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경각심을 갖되 두려워 말자, 우리 모두가 방역요원이 되어야 한다

김응빈 교수

마마와 코로나바이러스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3)경각심을 갖되 두려워 말자, 우리 모두가 방역요원이 되어야 한다

마마는 과거에 천연두를 일컫던 속칭이다. 천연두는 가장 오래된 인간 감염병 가운데 하나이고, 박멸되기 전까지 3억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에는 이 병에 걸리면 셋에 하나꼴로 죽어나갔고, 살아남아도 얼굴에 보기 흉한 마맛자국이 남았다. 원래 마마는 임금을 비롯해서 왕족에게 붙이던 존칭이다. 극한 공포의 대상을 지극 존엄으로 높여 부르면, 무자비한 병마가 혹시라도 자비를 베풀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천연두를 마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 마마 박멸

1796년 영국 출신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1749~1823)가 시도한 우두접종이 성공하기 전까지 인간은 천연두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었다. 그 당시 우유를 짜는 사람들은 소에서 나타나는 훨씬 약한 천연두인 우두에 걸리기 때문에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제너는 이런 생활 속 경험을 역사적인 임상실험(?)에 적용했다. 우두에 걸린 여인의 우두 물집에서 나온 액체를 묻힌 바늘로 여덟 살짜리 남자아이의 팔을 살짝 긁은 것이다. 긁힌 부위는 부풀어 올랐고 며칠 뒤 아이는 경미한 우두 증세를 보였지만, 다행히 곧 회복되었다. 더 중요한 건 그 소년이 다시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1798년에 펴낸 의학서 <마과회통(麻科會通)>에서 제너의 종두법을 소개했다. 또한 실학자 이규경(1788~1856)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헌종 1년(1835년)에 정약용이 종두법을 실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두법은 서학(西學) 탄압과 함께 중단되었다가, 1880년에 의학자 지석영(1855~1935)이 한양에 종두장을 설치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195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글로벌 천연두 퇴치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1964년 전문위원회 검토를 거쳐 1967년 드디어 박멸 프로그램이 실행에 옮겨졌다. 당시 전문가들은 10년 안에 목표 달성을 점쳤다고 한다. 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1977년 소말리아에서 마지막 환자를 끝으로 더 이상의 천연두 발생은 없었고, WHO는 1980년 마침내 천연두 박멸을 공식 선언했다. 병원성 미생물과의 첫 번째 전면전에서 완승을 거두자, 인류는 승리감에 한껏 도취되었다.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한 채로 말이다.

천연두를 일으키는 ‘바리올라(Variola)’바이러스는 감염된 환자와 직접 접촉해야만 전염된다. 2주 정도의 잠복기가 지나고 나면 고열과 두통을 동반한 몸살 증상이 나타나고 며칠 뒤 발진이 돋기 시작해서 약 열흘간 지속된다. 이때 전염력이 나타난다. 바리올라는 인체를 떠나서 살 수 없고, 자연 환경에는 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동물도 없다. 게다가 물집이 얼굴에 집중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환자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따라서 맨눈으로 감염을 확인하고 즉시 격리하여, 전염을 차단한 상태에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예방 접종을 꾸준히 실행하면, 이론적으로 박멸이 가능하다. 물론 실제로도 그랬다.

■ 현대판 마마

‘코비드-19(COVID-19)’라는 신종 감염병이 희망찬 새해를 다짐하던 우리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신종 감염병(Emerging Infectious Disease·EID)이란, 발생률이 높아지거나 가까운 미래에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감염병을 말한다. 코비드-19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ronavirus Disease)의 약자에 최초 발생 연도를 붙인 것이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첫 코비드-19 환자가 나타났고, 원인 병원체는 ‘코로나19’로 명명되었다.

