 보면 “신규 원전 건설에 찬성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1000명 중 47%가 “반대한다”고 응답해 “찬성(45%)”보다 높게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원전의 안전성, 지속가능성, 친환경성 등의 질문에도 대부분 부정적 응답이 긍정을 앞섰다. 그런데도 원전을 “민생”이라며 추켜세우는 걸 보면 원전을 향한 윤 대통령의 마음은 분명 ‘진심’이다.

이렇게 원전에 ‘진심’인 윤 대통령이 좀처럼 꺼내지 않는 사실이 있다. 원자력발전을 통해 영영 정화할 수 없고, 극도로 위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 폐기물들을 어디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방법이 없어 국내 원전 내부와 주변 저장시설에 약 50만 다발(4만4000여t)가량 쌓아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2031년이 되면 더는 폐기물을 쌓아둘 곳도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1980년대부터 40년 넘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을 물색했지만 번번이 장소 선정에 실패했다. 여러 차례 관련 특별법안이 만들어졌지만 모두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환경단체 등은 원전 ‘진흥’을 넘어 ‘부흥’을 외치는 윤 대통령을 향해 “쓰레기장도 안 짓고 쓰레기 버릴 생각만 하는 꼴”이라며 비판한다.

“사용후핵연료,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

원자력발전은 핵연료의 연쇄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한 열로 증기를 발생시킨 뒤 이 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한다. 경수로원전은 핵연료로 저농축우라늄을, 중수로원전은 천연우라늄을 사용한다. 원자로에 넣기 위해 긴 원통 형태로 핵연료를 제작하기 때문에 ‘핵연료봉’이라고도 부른다. 사용하기 전 핵연료는 사람이 접근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 원자로 내에서 핵분열을 일으킨 뒤에는 인체에 극도로 유해한 플루토늄(Pu), 세슘(Cs-137), 스트론튬(Sr-90) 등이 포함된 고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로 변한다. 사용후핵연료 한 다발은 시간당 1000Sv(시버트)의 방사능을 내뿜어 근거리에서 사람이 잠시만 노출돼도 하루 안에 사망할 정도로 위험하다. 환경단체들은 그래서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로 단정한다.

핵연료는 경수로에서는 4년, 중수로에서는 9개월가량 사용한 뒤 교체된다. 교체 직후엔 엄청난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통상 5년간 붕소를 포함한 저수조(습식저장소)에 담가 열을 식힌 뒤 밀폐된 건식저장소로 옮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1년 12월 확정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보면 2021년 3분기 기준 누적 50만4809다발(경수로 2만733다발·중수로 48만4076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원전에 쌓여 있다. 매년 경수로에서 약 755다발, 중수로에서 약 1만2957다발이 발생하므로 지금은 더 많다.

자료/한국원자력환경공단

자료/한국원자력환경공단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방법은 크게 재처리, 재활용, 격리 등 세 가지다.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인 한국은 핵무기 생산에 쓰이는 플루토늄 추출 가능성 문제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할 수 없다. 원자력안전연구원, 원자력 업계 등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재활용 기술이 ‘파이로프로세싱’이다. 플루토늄 추출 없이 사용후핵연료에서 유용한 성분만 뽑아내 제4세대 원자로인 ‘소듐냉각고속로(SFR)의 연료로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일각에선 파이로프로세싱을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꿈의 기술’이라고 지칭한다. 기술 연구는 진행 중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이 이미 실패한 기술이며 상용화된 전례도 없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2021년 7월 기후위기그린뉴딜연구회 주최로 열린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 개발의 허구성’ 세미나에서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술 및 고속로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과 위험성, 일본과 독일이 포기한 사례 등을 제시하며 파이로프로세싱이 “근거 없는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한 탈핵 시민단체 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부터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 연구에만 수천억원을 쏟아부었는데 성과를 내지 못했다”라며 “혈세로 ‘핵마피아’들의 주머니만 채워준 것”이라고 말했다.

