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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마라톤이다
텔레비전에서 영양이 표범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을 보면 약육강식은 자연의 법칙처럼 보인다. 중·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적자생존’ 따위를 배운 사람들은 별 의심 없이 인간사회도 그렇게 돌아간다고 믿는다. 학교에서 배운 인간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이자 약육강식의 역사로 보인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권력자들이 핵폭탄에 집착하는 것도 같은 생각에서일 것이다. 국가들이 앞다퉈 무력을 증강하듯이 개인들도 저마다 좀 더 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부와 권력을 손에 넣고자 기를 쓴다. 하다못해 주먹힘이라도 세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교육 또한 이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학교교육의 기본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다름 아닌 ‘필승’일 것이다. ‘홍익인간’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고, 참고서는 오랫동안 <필승>과 <완전정복>이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수능시험으로 끝나지 않는다. 입시전선은 머지않아 취업전선으로 바... -
선행학습이라는 스포일러
인간사회는 평등하지 않다. 동물의 세계도 그렇지만, 그 불평등은 대개 유전적 요인으로 결정된다. 인간사회는 사유재산제도가 확립되면서 유전적 요인에 더해 제도적으로도 불평등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다. 유전적 불평등은 종족 번식과 진화를 위해 자연이 하는 일이니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다. 미남미녀에게 세금을 더 물리자는 얘기도 있으나 모두가 동의하는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권투 시합을 체급별로 치르듯이 유전적 불평등을 감안한 사회제도를 만들 수는 있다. 더욱이 사유재산 세습으로 인한 불평등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만들어낸 불평등이므로 제도적으로 얼마든지 보완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은 권투경기 수준의 보완책도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유전적 불평등에 더해 세습으로 인한 불평등까지 더해지면서 인간사회는 사실상 반칙을 용인하는 사회가 되었다. 불평등한 관계에서 약자의 반칙은 어느 정도 용인되기도 한다. 불합리한 규칙에 대항하여 이를 어기... -
‘이생망’에게 해방구를 열어주자
원하는 대학을 못 간 많은 고3들과 취업 못한 수많은 젊은이들은 이번 설날에도 친척들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오미크론이 그들을 구해주었을까? 우리 사회처럼 나이가 비교 기준이 되는 사회, 경쟁이 심한 환경에서 10대와 20대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저만치 앞서 달리는 친구들을 보면서 자신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 일찌감치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것은 이들의 좌절감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30~40대가 되어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면, 뭘 시작해도 늦지 않은 나이에 왜 그렇게 일찍 좌절했던가 후회하게 되지만 당시에는 그런 눈을 뜨기가 힘들다.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한 10대들에게 숨 쉴 틈을 주는 전환학년제는 오늘날 우리 교육 현실에 무엇보다 절실한 제도다. 졸업장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허구한 날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 -
창의성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집과 학교, 학원을 뺑뺑이 돌면서 교과서와 참고서만 들여다보는 아이가 인간적인 성숙의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다. 창의적인 인재가 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할 것이다. 시험공부만 한 아이가 자라서 작가가 되기는 힘들다. 삶과 분리된 교육으로는 학습에 흥미를 느끼기도 쉽지 않다. 입시교육의 한계를 자각한 공교육이 학교 담장을 낮추고 지역사회와 소통하고자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경험교육이 강조되면서 초등학생들의 현장학습이 늘어나고,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시행되면서 체험학습 전문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하지만 한두 시간 흙을 만져본다고 도자기 빚는 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도공은 그릇을 빚기 전에 흙 속의 공기를 빼고 조직을 치밀하게 만들기 위해 흙을 치대는 작업을 하고 또 한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흙의 성질을 알게 되고 기술을 손에 익힌다. 흙을 주무르고 또 주무르다 보면 흙과 물, 공기의 관계가 읽히고, 손바닥의 온도에 따라 흙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느낄... -
‘삶의 현장’으로서의 학교
텔레비전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체험, 삶의 현장>은 밥벌이의 고단함과 소중함, 노동하는 삶의 가치를 얼핏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연예인이 하루 동안 육체노동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한두 시간 맛보기에 그치지 않고 종일 땀 흘리며 노동을 한다는 점에서 ‘체험’이라 이름 붙이기에 부끄럽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들의 체험학습은 대개 한두 시간 ‘해보는’ 데 그친다. 짧은 시간에 많은 학생들이 해볼 수 있게 다양한 편법을 써서 그야말로 ‘맛보기식’ 활동을 한다. 수확철에 감자를 한두 시간 캐보는 걸로 농사체험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농부의 일을 우습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가치 있는 일은 한두 시간 체험한다고 그 가치를 경험할 수 없다. <전쟁과 평화>를 요약본으로 읽고서 가치를 알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삶과 동떨어진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체험학습이 아이들을 삶에서 더 떼어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 -
