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 2020

5년 전 ‘이란 첫 여성 메달리스트’, 히잡 벗고 난민팀 ‘선수’로

도쿄 | 이용균 기자
난민팀의 일원으로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키미야 알리자데 제누린이 25일 일본 도쿄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태권도 여자 57㎏급 32강전에서 이란의 나히트 키야니찬데를 이긴 뒤 코치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도쿄 | 로이터연합뉴스

난민팀의 일원으로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키미야 알리자데 제누린이 25일 일본 도쿄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태권도 여자 57㎏급 32강전에서 이란의 나히트 키야니찬데를 이긴 뒤 코치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도쿄 | 로이터연합뉴스

‘태권도’ 알리자데 제누린
유명해지자 ‘모범 여성’ 압박
“불공정 테이블에 앉기 싫었다”

옛 동료와 다시 만난 32강
승리 얻은 뒤엔 끌어안아줘

2016 리우 올림픽 동메달리스트가 다시 한번 올림픽 무대에 섰다. 5년 전과 두 가지가 달라졌다. 가슴에 달린 국기는 ‘난민팀’으로 바뀌었고, 전자호구 헤드기어 안에 썼던 히잡도 벗어버렸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32강전 상대는 2019년까지 조국이었던 이란 대표 나히트 키야니찬데(23)였다.

키미야 알리자데 제누린(23·난민팀)은 24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태권도 57㎏급 경기에 나섰다. 알리자데는 2016 리우 올림픽 이란 대표였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란 하계올림픽 사상 첫 여자 메달리스트였다. 알리자데는 동메달을 따고 흰색 히잡을 쓴 채 이란 국기를 휘날리며 매트를 뛰었다.

알리자데는 2020년 1월 이란 국적을 포기하고 난민 자격을 신청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란 정부의 억압도 문제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더 큰 이유였다. 알리자데가 동메달을 따고 귀국했을 때 슈퍼스타가 됐다. 알리자데를 향한 시선은 ‘동메달리스트’가 아니라 ‘여성’이었다. 복장과 태도, 말투와 표정이 모두 ‘이란의 모범 여성’처럼 보여야 했다. 알리자데는 ‘여성 메달리스트’ 대신 ‘태권도 선수’를 선택했다.

알리자데는 인스타그램에 “이란의 억압받는 수백만 여성 중 한 명이었다”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데리고 다니고, 허락받은 옷만 입어야 했다”고 적었다. 알리자데는 “더 이상 위선과 거짓말, 불공정의 테이블 앞에 앉아 있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다. 알리자데는 당시 살고 있던 독일에 남았고 “더 이상 이란을 대표해 경기에 나서지 않는다”고 밝혔다.

알리자데가 지난해 1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더 이상 이란을 위해 뛰지 않겠다”고 선언한 내용. 인스타그램 캡처

알리자데가 지난해 1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더 이상 이란을 위해 뛰지 않겠다”고 선언한 내용. 인스타그램 캡처

알리자데는 5년 전과 달리 히잡을 벗어던졌다. 경기장에 들어서며 오른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맞대결 상대인 키야니찬데가 뒤를 따라 들어왔다. 키야니찬데의 머리에는 흰색 히잡이 둘러졌다. 알리자데는 안정적인 수비로 경기를 유리하게 끌었다. 2라운드 중반 6-5가 될 뻔한 상황에서 비디오 판독 신청이 먹혀 7-4가 되면서 승기를 잡았다. 3라운드에서 몰아붙인 알리자데는 18-9로 이기고 16강에 올랐다. 알리자데는 경기가 끝난 뒤 한때 동료였던 키야니찬데를 끌어안았다.

4강까지 오른 알리자데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터키의 하티스 쿠브라 일군에 6-8로 패해 난민팀 사상 첫 메달의 주인공은 되지 못했다. 알리자데는 못내 아쉬운 듯 눈물을 흘리며 믹스드존을 빠져나갔다.

리우 대회에 이어 이번 올림픽에도 난민 대표팀이 꾸려졌다. 알리자데를 비롯해 11개국 출신 29명이 경기에 나선다. 시리아 출신으로 난파된 배를 언니와 3시간 동안 밀어 탈출한 유스라 마르디니 역시 이번 올림픽에서 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모친을 잃은 아프가니스탄 출신 압둘라 세디키(태권도)는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이다. 이란 정부에 대한 선수들의 저항은 알리자데 혼자가 아니다. 2019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때 이스라엘 사기 무키와의 대결을 피하려 기권을 강요당한 사에이드 몰라에이는 대회 직후 몽골로 귀화해 이번 대회에선 87㎏급에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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