방폐장 향한 뿌리 깊은 ‘불신’, 50만 다발 쌓였다

재처리도, 재활용도 안 되는 현실에서 남은 선택지는 ‘격리’뿐이다. 사용후핵연료가 인체에 노출돼도 안전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반감기)은 최대 10만~30만 년에 달한다. 사실상 ‘영구 격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프랑스, 미국, 핀란드 등 다른 원전 국가들도 지하 500m 깊이에 땅굴을 파 저장시설을 조성한 뒤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격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핀란드는 이르면 올해부터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지하 영구 격리시설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국 정부도 1980년대부터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격리할 방폐장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간 9차례 시도가 있었고, 모두 실패했다.

첫 시도(1986~1989년)는 원전 주변인 경북 울진·영덕·영일이었다. 1978년 고리원전 1호기의 가동과 함께 방사성폐기물 관리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부는 1984년 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을 마련한 뒤 1987년 한국에너지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부지 환경 현황조사를 통해 이곳 세 지역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하지만 3개 지역에서 정부가 부지 조사를 하던 중 1989년 임시국회를 통해 방폐장 건설계획이 뒤늦게 알려졌다. 해당 지역에서 반대 운동이 격렬하게 일면서 무산됐다.

2차 시도는 안면도(1990~1991년)였다. 반발을 우려해 방폐장이 아닌 ‘원자력 제2 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한 뒤 안면도에 연구소를 설치하는 것이 골자였다. 1990년 9월 확정된 이 계획은 도중에 들통났고, 안면도 주민들이 극심하게 반발하면서 이듬해 6월 철회됐다. 3차 시도(1993년) 때는 부지 공모로 방식을 바꿨다. 신청을 낸 44개 지역 중 연구용역을 통해 7개 후보 지역을 선정했다. 후보지에 안면도가 또 들어 있다는 사실, 주민들도 모르게 영일군이 들어 있다는 사실 등이 알려지며 반대 운동이 일었다. 정부는 또 계획을 철회했다. 4차 시도(1994년) 때는 부지 확보 사전 주민협의 절차 및 시설지역에 대한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방사성폐기물관리사업의 촉진 및 시설주변지역의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뒤 추진했다. 경남 양산시, 경북 울진군에서 지역주민들의 유치 서명 등을 받아 신청을 냈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해 실패했다.

2003년 전북 부안군 주민들이 정부의 방사성폐기물 부지 선정 시도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3년 전북 부안군 주민들이 정부의 방사성폐기물 부지 선정 시도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후 9차 시도(2004년·부안)까지 경과를 보면, 지하에 활성단층이 있어 포기한 5차 시도(1994년·굴업도)를 제외하곤 공통점이 있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 그리고 ‘소통 부족’이다. 1차 시도 때부터 지역 주민에게 제대로 사실을 알리거나 설득하려는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방폐장을 건설하려던 정부의 태도는 두고두고 불신을 낳았다. 눈속임, 공모, 관련법 제정, 주민자율투표 등 갖은 방법을 다 써봤지만 실패한 원인이다.

소통 부족과 불신 문제가 계속 문제가 되자 두 차례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해 20개월간 공론화 활동 및 토론 등을 거쳐 2015년 6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권고안’을 내놓았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원칙부터 처리 방법, 방폐장 부지 선정을 위한 주민 의견 수렴 과정, 절차, 관련 특별법 제정 필요성 등을 망라한 권고안이다. 권고안이 별 반응을 얻지 못하자 문재인 정부에선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출범 시켜 10개월간 기존 권고안을 재검토했다. 지역 주민이 참여한 숙의 과정도 거쳐 2021년에 재차 권고안을 냈다.

