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MD

(90) 강원 철원 동송시장

(사진 왼쪽부터)평남면옥 냉면,동송시장 가래떡,어랑 손만둣국,성원식당 소머리국밥

(사진 왼쪽부터)평남면옥 냉면,동송시장 가래떡,어랑 손만둣국,성원식당 소머리국밥

가을이 일찍 찾아오는 곳, 철원을 다녀왔다. 몇 년 전, 민간인 통제선 안에 있는 고추냉이 농장 방문 이후 처음이다. 철원을 알기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 고추냉이를 재배하는 곳은 임실군으로만 알고 있었다. 철원 산지는 임실 고추냉이를 가공하는 분께 소개받아 찾아갔었다. 고추냉이에 있는 톡 쏘는 향기는 시니그린이 주성분이다. 향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톡 쏘는 맛은 사라진다. 고추냉이 뿌리를 갈아본 사람은 안다. 생고추냉이, 와사비 가루 갠 것을 먹은 이들이 기억하는 톡 쏘는 맛의 정체는 사실 겨자다. ‘생’이라고 표시한 제품의 뒷면을 보면 고추냉이보다는 겨자 무라든지 이런 것들이 많다. 성분의 출처는 다르지만 그 또한 시니그린은 맞다. 가끔 TV에서 ‘와사비의 톡 쏘는 맛을 살렸다’는 치킨 소스를 보면서 혼잣말로 “겨자 맛인데” 한다. 철원의 로컬푸드 판매 상품 중에 고추냉이 잎이나 줄기로 만든 장아찌가 있다. 반찬으로도 좋거니와 고기 먹을 때도 좋다. 고추냉이는 뿌리만 먹는 것이 아니라 줄기와 잎 모두 먹는다. 가공품은 비싼 뿌리는 대부분 사용하지 않고 줄기와 잎만 쓴다.

철원으로 가는 길, 참으로 좋아졌다. 포천까지는 고속도로고 그다음부터 국도다. 예전보다 30분 정도 당겨진 듯싶다.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와 경계를 바로 지나면 철원의 중심 신철원이다. 원래 군청이 있던 철원읍과 구별하기 위해 그리 불렀다. 물론 지금 군청이 있는 갈말읍이 신철원이다. 철원의 오일장은 신철원 전통시장(3, 8일)과 동송시장(5, 0일) 두 개가 대표적이다. 시간 여건이 동송시장과 맞았다. 보통은 오일장 취재를 하러 갈 때 미리 숙소를 예약한다. 이번에는 명절 뒤라 사람이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갔다. 이곳저곳 다니다가 저녁에 숙소를 알아보니 몇 곳이 만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철원은 군인의 도시, 주말 면회객이나 외박 손님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해 겨우겨우 숙소를 구했다.

[지극히 味적인 시장]볼맛 메운 손맛

활성화된 상설 재래시장 한편서 ‘오일장’은 명백만…강원도 북부 지역서 공통적 현상
떡과 핫도그, 공깃밥 하나까지 ‘오대쌀’만 쓰는 상인들의 지역 특산품 사랑…맛 경험을 통한 ‘강력한 홍보
소머리 고기 푸짐한 국밥…전분기 없는 만두피로 만든 정통 이북식 만둣국…꿩고기 육수 시큼함 살아있는 냉면과 순대 조합까지
오일장은 볼거리 적었지만, 전통의 맛집에 온천·은하수 다리·꽃축제까지 가을 나들이에 ‘철원 맞춤’

동송시장은 웬만한 도시의 재래시장 규모였다. 상가도 어느 정도 활성화되어 있어 오일장에 대해 기대를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오일장은 여느 강원도 북부의 오일장과 비슷했다. 4년 동안 오일장을 다니면서 실망했던 곳 대부분이 강원도 북부인 고성, 양구, 화천, 인제였다. 거의 오일장의 명맥만 있을 뿐이었다. 철원도 마찬가지였다. 상설시장 드문드문 장이 서 있었다. 시장 주변의 상가는 프랜차이즈와 술집이 가득한 것으로 봐서는 군인 위주의 상권이 그 원인이 아닌가 싶었다. 농사짓는 할머니가 적으니 봇짐 들고나와 용돈 벌이하는 이도 드물어 여느 오일장과 달리 재미가 없었다. 시장을 몇 바퀴 돌았다. 떡집이 생각보다 많았다. 떡집의 모양새나 간판은 달라도 ‘오대쌀’만 사용한다는 문구는 같았다. 오대쌀은 조생종이다. 해가 일찍 지는 강원도 특성에 맞게 육성한 품종으로 철원을 대표하는 쌀 품종이다. 지역에서 나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일회성 이벤트며 행사를 열기도 한다.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을 손쉽게 접하게 하는 일은 드문데, 철원은 떡집이나 식당에서 사용하는 쌀이 오대쌀인 경우가 많았다. 잘하는 일이다. 먹어봐야지 맛을 안다. 연예인이 홍보한다고 꾸준히 먹지는 않는다. 경험보다 더 강한 홍보 수단은 없다. 볼 것이, 살 것이 없어도 시장은 시장. 시장 보다 보니 내 손에는 봉지 몇 개가 들려 있었다. 철원의 산중 어디선가 땄을 다래 한 봉지. 다래는 토종 키위라고 보면 된다. 키위라는 게 중국 다래를 뉴질랜드로 가져가 개량한 것이다. 보통 다래나 키위는 후숙 과일이라 여긴다. 단단할 때 따서 유통하는 사이 익도록 한다. 다래든 아니든 과일은 나무에서 익은 것을 땄을 때가 맛있다. 다래 하나를 맛보니 새콤한 뒤에 오는 달곰한 맛이 좋았다. 냉장고에 있는 개량 다래와는 다른 단맛이다. 다래는 잘 씻어서 껍질째 먹는다. 껍질 안 먹는 키위에서는 느끼지 못할 산의 향기가 있다. 봉지 하나는 오대쌀로 만든 가래떡. 딸내미가 다른 떡은 입에도 대지 않는데 유독 가래떡만큼은 좋아한다. 시장 다니면서 주전부리는 잘 안 하는 편이지만 이번 시장에서는 핫도그를 먹었다. 철원 오대쌀로 만든 핫도그라는 설명에 이끌려 맛을 봤다. 철원 시장에 간다면 맛 한번 꼭 보길 권한다. 떡도 마찬가지다.

