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 2020

이케에 리카코 “올림픽과 운명의 실” 백혈병 딛고 감동의 레이스

도쿄 | 이용균 기자

아시안게임 MVP 등 갈채 받다

훈련 중 발병, 투혼으로 재기

“팬들 뜨거워지는 경기 펼칠 것”

이케에 리카코가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MVP 시상식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케에 리카코가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MVP 시상식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2018년 적도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뜨거웠던 선수는 일본 수영 대표 이케에 리카코였다. 18세의 이케에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6관왕에 올랐다. 역대 아시안게임 단일 대회 최다 금메달 2위 기록이었다. 대회 MVP 시상식에서 이케에는 기념촬영을 요청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일일이 환하게 웃어주며 사진을 찍었다. 수영 실력뿐만 아니라 수영과 스포츠에 대한 태도가 더 주목을 받았다.

이케에는 “완성형이 10점이라면 7.5점이다. 이번에는 전부 메달을 딸 수 있었지만 아직 더 성장해야 한다. 겨울 강화훈련을 통해 모자란 2.5점을 채우겠다”고 말했다. 뜨거운 여름이 끝나고, 새 학기를 앞둔 기분을 묻는 질문에 이케에는 “일단 숙제는 했다”고 말했다.

일본 수영의 희망으로 떠오른 이케에에게 거짓말 같은 악몽의 순간이 찾아왔다. ‘2.5점’을 채우기 위한 그해 겨울 호주 전지훈련 때였다. 2월 초 조기 귀국한 이케에는 트위터를 통해 “호주에서 합숙훈련 도중 컨디션이 좋지 않아 긴급 귀국해 검사를 받았는데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면서 “저 자신도 발병을 아직 믿지 못하겠다.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적었다.

일본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사쿠라다 요시타카 올림픽담당장관은 “금메달 후보로 기대하고 있는 선수였는데 실망했다”면서 “달아오른 분위기가 가라앉을까 걱정”이라는 망언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은 끝에 4월 사임했다.

이케에의 투병과 주변의 응원이 이어졌다. 2019년 7월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접영 100m 결승이 끝나고 마거릿 맥닐(캐나다), 사라 셰스트룀(스웨덴), 엠마 매키언(호주) 등 금·은·동 메달리스트가 수상대에 올랐다. 이케에가 올랐을 수도 있던 자리였다. 이들 3명은 시상식을 마친 뒤 카메라를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6개의 손바닥에는 매직펜으로 ‘이케에 사랑해, 절대 포기하지 마. 리카코 사랑해’라고 적혀 있었다. 광주대회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이케에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10개월 동안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으며 머리카락이 빠졌고, 몸무게가 15㎏이나 줄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이케에는 지난해 5월, 다시 물속으로 돌아왔다. 지난 4월 열린 대표 선발전에서는 접영 100m에 출전해 57초77로 우승했다. 물속에서 기록을 확인한 뒤 이케에는 한 번 울었고, 팬들의 박수에 다시 한 번 울었고, 수상대에서 또 울었다. 올림픽 기준 기록 57초10에는 못 미쳤지만 혼계영 기준 기록(57초92)을 넘어 이번 도쿄 올림픽에 나선다. 스포니치에 따르면 이케에는 21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1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붉은 실(운명)로 이어져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대회가 미뤄지지 않았다면 도쿄 올림픽 참가는 불가능했다. 이케에는 “운명이고,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며 “릴레이(계영)에서 주어진 몫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여자 400m 계영과 400m 혼계영에 출전하는 이케에는 “몸 상태는 상당히 좋다. TV 앞에서 보시는 팬들이 뜨거워질 수 있는 레이스를 하겠다”고 말했다. 무관중이기 때문에 박수를 받을 수 없지만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그 누구보다 큰 박수를 받을 게 틀림없다. 코로나19로 불안한 대회에서 이케에의 레이스는 스포츠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장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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