두 차례, 총 30개월간의 공론화 과정에도 시민단체 등은 여전히 소통 부족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재검토위에선 권고안 발표를 앞두고 위원회의 조직과 성격, 활동 방향 등에 공개 반발하며 위원들이 집단 자진 사퇴해 파문이 일었다. 당시 위원직을 사퇴한 이정윤 원자력안전과 미래 대표는 “공론화한다고 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일차적인 이해도 구하지 않았고, 부지 선정에 필요한 지질조사 등도 하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며 “결국은 ‘돈을 줄 테니 얼마면 되나’는 일방통행식 사고가 여전했다”고 밝혔다.

“탈핵과 특별법은 무관” vs “원전부터 줄여야”

정부는 2031년이 되면 더 이상 고리·한빛 원전의 사용후핵연료를 쌓아둘 공간이 없을 것이라 본다. 지금이라도 국회에 계류 중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을 통과시켜 부지 선정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정부와 원자력 업계 주장이다. 21대 국회 출범 후 제출된 관련 특별법안은 3개다. 더불어민주당이 1건, 국민의힘이 2건을 냈다. 법안에는 지난 두 차례의 공론화 과정에서 제시된 권고안과 원자력 업계, 시민단체 등의 견해가 담겼다.

법안 내용은 유사하다. 폐기물과 부지 선정 등을 관리할 위원회의 설치, 부지 선정 절차 규정 및 주민투표를 통한 최종 선정, 영구 격리시설 준비 및 운영을 위한 제반 사항 명시 등이다. 법안 발의 후 국회에서 열 차례 소위가 열렸지만 현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추가 설치 관련 규정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열 번째 소위에서 결국 “이 문제는 여야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심사가 보류됐다.

원전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현실적으로 특별법은 필요하다. 이는 탈핵 단체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다만 특별법 통과를 위한 ‘전제’를 놓고서는 정부·원전 업계, 탈핵 단체 간 입장이 엇갈린다. 정부는 “탈원전 문제와 관계없이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가 시급하니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탈핵 단체들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및 가동 중인 원전의 점진적인 중단 등 ‘탈핵’이 전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은 “처분에만 수십만 년의 시간이 걸리는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를 정치권의 야합으로 결정하거나 핵 진흥만을 위해 졸속 추진해서는 안 된다”라며 “먼저 핵폐기물을 계속 발생시키는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취소하고 신규 핵발전소 건설 추진을 중단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 있는 가동 정지 상태의 월성 1호기 / 연합뉴스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 있는 가동 정지 상태의 월성 1호기 / 연합뉴스

계류 중인 특별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배경에는 이 같은 시각차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특별법안은 2021년 발의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0년)’을 통해 현재 25% 수준인 원전 발전 비중을 2030년대 중반 18% 수준까지 낮추고, 2080년에는 원전 가동을 중단해 탈핵을 이룬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발표된 10차 계획(2023년)에선 원전 발전 비중을 늘리고, 신규 원전도 더 짓는다는 내용이 반영됐다. 법안이 발의됐던 시점과 심사되는 시점의 모든 여건이 판이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21대 국회에서 특별법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부가 특별법 마련에만 매몰돼 당면한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의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보면 영구 저장시설 부지를 마련하는 데만 13년, 이후 실증연구와 조성까지 걸리는 기간이 총 55년이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도 저장시설이 조성되는 것은 사실상 다음 세대 때의 일이다. 원전을 계속 가동해야 한다면 당장 시급한 것은 원전 부지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일단 더 짓는 문제다. 이 문제의 경우 원전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정부가 공개적으로 언급하길 꺼린다는 것이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원전에 쌓여 있는 핵폐기물 문제인데, 마련이 가능할까도 의문인 영구 저장시설 타령만 하고 있다”며 “일단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저장소를 더 짓든지, 폐기물을 줄이는 기술이라도 확보하든지부터 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전 부지 내 추가 저장시설의 경우 이미 설계에 착수하는 등 준비를 하고 있다”며 “특별법 마련을 통한 고준위 방폐장 확보가 절실한 만큼 국회 임기 마지막까지 법안 통과에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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