COVID-19가 창궐하고 있다
코로나는 30년대 초 알려졌고
60년대 인간 공격이 보고됐다
사스·메르스도 바로 이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존재는 이미 1930년대 초반부터 알고 있었다. 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이후 동물, 특히 가축에게 호흡기와 소화기 관련 감염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1960년대부터 사람에게 보통 수준의 기침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 전에 없이 강력한 병원성을 지닌 신종이 연이어 나타났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모두 이들이 일으킨 난동이다.

코로나19의 유전정보는 박쥐 코로나바이러스 것과 가장 비슷한(89% 동일)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코로나19가 박쥐에 살던 바이러스에서 유래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증거다. 사스와 메르스 바이러스 역시 박쥐를 최초 전염원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와 사스 바이러스는 사향고양이를 거쳐 인간에게 넘어왔을 가능성이 매우 유력하다. 코로나19와 사스 사태의 중심에 시장이 있음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는 박쥐와 뱀, 사향고양이 등 다양한 야생동물이 식용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모형

코로나19 바이러스 모형

■ 불편한 진실

바이러스는 세포의 형태도 갖추지 못한 아주 작은 입자라 전자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다. 평균 직경 100㎛(0.1㎜) 정도인 인간 세포를 야구장에 비유하면, 세균은 투수 마운드 정도고, 바이러스는 야구공만 하다. 그 구조 또한 매우 단순해서, 단백질 껍데기 속에 유전물질로 DNA와 RNA 가운데 한 가지만 들어 있다.

인간 세포가 야구장이라면
바이러스는 야구공만 하다
모든 생명체를 공격하지만
숙주 범위는 매우 좁다

대개 동물바이러스는 추가적으로 지질막에 둘러싸여 있다. 쉽게 말해 외투를 걸친 격인데, 이 외막은 보통 감염됐던 숙주의 세포막에서 유래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외막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단백질 돌기가 여러 개 박혀 있다.

동글한 표면 위로 튀어나온 돌기들이 왕관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왕관을 뜻하는 라틴어, 코로나(corona)가 이름에 붙게 되었다. 흔히 사용하는 손 소독제는 외막을, 분무 소독제는 단백질 돌기를 주로 파괴한다.

바이러스는 세균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감염시키지만, 숙주 범위가 매우 좁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들은 숙주 장벽을 넘어서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는 사스와 메르스 바이러스에는 없던 특징도 보인다. 우선 상대적으로 치사율은 낮지만, 전염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게다가 기존 코로나바이러스와는 달리 잠복기에도 전염되는 무증상 감염을 일으키는 것 같다. 아직 완전히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방역에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답의 실마리는 돌연변이가 쥐고 있다.

그런데 이놈은 돌연변이다
범위도 넓고 초기 증상도 없다
바이러스 입장선 훌륭한 변이다
하지만 돌연변이엔 약점이 있다

돌연변이란, 말 그대로 돌연히(우연히) 유전자에 생기는 변이다. 모든 세포는 분열에 앞서 다음 세대에 물려줄 모든 유전자, 즉 유전체를 복제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타자수라도 전혀 오타가 없을 수 없듯이, 유전체를 복제하는 효소도 아주 드물게 실수를 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장균에서는 대략 1억번에 한 번꼴로 오타가 생긴다.

로또복권 1등 당첨 확률(814만5060분의 1)보다도 훨씬 낮지만, 대장균에게는 다르다. 최적 환경에서 약 20분마다 한 번씩 세포 분열을 하고 그때마다 개체 수가 두 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산술적으로 대장균 한 마리는 단 하루 만에 ‘2의 72제곱’마리, 곧 ‘47해 2236경 6482조 8696억 5000만’마리로 증식한다.

숙주 세포에 침입하여 그 체계를 강탈하며 증식하는 바이러스는 대장균보다 더 빠르게 증식하고 오타율도 훨씬 더 높다. 최악의 타자수는 유전물질로 RNA 한 가닥을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다. 공교롭게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이 숙주 세포에 침입해 증식할 때마다 돌연변이를 지닌 바이러스가 적어도 한두 개씩은 생겨난다.