[지극히 味적인 시장]볼맛 메운 손맛

소머리국밥, 이름만 유명한 곳도 있고 진짜로 맛있는 곳도 많다. 강릉 주문진 철뚝집, 서산 고북의 우리집 등이 필자가 손꼽는 곳이다. ‘그 집들보다 못하거나 잘하거나’가 소머리국밥의 기준이 되는 곳이다. 사실 국밥이나 순댓국을 끓이면서 잡내가 없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만일 냄새가 난다면 손님들이 바로 알 것이다. 건더기 또한 부실하면 나부터 외면할 것이다. 철원에서 맛있는 소머리국밥 식당을 만났다. 강남에서 모 증권회사의 강연을 끝내고 철원으로 출발한 까닭에 브레이크 타임을 얼마 앞두고 들어갔다. 시장기가 너무 지나치면 맛을 잘 못 느낀다. 여기는 달랐다. 알맞게 익힌 다양한 부위의 소머리 고기가 서운하지 않게 푸짐하게 들어 있다. 밥은 오대쌀로 지었다. 공기에 미리 담아 놓은 것이 거슬렸지만 언젠가는 개선되지 않을까 싶다. 국물 또한 고기와 밥을 잘 받쳐준다. 고기, 국물, 밥 삼박자가 맞아떨어졌다. 김치는 배춧값이 비싼 시기에 맛도 없는 시기인지라 두 곳과 비교하기 어려웠다. 김치 빼고는 아주아주 괜찮은 국밥이었다. 국내에서 한 해 잡는 한우가 100만두. 전국에 있는 소머리국밥에 사용하고도 남는다. 원산지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성원식당 (033)452-3105

[지극히 味적인 시장]볼맛 메운 손맛

강원도 이북은 실향민이 많이 산다. 이북 음식을 여전히 만들어 먹거나 아니면 식당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철원 고석정은 이름난 관광지다. 주변에 온천도 있어 여러모로 구경거리가 많다. 게다가 시월까지 꽃축제도 같이하고 있어 주말여행으로 안성맞춤이 아니라 ‘철원맞춤’이다. 고석정 인근에 만둣집, 함경도 만두를 내는 곳이 있다. “신고산이 우르르…”로 시작하는 타령인 어랑 타령의 본고장이 함경도 어랑이다. 식당 이름도 ‘어랑’이다. 여럿이 갔다면 칼국수, 만두가 들어간 전골을 맛볼 터인데 혼자인지라 만둣국을 주문했다. 사골로 육수를 내고 커다란 만두 네 개를 담았다. 만두피를 보니 전분기가 없었다. 사실 요새 공장에서 나오는 만두는 전분을 많이 사용해 투명하다. 길거리 만두 전문점 또한 공장에서 나온 만두피를 사용하는 곳이라 비슷하다. 만두피와 소가 따로 논다. 전분이 많이 들어간 피로 빚은 만두를 먹은 이들은 그것을 만두의 맛이라 여긴다. 밀가루로만 만든 피는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랑의 만두피에서는 전분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호박과 고기를 꽉 채운 소를 보드라운 피가 감싸고 있다. 만두 하나는 터뜨려서 국물과 먹고, 하나는 고춧가루 섞은 간장에 찍어 먹다 보면 배가 불러온다. 오랜만에 만두다운 만두를 맛봤다. 어랑손만두국 (033)455-0171

강원도답게 철원 또한 막국수집이 많았다. 메밀은 특별한 작물이 아니라 우리나라 어디서든 잘 자라는 고마운 존재다. 게다가 벼나 밀처럼 긴 시간이 아니라 서너 달이면 수확이 가능하기에 꼭 필요한 작물이기도 했다. 막국수와 냉면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선택한 것은 냉면. 꿩고기 육수에 사골 육수를 섞어서 냉면 육수를 만든다. 육수를 맛보니 아주 살짝 시큼한 맛이 난다. 꿩 육수의 특징이다. 돼지나 닭 그리고 소 육수와 맛의 결이 다르다. 올려진 고명 또한 꿩고기만 있다. 어디서 맛보기 힘든 육수의 맛이다. 비빔이든 물이든 냉면을 주문할 때 순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고소한 맛의 아바이순대는 놓치기 힘들다. 냉면과 순대의 조합도 꽤 좋다. 속초 아바이마을의 함흥냉면과 순대 조합도 좋지만, 황해도식 육수에 순대 조합도 좋다. 순대와 냉면을 번갈아 먹다 보니 동해시에서 먹었던 냉면과 통닭 조합이 생각났다. 평남면옥 (033)458-2044

오일장은 기대 이하였지만, 온천이 좋았고, 은하수 다리는 멋졌다. 가우라(분홍 나비 바늘꽃)와 천일홍이 반기는 꽃축제는 기대 이상이었다. 시월까지 꽃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가을에 구경 삼아 떠나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김진영

[지극히 味적인 시장]볼맛 메운 손맛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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