경쟁교육의 두 가지 관점
우리는 스스로 경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착각이다. 실제로는 경쟁을 ‘당하고’ 있기 십상이다. 어려서부터 경쟁을 해야 경쟁력이 길러진다는 생각 또한 착각이다. 경쟁 시스템은 경쟁력을 길러주기보다 사람들을 통제하는 데 적합한 제도다. 선착순 달리기를 하면서 입에서 단내 나게 연병장을 뛰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전우애를 기르는 데도, 체력을 기르는 데도 선착순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복종심이 군인의 덕목일 수는 있어도 시민의 덕목일 수는 없다.시민을 기르는 교육을 한다는 학교가 실제로는 선착순 달리기 경주장이 되었다. 시험성적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우는 교육 속에 경쟁과 통제의 원리가 내재해 있다.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등급을 매기는 상대평가제도가 경쟁을 더욱 부추긴다. 구제금융 사태 이후 안정된 직장을 좇아 성적 상위 1%만 교대와 사범대에 진학하면서 모범생 출신 교사들이 학교를 채우게 되었다. 학창 시... -
그린스마트한 미래학교?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를 만드는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지어진 지 4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을 개축 또는 리모델링하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하지만 공사 기간 동안 운동장에 설치하기로 한 이동형 임시 교실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고, 1~2년의 공사 기간 동안 전학을 가야 하는 경우도 있어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 지정 후 의견 수렴에 나서다 보니 혼란을 가중시킨 측면이 크다. 다들 노후 건물 개선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공사 기간 동안의 불이익을 감수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일부 학부모들은 ‘지역과 학교 시설 공유’ 등 미래학교 사업 내용이 혁신학교와 비슷하다며 결국은 혁신학교가 아니냐고 반발하기도 한다.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국가가 생각하는 미래와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미래가 다르다. 개인 수준의 교육과 국가 수준 교육의 목표를 조정하는 것이 교육행정의 기... -
고시라는 낡은 부대
교육은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 속에서 저마다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게 돕는 일이다. 그 역할에는 다양한 전문 영역이 있지만,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에 맞춰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시행하는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공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해내려면 무엇보다 인문학적 통찰력과 사회과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입시 공부, 고시 공부만 해서는 그런 능력을 기를 수 없다.우리 사회의 인재 양성과 등용 방식을 새롭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취업학원이 되다시피 한 대학과 지금의 고시제도로는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인재를 기대하기 힘들다. 교육철학부터 다시 세우고 제도를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한다. 사법고시는 폐지되었지만 사법개혁은 요원하다. 고시제도 하나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멀리 내다보고 방향을 잃지 않고 부단히 개혁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최근 총리를 지낸 한 대선 후보는 행정고시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신분 상... -
공부, 머리 아닌 몸으로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할 때 흔히 동기 부여가 안 되어 그렇다고 말한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안 한다는 논리다. 목표가 뚜렷하고 의지가 굳으면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동기 부여도 환경이 받쳐줘야 되지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설령 된다 해도 목표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의 에너지는 오래 가기 힘들다. 행위와 목적은 서로 긴밀하게 엮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민족이나 민중을 ‘위하는’ 행동이 쉽게 변질되는 까닭이기도 하다.강은 바다에 이르기 ‘위해’ 길을 찾는 것이 아니다. 물길이 바뀌는 것은 주변 지형과 중력이 만들어내는 위치에너지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진정한 변화는 ‘의하여’ 일어나지 결코 ‘위하여’ 일어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이를 둘러싼 환경과 맥락이 바뀌어야 아이가 바뀐다. 교육에서 곧잘 ‘동기 부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동기가 아이를 변화시키기는 힘들다. 굳은 결심도 흔히 작심삼일이 되는 까닭은 어떤 목적을 위한... -
민주사회 위한 호칭문화
한국 사회에서 호칭을 적절히 구사하는 일은 어렵다.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말문을 트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흔히 쓰이는 호칭은 대개 가족 관계나 직업 또는 직급을 나타내는 명칭들이다. 형님, 언니, 이모, 아저씨, 아주머니, 사장님, 부장님…. 잘 모르는 성인 남성에게 가장 만만한 호칭은 ‘사장님’이다. 자영업 전성시대에 어울리는 호칭문화인 셈이다. ‘아주머니’보다 격을 높인 ‘여사님’이나 ‘사모님’은 사장님만큼 보편적으로 쓰이진 않는다. ‘사모님’은 원래 스승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호칭인 만큼 격에 안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저씨’ ‘아주머니’가 보편적으로 쓰이는 것은 부모 외의 어른이 모두 아저씨, 아주머니인 씨족사회 문화의 유산일 것이다. ‘선배’는 근대학교가 생겨나면서 정착된 호칭으로 보인다. 학교에서는 선후배 관계도 상당히 위계적이지만, 직장문화가 권위적이지 않은 곳에서는 상사를 ‘선배’라 부르기도 한다. 한 방송국에서 신참 기자가 사장을 선배님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