조금만 더 변하면 죽는다
변이를 촉진하면 죽일 수 있다
또 숙주를 차단해도 된다
이동경로·증상 등 많은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해야 한다

바이러스가 침입하려면 먼저 숙주 세포에 있는 특정 단백질(수용체)과 결합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숙주 단백질이 침입자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에는, 바이러스 외막에 있는 돌기가 숙주 세포와 결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끊임없는 돌연변이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 세포의 수용체에 들어맞는 돌기가 무작위로 생겨난다. 예기치 않게 숙주를 갈아탈 수 있게 된 것이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보면, 병원성을 약화시키는 돌연변이도 나름 좋다. 숙주를 감염 즉시 몸져눕게 하거나 죽게 만들면, 그만큼 전파될 기회가 줄어든다. 반면 증상이 경미한 경우에는 감염된 숙주가 일상 활동을 그대로 하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숙주로 퍼져나갈 수 있다. 만약 잠복기에도 다른 숙주로 옮겨갈 수 있다면, 바이러스에게는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반대로 우리는 최악의 곤경에 빠지게 된다.

■ 21세기 감염병은 진행형

미생물학은 병원성 미생물과의 전쟁을 통해서 발전해 온 학문이다. 개전 초기, 인류는 항생제와 백신을 앞세워 승승장구하면서 완승을 확신했다. 오만방자한 착각이었다. 감염병은 흘러간 역사 속에 묻힌 과거사가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나가는 병원성 미생물들이 새로운 감염병을 계속 투척하고 있다.

신종 감염병의 증가는 병원체가 진화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빠른 여행 및 운송의 증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멀리 오가고, 더 자주 만난다. 감염병이 확산되기 좋은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또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등으로 이전에는 좀체 접하지 못한 병원체에 새롭게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리는 싫든 좋든 미생물의 세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인간 세상에 선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듯, 미생물의 세계에도 못된 것(병원성 미생물)들이 일부 있다. 이 못된 것들이 21세기 환경 변화에 편승해 불쑥불쑥 기습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그것도 싸움의 기술을 바꾸어 가면서 말이다.

과학이 돌연변이에 의한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이들의 아킬레스건은 알려준다. 앞서 설명한 대로 바이러스는 잦은 돌연변이 덕분에 변신을 거듭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사실 돌연변이는 주로 해롭다. 글쓰기 중에 생기는 오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유익한 돌연변이는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 더 드물게 생길 뿐이다. RNA 바이러스의 돌연변이율은 생존 한계치에 다다른 수준이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온전한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를 촉진하는 화합물을 투여하면 불량 바이러스가 양산되어 결국 붕괴될 것이다. 이런 과학적 역발상이 신종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 수 있다.

무서움에 존칭까지 했던 ‘마마’
3억 인류를 죽였으나 박멸됐다

바이러스의 또 다른 본질적 약점은 이들이 절대기생체라는 사실이다. 숙주를 만나지 못하면 바이러스는 맥을 못 춘다. 천연두 박멸의 핵심 요소도 바로 이것이었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사후 조치인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감염 예방이다. 최고의 예방책은 숙주와의 만남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어디서든 감염이 발생하면, 국가 차원에서 위험 지역에서의 유입을 우선적으로 막아야 한다. 이미 들어온 경우에는 국내 이동 경로와 감염 증상 등에 대한 정보를 빠르고 알기 쉽게 공개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 의식과 철저한 참여가 관건이다. 21세기 감염병과의 전쟁에는 전후방이 따로 없다. 우리 모두가 방역요원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경각심을 갖고 주의하되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고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싸워야 할 때이다. 이 순간에도 악전고투하고 있는 의료진과 방역요원들에게 고마움과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3)경각심을 갖되 두려워 말자, 우리 모두가 방역요원이 되어야 한다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