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리자, 우린 ‘병균’이 됐다

도쿄 | 이용균 기자

각오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쨌든 올림픽은 지구촌 최대 규모 스포츠 행사다. 안전하게 치러지는 게 최우선이다.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불편은 감수하는 게 맞다.

여자 배구대표팀은 20일 오전 8시에 출국 수속을 마쳤다. 11시15분에 비행기가 출발했고, 오후 2시20분쯤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일반 승객이 먼저 내리고 한참 뒤에 올림픽 관계자들이 비행기에서 내렸다. 김연경을 비롯한 여자 배구대표선수들과 다이빙 대표선수들이 앞섰다.

안전한 도쿄 올림픽을 돕기 위해 대표팀은 필요한 모든 과정을 다 거쳤다. 백신을 맞았고, 출국 직전 훈련 시간을 쪼개 코로나19 음성 확인 검사를 두 차례나 받았다. 그런데도 입국 뒤 절차는 끔찍한 수준이었다. 철제 의자에 줄지어 앉아 순서를 기다렸고, 타액을 통한 코로나19 검사를 다시 받았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실내에 모여 있어야 했다.

입국장을 나온 김연경은 “입국 절차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는데, 무사히 잘 도착해 다행”이라며 “일본 땅을 밟으니 올림픽이 다가왔다는 것이 실감 난다”고 말했다. 물론 대표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란 선수단은 이날 입국 때 “6시간이나 걸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표팀에 이어 취재진을 포함한 대회 관계자들이 일본 입국 절차를 밟았다. 방역이라기보다는 배제와 격리에 가까웠다. 모든 사람의 거리 두기가 아니라 일본 국내 관계자와 해외 입국자 사이의 거리 두기가 우선이었다. ‘거리 두기’를 위해 대형 버스 한 대에 20명까지만 탈 수 있다며 줄을 세우더니 결국 3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을 실었다.

도쿄 시내에 도착한 뒤 택시는 ‘한 대에 한 명’이 원칙이라며 같은 숙소라도 나눠 타게 했다. 해외 입국자의 거리 두기 때문이 아니라 택시 기사를 여러 명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규정이었다.

오후 8시, 택시가 신주쿠 번화가 뒷골목을 지났다. 화려한 복장을 한 일본 젊은이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웃으며 거리를 활보했다. 창밖에서 들여다본 파친코 안에는 화려한 불빛 속 눈에 불을 켠 이들이 잔뜩이었다.

숙소에 들어오자 입국 14일 이내 인물의 동선을 제한하는 붉은 라인이 길게 그어져 있었다. 일본 거주민과의 접촉을 막겠다는 조치다. 숨이 턱 막혔다. 일본에서 지금 우리는 ‘병균취급’을 받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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