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한 표현 자유, 호전적 근본주의… 극단과 극단 사이 설 땅 잃은 ‘화해’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무슬림 만평·‘인터뷰’·삐라 등 ‘표현의 자유’ 허용 범위 논란

서구 우경화·근본주의 득세에 온건·화해론자들 입지 ‘위축’

7일 서구 언론 사상 최악의 테러를 당한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가 공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이 잡지는 ‘빨간 광대 코’를 한 이슬람교 선지자 무함마드 만평을 게재해 무슬림들의 반발을 샀다.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당했고,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았다. 그는 이번 테러로 숨진 12명 중 한 명이다.

<b>‘사랑은 증오보다 강하다’</b> 프랑스의 주간지 ‘샤를리 엡도’ 편집국에서 총격 테러가 벌어져 12명이 사망한 7일 밤(현지시간), 이 사건으로 숨진 만평작가 장 카뷔의 사진 옆에 ‘사랑은 증오보다 강하다’라는 제목의 만평이 놓여 있다. 이 그림에는 수염을 기른 무슬림 남성과 샤를리 엡도의 만평작가가 키스하는 모습이 묘사됐다. 이 만평은 2011년 이슬람교 선지자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을 실었다가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사무실이 불탄 다음주 샤를리 엡도에 실렸던 것이다. 파리 | AFP연합뉴스

‘사랑은 증오보다 강하다’ 프랑스의 주간지 ‘샤를리 엡도’ 편집국에서 총격 테러가 벌어져 12명이 사망한 7일 밤(현지시간), 이 사건으로 숨진 만평작가 장 카뷔의 사진 옆에 ‘사랑은 증오보다 강하다’라는 제목의 만평이 놓여 있다. 이 그림에는 수염을 기른 무슬림 남성과 샤를리 엡도의 만평작가가 키스하는 모습이 묘사됐다. 이 만평은 2011년 이슬람교 선지자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을 실었다가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사무실이 불탄 다음주 샤를리 엡도에 실렸던 것이다. 파리 | AFP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는 8일 사설에서 이번 공격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규정했다. 민주주의 사회의 언론들은 샤를리 엡도를 본받아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도 했다. 신문은 이 사건을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영화 <인터뷰> 상영 철회 논란과 같은 선상에 놓고 어떤 미디어도 위협에 굴복해 자기검열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대북 전단 살포 논란에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최근 법원은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지만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이를 막는 것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전단 살포 단체들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며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 허용될 수 있는지는 늘 논쟁거리였다. 2006년 2월 오스트리아 법원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한 영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반론은 기각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노동당 정부는 2009년 2월 코란을 ‘파시스트 책’이라고 비난한 네덜란드의 극우 정치인 게르트 빌더스의 입국을 불허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우리는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극장에서 종교적, 인종적 증오를 선동할 자유는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때와 지금 유럽의 사정은 다르다. 샤를리 엡도가 2006년 연대의 표시로 덴마크 언론의 무함마드 풍자만평을 옮겨 싣자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은 “이슬람교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라고 비판했다. 2015년 사회당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는 “숨진 언론인들은 우리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2006년 만평 파문 때는 전 세계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던 이슬람권 13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는 프랑스 언론인과 경찰 12명이 사망했다. 9년 사이 경제 상황은 더 나빠지고 극우정당이 세를 확장했다. 사회 전반의 ‘관용’도 쇠퇴했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가 도발이고, 어느 정도 자제하면 자체 검열이 될까.” BBC와 CNN의 프로듀서를 지낸 언론인 팀 리스터는 언론들은 이제 아주 풀기 어려운 질문을 떠안게 됐다고 트위터에 썼다. 이는 지금보다 더 많은 경찰력을 언론사 문 앞에 세워야 하는 정부, 나아가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될 고민이기도 하다. 분명한 건 표현의 자유와 극단주의의 대립 속에 공존과 관용을 내세우는 화해론자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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