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교육의 두 가지 관점

우리는 스스로 경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착각이다. 실제로는 경쟁을 ‘당하고’ 있기 십상이다. 어려서부터 경쟁을 해야 경쟁력이 길러진다는 생각 또한 착각이다. 경쟁 시스템은 경쟁력을 길러주기보다 사람들을 통제하는 데 적합한 제도다. 선착순 달리기를 하면서 입에서 단내 나게 연병장을 뛰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전우애를 기르는 데도, 체력을 기르는 데도 선착순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복종심이 군인의 덕목일 수는 있어도 시민의 덕목일 수는 없다.

현병호 교육매체 ‘민들레’ 발행인

현병호 교육매체 ‘민들레’ 발행인

시민을 기르는 교육을 한다는 학교가 실제로는 선착순 달리기 경주장이 되었다. 시험성적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우는 교육 속에 경쟁과 통제의 원리가 내재해 있다.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등급을 매기는 상대평가제도가 경쟁을 더욱 부추긴다. 구제금융 사태 이후 안정된 직장을 좇아 성적 상위 1%만 교대와 사범대에 진학하면서 모범생 출신 교사들이 학교를 채우게 되었다. 학창 시절부터 경쟁이 몸에 밴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좋은 교육 자료를 동료 교사들과 공유하지 않고 혼자만 알고 있다가 연구수업 때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는 용도로 활용하기도 한다.

경쟁을 비판하는 이들도 자본주의 사회구조로 인해 경쟁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면 사실이기도 하다. 양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조기교육, 선행학습으로 내몰린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기보다 뒤처지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불안은 전염된다.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불안감 때문에 다닌다고 말한다. 하지만 학원을 다닌다고 불안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학원이 불안을 부추기기도 한다. “너네, 우리 학원 그만두면 밑바닥 된다” 그러면서. 일종의 영업 전략인 셈이다. 경쟁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또 경쟁을 부채질한다.

경쟁이 없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텃밭의 작물들도 적절한 경쟁이 있을 때 더 잘 자란다. 지나치게 빽빽하면 키만 웃자라지만, 적당한 간격을 두고 심으면 모두가 튼튼하게 자란다. 어린 싹일 때는 보호가 필요하고, 일정 단계에 이르면 경쟁이 도움이 된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의 경우도 인큐베이팅 과정에서는 사회주의 방식으로 평등하게 지원하다가 3년이 지나면 자유경쟁체제 속에서 자립하지 못하는 기업은 문을 닫게 놔둔다. 그러지 않고 계속 지원하면 부실한 기업이 살아남아 경제생태계를 악화시킨다. 사회주의 국가가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다. 시장의 자율성과 국가의 공공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불필요한 경쟁, 부당한 경쟁이 일어나지 않게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교육에서도 초등 과정은 경쟁을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중등 이후에는 건강한 경쟁이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의 교육제도는 경쟁의 비효율성만 키울 뿐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경쟁, 모두를 피폐하게 만드는 경쟁을 방지하면서 생산적인 경쟁을 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시험성적 하나로 줄 세우는 평가 방식을 개선하고, 모든 학생들이 자기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

2025년부터 전면 실시 예정인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평가제도도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대학처럼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저마다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정해진 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는 고교학점제는 획일적인 시간표와 평가 잣대 대신 자기만의 시간표와 다양한 평가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 대입제도에도 일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교사 부족과 도농 간 교육자원 격차, 입시에 유리하거나 이수가 쉬운 과목으로의 쏠림 등 우려되는 문제들이 있지만 방향은 이쪽이 맞다. 시행착오와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 국정의 기술이다. 지혜를 모아 자율성과 공공성이 균형 잡힌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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